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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w Sep 01. 2023

두 번째 산티아고, 열한 번째 날

Guemes-Boo de Pielagos 27.36km

2023.04.24.


알베르게의 아침은 늘 비슷한 이유로 일어나게 된다. 오늘은 옆 침대의 어르신이 적외선 조명을 이마에 찬 채 이리저리 비추시는 바람에 덩달아 잠에서 깼다. 시간을 보니 새벽 6시 반, 감사한 마음으로 일어나 가방을 꾸렸다.


7시 반부터 시작되는 아침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오니 어제 뵌 한국인 분들이 입구에 계서 같이 테이블에 앉아 간단하게 바게트와 커피, 비스킷을 먹으며 오늘의 순례길에 대해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두 분은 오늘 차를 타고 알타미르 동굴을 갈 계획이라고 하신다. 알타미르 동굴? 어디선가 들어봤다고 생각했는데 문득 그 붉은 천장에 여러 동물 그림이 그려있는 장면이 떠올랐다. 대학교 때 그림 속 숨은 이야기를 알아가는 것이 재밌어 서양 미술을 들었던 터라 알타미르 동굴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던 것이다. 그 알타미르 동굴이 내일 걷는 길에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또 새로운 정보는 얻어 듣고, 두 분께 좋은 미노를 보내시길 인사드리며 오늘의 순례길을 떠났다.

Somo까지는 5km, Santandar까지는 33km

Guemes의 알베르게는 순례길 루트에서 조금 벗어난 곳이라 시골길을 따라 원래의 순례길로 합류해야 했다. 도로를 따라 두 시간 반 정도를 걸으니 산탄데르행 보트를 타는 마을 Somo에 도착했다. 이미 일찍 도착한 순례자들이 보트 일정에 맞춰  기다리고 있는 게 보였다. 보트를 타고 산탄데르까지 건너가는 장소가 군데가 있는데, 나는 Somo에서 7km를 더 걸어 두 번째 선착장에서 보트를 타기로 결정했다. 첫 번째 선착장에서 긴 다리를 건너면 오른쪽으로 넓게 펼쳐진 바다가 한눈에 펼쳐진다.

Somo에서 길게 이어진 다리 위에서

두 번째 보트 선착장에 도착했는데 표를 파는 사람도 기다리는 사람도 아무도 없어 뭔가 잘못된 줄 알고 마음이 움츠러들었다. 주변을 서성이다가 어떤 유니폼을 입고 계신 아주머니에게 무작정 파르돈, 하며 보트 선착장 쪽을 가리켰다. 그리고 다시 멀리 보이는 산탄데르를 가리키며 손목을 두드렸다. 대략 '몇 시에 산탄데르 가는 보트가 있나요'에 하는 바디랭귀지였다. 그러자 아주머니께서 감사하게도 선착장까지 같이 동행해 주시며 스페인어였지만 느낌 상, '이곳에서 기다리면 곧 보트가 올 거야'라고 알려주셨다. 약 5분 정도 기다리자 안 보이던 보트가 동동동 내가 서 있는 쪽으로 정말 나타났다. 그렇게 10분 정도 보트를 타고 산탄데르로 했다.

산탄데르까지 가는 작은 여객선

보트가 선착장에 다다를수록 얼마 머물렀던 빌바오처럼 큰 도시가 눈앞에 가까워졌다. 이상하게 조금 설레는 마음으로 육지에 내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바로 앞에 멋있는 외관의 현대적인 박물관이 보이고 그 주변으로 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관광객이 많았다.

산탄데르 선착장의 지도

난 산탄데르를 넘어 Boo라는 특이한 이름의 마을까지 갈 예정이라 산탄데르 큰 도시의 화려한 거리에 감탄하며 일단 대성당을 들렸다. 그런데 하필 닫은 시간이어서 내부를 들어가 볼 순 없었다. 외부 전경 사진만 찍고는 도심을 가로질러 산탄데르를 휙휙 지나갔다.

산탄데르 대성광 외관

상점과 카페로 번화한 산탄데르 중심을 벗어나 걷고 있는데 화장실이 너무 가고 싶어 왼쪽에 보이는 박물관처럼 보이는 곳에 들어갔다. 그런데 박물관이 아니라 의사당 같은 곳이었나 보다. 입구에 CCTV와 검문하는 기계도 있고 해서 물어볼까 말까 하다 상황이 다급하여 Toilet? 하고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경비 두 분은 나는 한 번 보고, 서로 쳐다보고 하시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통과시켜 주셨다.  

가족 대대로 내려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는 정육점

그렇게 으리으리한 건물을 나와 길을 걷는데 엄청 큰 병원을 지나고, 버스정류장에서 가방을 다시 싸고 있는데 Somo 보트 선착장에서 길을 물어봤던 청년 둘이 내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원래 지나가는 순례자들에게 잘 말을 걸지 않는 편인데, 어제 한국 분들과 이야기를 많이 한 탓인지 나도 모르게 Hi 하고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그 청년들이 어떻게 이렇게 빨리 왔냐고 묻는다. 그 둘은 내가 Somo에서 보트를 타지 않고 20km를 걸어올 줄 알았다고 했다. 그래서 갑자기 본인들 앞에 있는 나를 보고 깜짝 놀랐단다. 같이 하하 웃고 넘긴다. 나는 가방을 추리고 가겠으니 먼저 가라고 하니, 기다릴 테니 같이 걷자고 한다. 그렇게 이 두 청년과 오늘의 알베르게까지 함께 걷게 되었다. 한 명은 이탈리아에서 온 로렌조이고 다른 한 명은 오스트리아에서 온 빈센트이다.

