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밥보다는 조식이라고 불러야 할 것처럼 감탄이 나올만한 조식을 먹었다. 작은 병에 담긴 오렌지 주스, 커피, 빵, 토스트와 버터까지. 호텔 같은 조식을 먹고 맞은편에 앉아 아침을 먹은 로렌조에게 인사를 하고 먼저 알베르게를 떠났다.
작은 병에 담긴 귀여운 오렌지 주스와 빵류
오늘은 갈 길이 멀지만 중간에 이틀 전 들은 알타미르 동굴을 들릴 계획이었다. 알타미르 동굴이 있는Santillana del Mar 마을까지 작은 동네를 하나씩 지날 때마다 교과서에서 본 알타미르 벽화 그림을 볼 생각에 마음이 바빠졌다.
야외 학습, 아이들이 차례로 신호등을 건너는 모습이 귀엽다.
그렇게 5시간을 걸어 Santillana del Mar 마을에 도착하여 관광 안내소로 향했다. Santillana 마을은 우리나라 경주같이 전통적인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바닥조차 돌로 깔려있다.
시내 바닥이 전부 돌로 되어 있는 Santillana
먼저 알타미르 동굴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문의를 했다. 여기서부터 약 30분 걸린다는 사실에갈까말까 조금 망설였지만 지금 아니면 또 언제 알타미르 벽화를 직접 눈으로 보겠냐는 자기 합리화를 빠른 시간 내에 마치고 크레덴시알에 도장을 찍은 후 알타미르 동굴로 향했다.
30분 걸린다고는 했지만 오르막 길이라는 부분을 빼먹으신 것 같다. 이미 5시간 넘게 걸어왔는데 뜨거운 햇볕 아래 오르막길을 걷자니 거의 동굴을 앞두고도 다시 뒤돌아갈까를 고민했다. 그래도 어찌어찌 입구까지 도착하여 표를 산 후 드디어 알타미르 박물관에 입장했다. 버스를 대절하여 체험학습을 하러 온 모양인지 학생들이 많았다.
알타미르 박물관 입구
그런데 박물관은 내가 생각한 곳이 아니었다. 사실 눈으로 벽화를 직접 볼 수 있다는 이유 하나로 온 것이었는데 보존을 위해 더 이상 방문객들은 벽화 실물을 볼 수 없었고, 복제 모형 동굴을 만들어 그곳에서 동굴 체험하듯 벽화를 보는 것이었다. 어제 웹사이트에 들어가서 오늘 문을 여는지만 확인했기에 너무나 싱겁게도 나의 알타미르 동굴 체험기는 끝이 났다. 진짜 벽화를 볼 수 없는 것에 이만저만 실망한 게 아니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실제 벽화가 발견된 이곳까지 발로 걸어온 것을 좋은 경험으로 여기기로 했다.
알타미르 벽화하면 생각나는 그 부분과 복제 동굴 내부
다시 언덕길을 걸어 내려가며 오늘 머무를 숙소가 있는 마을로 향했다. Santillana에서 2시간 반 정도를 걸으면 숙소가 나온다. 앞에 로터리가 나왔다. 길을 걸으면 로터리가 종종 나오는데 늘 로터리를 마주할 때면 일단 멈춘 채로 가만히 서있게 된다. 도통 어느 방향 출구로 나가야 할지 지도를 보면서도 헷갈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번에도 가만히 서있는데 현대식 경운기 같은 차를 타고 지나가던 부자가 차를 멈춰 친절하게 가야할 방향을 알려주셨다.
계속 화살표를 따라 걷는다.
그렇게 걷고 또 걸어 거의 6시 반이 다 되어서 숙소에 도착했다. 걸어오면서알베르게에 침대가 16개밖에 없어 내 자리가 없으면 어쩌나 조금 걱정했더랬다. 그런데 오늘 숙소는 나를 포함하여 5명만 지내게 되었다. 이 4명 모두 어제 숙소에서 얼굴을 본 사람들이라서 가볍게 인사를 했다.
씻고 나와 빨래를 널고 있는데, 젊은 레이디와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스위스에서 온 34살 Laura는 이제 막 심리학 석사를 마치고 새로운 직장을 앞두고 산티아고 길을 걷는다고 했다. 더이야기를 하려는데 저녁이 준비되었다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숙소는 프랑스에서 온 젊은 봉사자 플로린 1명, 이탈리아에서 온 봉사자 카밀라 1명, 이렇게 2명의 봉사자로 운영되고 있었다.알베르게 주인은 휴가 중이라고 한다.
요리를 좋아하고 잘하는 플로린 덕분에 저녁은 코스요리이다.레몬 잎으로 만든 쌀 페스토, 렌틸콩 콜리플라워, 직접 만든 후무스와수제 케이크까지 디저트로 먹으며 알베르게에서 이렇게 훌륭한 코스 요리를먹을 수 있어 감사한 저녁이었다.
모두가 두 그릇씩 먹은 저녁
자신이 운영하는 알베르게가 아닌데 매일 새로운 사람들을 맞이하고 식사 준비와 청소까지, 이를 봉사의 마음으로 한다는 것이 참 대단해 보였다.
소수의 사람들과 있으면 이야기를 제법 나누게 된다. 봉사자들의 능숙한 리드에 따라 서로에게 질문을 하는 게임을 하며 웃고 떠들며 시간을 나눴다.
누군가 플로린에서 어떤 계기로 이곳에서 봉사를 하고 있는지 물었다. 플로린은 앞으로 알베르게를 운영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했다. 이곳엔 지난 3월에 달마시안과 레브라도가 섞인 듯한 9개월 된 반려견 펫치와 같이 와 지금까지 봉사활동을 하고 있으며, 이틀 뒤 마을에서 지나게 될 ‘Anna’라는 네덜란드 여성의 페이스북을 보고 많은 감동을 받아 자신도 앞으로 알베르게를 운영할 계획이라고 했다. 그래서 내게 꼭 그곳에서 머무르라고 추천해주기도 하였다.
사랑스런 펫치야, 안녕?
내 차례가 되어 난 네덜라드 야콥 아저씨로부터 최근 가장 행복한 적이 언제였는지에 대해 질문을 받았다. 조금 생각하다 얼마전 모래사장에 내려가 물에 발을 담그고 혼자 물장난 쳤던 것이 생각나 그때라고 대답했다. 어렸을 땐 거리낌 없이 이런 적이 있었던 거 같은데 어른이 되고 나서는 일정을 잡아 어딜 가지 않는 한 길을 걷다가 이렇게 증흑적으로 물장난을 친 경험이 없었는데 그래서 참 좋았다고 하니, 카밀라가 “우린 좀 더 자주 그래야 해.”라고 덧붙였다.
난 노트북을 꺼내와 글을 쓰기 시작하는데, 한 편에서는 오스트리아 아저씨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다른 이들도 따라 합창을 한다. 난 그 옆에서 글을 쓰며 이들의 노래를 들으니, 내가 여기 있다는 것이 다시 한번 실감이 나지 않는 그런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