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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w Sep 06. 2023

두 번째 산티아고, 열아홉째 날

Gijon-San Martine de Laspra 36.83km

2023.05.02


인간의 코는 왜 코를  있으며 소리까지  수 있도록 창조 걸까. 


방을 고를 때 침대 4개와 6개짜리 옵션 중에 코골이를 피하기 위해 일부러 사람 적은 방을 선택했는데 이건 몇 명이냐 하는 사람 수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와 피터 아저씨는 코를 안 고는데 나머지 2명 중 한 명이 코끼리처럼 코른 골아 잠을 거의 잘 수가 없었다. 일찍 일어나면 아침을 일찍 먹고 출발하면 좋을 텐데 오늘은 아침식사가 9시다.


너무 피곤하니 잠도 얄팍하게 들어 코 고는 소리가 트럼펫 같았다. 하는 수 없이 눈을 뜬 채로 계속 누워 있다 시인지 모른 채 아래층에 내려갔다가 다시 위층으로 올라오기를 몇 차례 반복하며 뭉친 다리를 풀어주고 다시 침대로 돌아왔다.


누워서 오늘내일 일정을 확인하기 위해 앱을 열었는데 갑자기 앱이 오류가 났다. 결국 앱을 삭제한 후 재설치했는데도 계속 오류가 난다. 지난 3주간의 일정이 기록되어 있는데 일기를 매일 써 놔서 애써 복구하는 것을 포기하고 잠깐 눈을 감고 뜨니 오전 8시다.

히혼의 끝

어나서 짐을 싸고 있는데 체코 아저씨는 아침을 안 드시고 미리 가신다고 하여 인사를 나눴다. 아저씨도 한숨도 못 잔 얼굴이다. 오늘도 같은 숙소에서 만날 예정이어서 조금 있다 만나기로 하고 먼저 보내드렸다. 짐을 모두 챙겨 아래층에 내려놓고 9시가 되자마자 아침을 먹었다. 


오늘은 갈 길이 다. 하필이면  숙소가 도시 초입에 있어 히혼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빠져나오는 것에만 1시간 반이 걸렸다. 그 이후에는 도로를 따라 조성된 산업지구를 지나  걸었다. 오늘 오후  3시에 통화할 일이 있어 와이파이가 되는 카페에 가 있어야 했다. 혹시 카페가 안 나올까 강렬한 햇빛 아래 약 28km를 5시간 20분 만에 걸었다. 목적이 있는 삶은 다리의 원동력이 된다. 카페에서 무사히 통화를 마친 후 다시 걷고 또 걷고 또 걸었다.


오늘처럼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걷는 길은 지루하니 심심풀이 견과류가 필요하다. 중간에 Marcedonia 마트에 들러 걸으면서 먹을 견과류를 사면서 더위를 식힐 겸 마트를 한 바퀴 돌며 스페인 과일과 과자를 구경했다. 특히 하몽이 통째로 걸려 있는 정육 코너는 우리나라 조기를 꿰어 팔듯이 아무렇지 않게 줄 맞춰 걸려있다.

마르케도니아 마트의 스페인 치즈와 하몽

모둠 견과류를 아작아작 씹으며 산업지구를 지나 역사가 깊은 아빌라스 마을에 도착했다. 12세기 건물이 아직까지 보존되어 있어 눈을 깜박일 때마다 사진을 찍고 싶어졌다.

마을 입구 건물에 그려진 아빌라스 역사와 상징

아빌라스에서부터 물집 잡힌 발가락이 많이 아프고 길을 찾느라 앱을 보고 걷다가 인도 위에 방치된 바위만 한 통나무 조각을 걷어차 왼쪽 복숭아뼈가 점점 붓고 아파왔다. 

오래된 거리와 골목의 꽃집

잠시 아빌라스 성당을 들려 기도를 하려 했는데 교회가 닫혀 있다. 프랑스길에서는 매일 한 번씩은 성당을 지나칠 때마다 들어가 기도를 하곤 했었다. 그런데 북쪽길에서는 성당이 대부분 닫혀 있어 안에 들어가서 기도했던 적이 손에 꼽는다.

아빌라스 성당

성당에서 내려가 건너편의 큰 공원 벤치에 앉아 신발을 벗어 발가락을 확인해 봤다. 물집이 있던 곳이 아물다가 살이 갈라져 피가 나고 있었다. 갖고 있던 응급키트에서 소독약과 밴드로 처치를 하고 잠시 벤치에 누워봤다. 나무들이 아치형으로 하늘을 감싸듯이 보였다.

아빌라스 성당 맞은편의 중앙광장

다시 2시간을 걸어 몇 개의 작은 마을을 지나 높은 언덕에 있는 오늘의 숙소에 도착했다. 올라갈 때는 힘들지만 언덕에서 내려다 보이는 마을 전경이 쌀이 막걸리가 되듯이 그때의 고생을 보람으로 바꿔놓는다. 6시가 넘어 도착하니 체코 아저씨가 나를 보자마자 걸음이 빠른 내가 너무 안 와서 걱정하셨다고 하며 반겨주셨다.

체크인을 하고 크레덴시알을 받아보니 찍혀 있는 도장이 신발 모양이다. 2층으로 올라가 씻고 발을 다시 살피며 앉아서 약을 바르는데 바싹 구운 고소한 냄새가 위층까지 난다. 내가 좋아하는 계란프라이가 나온다는 예감을 하며 아래층으로 내려가니 채소 스튜와 밥, 계란프라이, 디저트로 코코넛 요플레까지 식탁에 준비되어 있었다.

크레덴시알에 찍는 도장은 알베르게의 상징이다.

식탁에 모인 구성원은 나를 포함하여 총 3명의 순례자뿐이다. 알베르게 주인은 29살의 젊은 레이디로, 3살 때 포르투갈 부모님을 따라 스페인으로 넘어와 지금까지 살고 있다고 했다. 원래 직업은 약사였는데, 매일 아픈 사람들을 마주하고 특히 코로나 때는 하루를 멀다 하고 비상근무를 14시간 동안 하다 보니 집 밖을 나갈 때마다 일을 그만두고 싶다고 매일같이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다 작년 9월, 우리처럼 북쪽길을 걸은 후 알베르게를 알아봐야겠다고 결심하였고 지금 여기 알베르게를 월세로 임차했다고 다. 그렇게 올해 4월 10일 알베르게를 첫 오픈 하였고, 나는 이 알베르게의 121번째 순례자가 되었다. 3주 동안 120명이 순례자가 다녀간 이다.

에스토니아 봉사자가 그린 스케치

주인 왼쪽에 에스토니아에서 온 봉사자가 1명 앉아 있었다. 자신을 아티스트, 주로 그림을 그리는 가난한 화가라고 소개했다. 이번 산티아고를 올 수 있었던 것 또한 순례길을 걷고 싶었지만 수중에 200유로밖에 없었던 자신에게 주변 지인들이 조금씩 여비를 보태주어 비행기값과 경비를 마련할 수 있어 올 수 있었다고 했다. 지금은 새롭게 오픈한 이 알베르게에서 재능기부를 하며 잠시 지내고 있다는 것도 더해 특별한 자신의 순례길을 소개했다. 저녁을 먹은 후엔 함께 이 봉사자가 그동안 산티아고 을 걸으며 그린 그림을 감했다.


방으로 돌아와 일기를 쓰다가 발목이 더 붓고 아파 약사노릇이 싫어 그만둔 주인 레이디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발을 보여주며 물어보자 타박상 약을 주었다.

식탁 너머 보이는 노을 진 하늘

내일도 많이 걸어야 하기에 내일 아침에는 괜찮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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