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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w Sep 02. 2023

두 번째 산티아고, 열셋째 날

Caborredondo-San Vincete 27.80km

2023.04.26

 

아침에 처리해야 할 일을 마치고 나니 10시가 다 되어 숙소를 떠나게 되었다. 이렇게 늦게 숙소를 나온 것은 처음이었다. 노트북을 편히 쓰도록 주방 테이블을 내어준 배려에 감사 인사를 전하고 배낭을 가지고 나오니 카밀라가 테이블에 앉아 울고 있었고 플로린이 마주 앉아 그녀를 다독이고 있었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그냥 나갈 수가 없었다. 나도 옆에 앉아도 되는지 허락을 구하고 같이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아침부터 갑자기 눈물이 나는 이유가 있으리라.


카밀라는 어제저녁때 플로린이 알베르게를 운영하고 싶다는 앞으로의 계획을 들으며 지금의 자신의 처지와 비교되어 서글프다고 했다. 그리고 본인은 나이가 50세인데, 돈도 마땅한 계획도 없이 이곳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자신이 비참하고 절망적으로 느껴진다고 했다. 매일 아침 자신만의 길을 떠나는 순례자들을 뒷모습을 보며 그동안 마음이 어땠을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깊은 슬픔이 느껴졌다. 오늘 아침 사람들을 보내고 난 뒤 자신도 모르게 그동안 쌓아둔 눈물이 쏟아진 것이리라.


아침부터 이런 무거운 마음을 갖고 있는 카밀라를 어떻게 위로해야 좋을지 모른 채 계속 카밀라의 독백을 들어주었다. 플로린은 본인이 한 이야기 때문에 카밀리가 느끼는 우울함에 미안함이 드는가 보다. 나도 계속 마땅히 할 수 있는 말을 못 찾은 채 담배를 피우고 있는 카밀라 옆에 서서 오랜 포옹과 작별 인사를 건넸다.


인사를 마치고 이제는 나도 오늘의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오늘은 다시 바다가 훤히 보이는 해변길을 따라 걷다가 San Sebastian처럼  큰 휴양지가 나오는 San Vincete에서 잘 계획이었다. 또한, 오늘 걷는 길에 Comilla라는 도시를 지나는데, Comilla에는 가우디의 건축물이 있는 곳이어서 잠시 들러 볼 생각이었다.

Cobreces 마을 입구, 붉은 외관이 상징인 St.Peter 성당

언덕길을 걷다가 해가 강해 선크림을 덧바르려 잠시 벤치에 멈췄는데 누군가 뒤에서 Hey, 하는 목소리가 들려 뒤돌아보니 며칠 전 Boo에서 함께 걸었던 이탈리아에서 온 로렌조, 오스트리아에서 온 빈센트였다. 그리고 오늘은 독일에서 온 사라까지 함께였다. 난 거울도 없이 막 선크림을 덧바른 상태에서 얼굴이 허옇게 뜨진 않았나 내심 신경 쓰였지만 날씨는 너무 덥고 해는 너무 뜨거워 선크림을 가득 발라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 내 발목처럼 자주색 양배추 색으로 변해버릴 것 같기 때문이다.

Comillas까지 8.8km, 북쪽길의 순례길 십자가

오늘 만난 로렌조는 며칠 전과 달리 말 수가 급격히 줄어든 것 같았다. Somo에서 만났을 때는 이탈리아 커피 법까지 얘기해 주었는데 오늘은 어째서인지 걷기만 한다. 난 옆에서 어제 지낸 알베르게에서 이탈리아에서 온 봉사자를 만났다며 카밀라 이야기를 했는데 별로 반응이 보이지 않아 나도 점차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독일에서 온 사라는 23살로 지금까지 만난 순례자 중 가장 어린 나이였다. 나이를 들었을 때 나도 모르게 와우, 너 베이비네, 하고 외치니, 사라는 내 나이를 듣고 나무처럼 나이가 많다는 독일식 유머로 대꾸했다. 함께 깔깔 웃었다. 그러고 보니 사라는 얼마 전 Gueme 알베르게에서 스페인어를 영어로 통역해 준 그 순례자였. 풋풋하고 같이 걷는 사람들과 장난도 자주 치고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대학생들을 보는 느낌이었다.

사라, 빈센트, 로렌조. 그리고 바라보고 있던 절벽과 바다

태양이 너무 따가워 걷다가 처음 보이는 바에 들어가 커피를 시키고 앉아 있는데, 뒤이어 이름을 르는 벨기에 청년까지 합류했다. 좀 뒤처져 있어 아까 만나지 못했었으나 총 4명이 오늘 함께 걷고 있었던 것이었다. 인사를 나누는데 갑자기 청년들 사이에 끼어 있는 내가 어색하고 낯설었다. 1,2명 사이는 편하지만 3명 이상 속에 섞이면 금세 불편해진다.


