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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ywinkup Aug 05. 2016

낯선 베란다에 적응하기

당연한 일상이었던 아침이 사라졌다.

4년 간 살았던 집을 떠나, 베란다가 크고 햇빛도 더 잘 드는 집으로 이사한 지 이제 막 일주일이 지났다.

마냥 좋은 점만 있을 줄 알았던 '남향'의 베란다에서는 반짝이며 쏟아지는 아침 햇빛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출근 준비하며 편하게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전에 비해 신발을 신었다 벗었다 하는 번거로움이 생겼고, 사진을 찍어 왔던 눈높이도 달라져버렸다.


아무 고민할 거리가 없었던 작은 베란다와의 이별이 이렇게 불편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프레임 안에 모든 풍경이 담기지 않는 이상한 구조의 베란다는, 사실은 고민의 여지조차 주지 않던 궁극의 베란다였나 보다.

줄 맞춰 세워놓기만 해도 좋았던 작은 베란다는 이제 없다.



이사 소식을 들은 모든 이가 '대체 그 다육이들을 어떻게 옮길 건지' 궁금해했다. 걱정과 근심 속에 몇 달을 보내기만 하다가, 이사 며칠 전에야 생각해낸 아이디어는 우유 박스였다. 대부분의 화분이 플라스틱이고, 크기도 비슷하게 통일해서 사용 중이었던 게 유효했다. 우유 박스와 생김새가 똑 닮은 수납박스를 구비하여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 다행히 가볍고 작은 화분들은 키가 넘치지 않게 박스 안을 채웠고, 생각보다는 그리 큰 수고를 들이지 않고도 모든 화분을 무사히 옮겨올 수 있었다.

다만 이사가 끝난 저녁, 단 몇 톨의 흙만 흘렸을 뿐이라고 자랑하던 내가 곁에 있던 화분 하나를 툭 쳐서 쓰러뜨리는 오점을 남겼을 뿐.

틸란드시아는 샐러드 박스통에 담아 가장 수월하게 옮겨왔다


새로운 베란다에서도 화분들은 이전과 똑같이 자리 잡았다. 그런데 화분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그렇지 않다. 넓은 베란다로 오면 좋아질 일들만 생길 줄 알았는데, 마음 한 구석에 욕심이라는 짐이 쌓이더니 잔뜩 무거워져 버렸다. 욕심은 걱정을 낳고 걱정은 나태를 불러온다. 마음만 바쁘지 몸이 하는 것은 없다.

새로운 베란다에서 적응해야 하는 건 다육이만이 아니었다. 매일 아침의 싱그러운 아침 햇빛은 잃었지만, 풍부한 한낮의 햇빛을 만끽하며 예뻐질 다육이들을 기대할 수는 있겠지.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이 곳에서 새로운 즐거움을 깨닫게 되는 그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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