Santandar 도시에서 생긴 Santandar 은행

Boo까지는 약 4시간 정도. 이야기하며 걸으니 시간이 금방 흐른다. 로렌조는 네덜란드에서 2년 정도 일을 했다는 공통의 관심사가 있어 금방 친해졌다. 또 내가 시칠리아에 가고 싶다고 하자 이탈리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며 꼭 가봐야 할 곳이라고 했다. 그리고 내가 커피에 대해 물어보자 여기 커피는 Terrible 하다며 안타깝다고도 했다. 추가로 이탈리아는 어떤 법이 있어 커피를 서서 마시면 1.5유로 이상을 손님에게 청구할 수 없다는 것까지 알뜰 정보를 알려주었다.

오늘부터 새롭게 보이는 카미노 순례길 화살표 표시

원래 이 두 친구는 Boo 마을 전에 있는 Santa Cruz de Bezana의 알베르게에서 잘 예정이었는데 앱에서 닫았다고 나와 일단은 마을에 들러 숙소가 열었는지 확인해 볼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도 동행하였는데, 근처에 도착하여 바에 들어가서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아쉽게도 이 알베르게는 닫혀 있었다. 로젠조는 스페인어와 이탈리아어가 비슷해서 각자의 언어로 말해도 서로 의사소통이 된다고 했다.


기차역 옆에 작은 마을 Boo

그래서 원래 계획대로 Boo까지 도착하여 숙소에 체크인을 했다. 5시가 다 되어갈 무렵 도착한 숙소는 사립 알베르게여서 매우 깨끗하고 2층 침대가 아주 튼튼하여 삐그덕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말티즈 같은 작고 사납지만 무섭지 않은 개 한 마리가 숙소를 지키고 있었다. 매우 새침하여 이리 오라고 해도 좀처럼 곁을 주지 않았다.

입주변과 발에 갈색 털이 매력점인 알베르게 주인 강아지

체크인 후 그동안 모아둔 빨래를 했다. 손빨래를 매일 했더니 손이 많이 터서 며칠 빨래를 하지 않고 알베르게에 도착하면 세탁기를 쓸 생각에 빨래는 모아둔 터여서  내일은 입을 것이 없었다. 그런데 이곳 세탁기가 망가졌단다. 어쩔 수 없이 손빨래를 할 운명이었나 싶어 그동안 쌓인 빨래를 다 하고 나니 30분이 지나 저녁 6시가 넘어 있었다.


사립 알베르게는 보통 8시에 시작되는 순례자 저녁이 있다. 가끔은 나도 먹는 편이지만 저녁 8시에 늦은 저녁을 먹으면 9시 조금 넘어 식사가 마무리되는데, 10시면 자야 하는 알베르게 규칙 상 먹고 바로 자게 되면 그다음 날 몸이 무겁고 위가 아프다. 그래서 오늘도 순례자 저녁을 신청하지 않그 대신 동네 한 바퀴를 돌며 간단하게 먹을거리를 찾아 슈퍼에서 바게트와 치킨 Pate로 저녁을 먹었다.

처음 먹어본 Pollo Pate. 바게트에 발라 먹으면 맛있다.

숙소에 돌아오니 숙소의 저녁 식사 준비가 이제 막 시작하려참이었나 보다. 주방이 소란스럽고 저녁을 기다리는 순례자들이 밖에 걸터앉아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난 방으로 들어와 짐을 정리하는데 같은 방의 레이디가 인사를 건넨다.


독일에서 온 케이티와 그렇게 서서 10분 정도 이야기를 했다. 채식주의자라서 저녁을 신청하지 않았다는 케이티는 비건인 남편 이야기, 작년 프랑스 길을 걸었던 일 등 이야기를 재밌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첫날 만났던 메러디스가 생각났다. 그리고 고맙게도 내가 이 도시에 들어오고 물 맛이 좀 변한 것 같다고 하자 본인도 그런 것 같다며 본인이 가져온 정수 물통으로 물을 걸러 내 컵에 채워 주었다. 부족하면 언제든지 또 말하라는 따뜻한 말과 함께.


어제오늘 비가 내려 방수용 가방을 사용했었는데, 내일부터 다시 날이 갠다고 하니 허리 받침대 있는 튼튼한 등산용 가방으로 바꿔 짐을 다시 쌌다. 내일은 오늘보다 좀 더 걸어 Canorredondo 마을까지 갈 예정이다. 가는 도중 알타미라 동굴도 들리고, 우리나라 경주 같은 Santillana del Mar를 거쳐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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