각자 시킨 음료와 함께 작은 크래커에 Pate를 바른 핑거 푸드가 함께 서비스로 다. 난 잘못 시킨 줄 알고 우리가 시킨 것인지 물어보니 벨기에 청년이 스페인에서 음료를 시키면 이런 식으로 간식을 내준다고 알려다. 난 주로 혼자 커피를 마셔서  오늘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다.

어디까지가 하늘이고 어디서부터가 바다인지 알 수 없다.

휴식을 마치고 언덕을 넘어 올라가니 아래 바다가 하늘색과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파랗고 하얀 정경이 눈에 들어왔다. 멈추지 않을 수가 없는 순간이다. 모두들 감탄하며 사진을 찍었다. 20분쯤 더 걸어 Comilla에 도착했다. 이 네 명은 모두 Comilla에서 머물 예정이어서 난 모두에게 인사를 건넨 후 가우디 건축물이 있는 쪽으로 했다.

El Capricho de Gaudi 박물관 안내판과 원거리 전경

가우디 건물은 독특한 외형 때문에 지도를 보지 않아도 멀리서 저기가 거기구나하고 단번알아봤다. 구불구불 골목길을 지나 입구에 도착했는데, 그냥 건물 외관만 보려 해도 7유로를 내야 한다고 해서 그냥 뒤돌아 나오려는 찰나, 매표소 직원이 여기서 왼쪽으로 두 번 꺾어 돌아가면 외관비교적 가깝게 볼 수 있는 장소가 있다고 알려주었다. 아쉬운 마음이 갑자기 횡재한 기분으로 바뀌었다.

Sobrellano Palace, 창문으로 보이는 벽과 등이 신비롭다.

직원분의 안내대왼쪽 담벼락을 따라 코너를 두 번 돌아가니 옛날 스페인 왕이 여름휴가를 보내던 성이 나왔다. 이곳 또한 박물관으로 운영 중이었는데, 정원은 무료로 입장이 가능하다고 쓰여있었다. 아마 이곳에서 가우디 건축물을 볼 수 있다는 말이었던 것 같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도 정원에 들어가니, 정말 가우디 건물이 조금 보였다. 오즈의 마법사에 나올법한 건물을 사진으로 남기고 다시 오늘의 목적지로 향했다.

El Capricho de Gaudi 외관 정면과 독특한 창문

3시간을 더 걷고 난 뒤에야 San Vincete에 도착했다. 저녁 5시 반이 넘어가는 시간. 어제 생각해 두었던 마을 입구에 있는 호텔로 향했다.  그런데 너무 늦게 도착했는지 남은 방이 없다고 했다. 휴양지였는데 알베르게가 아니라 호텔이니 방이 있을 거라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숙소에 들렸는데 방이 없다니 북쪽길에서는 처음이었다. 30km를 걸었는데 다음 마을까지 갈 생각에 거의 울기 직전이었는데 프런트 직원분이 마을 안으로 들아가면 호스텔이 있으니 그리로 가라고 일러줬다. 40분을 더 걸어가니 알베르게 나왔고 다행히 침대가 있어 체크인을 하고 짐을 풀었다.


배가 고파 빨리 옷을 갈아입은 후 공용 공간으로 나오니 어제 알베르게에서 기타 치며 노래 부르던 그 오스트리아 아저씨가 계셨다. 아침이 시작되기도 전 모두가 잠들어 있을 때 인사도 없이 나갔다고 플로린이 얘기했던 게 떠올라 살짝 인사만 건넸다. 해가 없어지기 전 조금이라도 빨래를 말리려 뒤뜰로 연결되어 있는 방으로 건너가니, 이번에는 어제 내가 질문을 했었던 네덜란드 야콥 아저씨를 마주쳤다. 또 한 번 인사를 건넸다.


아침에 바게트 3조각, 커피, 그리고 점심에 커피를 마신 것이 다 여서 저녁을 먹기 위해 인근 마트에 가서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재료, 매일 같으면서도 조금씩 다른 나만의 메뉴인 바게트, 치즈, 샐러드를 사서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저녁을 먹으며 내일 이동할 경로를 살펴보다가 새로운 것을 발견했다. 이틀 뒤나오는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길로 가면 Primitive의 시작점인 Oveido가 나오고, 계속 북쪽길로 가면 Gijon이 나오는데 어느 길로 갈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는 것이다. 침대로 돌아와서도 오비에도 가는 길을 계속 오르락내리락 살펴봤다. 오비에도를 가게 되면 하루가 더 연장되고 북쪽

길을 벗어나게 된다. 그런데 지금까지 하루에 30km씩은 걸어서 그런지 여유는 있는 데다가 중세도시 같은 오비에도를 들렀다 가고 싶은 마음이 들어 오비에도 쪽으로 가기로 마음을 굳혔다.


오비에도를 살펴보다 지도를 쭉 훑어보니 13일을  걸어와 이제 500km 정도가 남아 있다. 내일은 어제저녁을 먹으며 플로린이 이야기한 Anna가 운영하는 알베르게에서 머물 예정이다. 10명만 머물 수 있기 때문에 일찍 일어나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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