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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w Sep 05. 2023

두 번째 산티아고, 열여덟째 날

Amandi-Gijon 28.41km

2023.05.01


달이 바뀌어 5월이 되었다. 새롭게 넘긴 달의 첫째 날은 늘 조금 설렌다.

해가 산에 걸쳐 있는 아침 7시 52분

어제 주인아저씨의 경고대로 할아버지는 코를 심하게 골며 주무셨다. 새벽 4시 반쯤 잠에서 깨 잠들었다 깼다를 반복하니 아침 7시가 되었다. 아침 메뉴는 미니 빵, 뮤즐리, 커피, 비스킷. 그릇에 하나씩 놓여있어 종류대로 먹고 커피를 마신 후 7시 30분쯤 길을 나섰다. 본격적인 산길을 올라가기 전 샘물에서 물을 채웠다.

Villaviciosa 마을을 지나가는 순례자를 위한 샘물

출발한 지 30분 정도 지났을 때, 오비에도와 히혼의 선택의 기로점이 나타났다. 표지석에 왼쪽과 직진의 두 방향 길이 함께 새겨져 있었다.  여기가 그곳이구나 하며 사진으로 아쉬움을 채웠다. 아쉬움이 생기는 이유는 두 가지 길에서 한쪽을 선택하면 다른 가보지 않은 길이 되기 때문이리라. 사는 것도 마찬가지다. 동시에 두 길을 걸을 수는 없다.

오비에도와 히혼의 분기점

체코 아저씨도 오늘 가는 Gijon의 숙소가 같아 숙소에서 같이 출발했다.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기 어려우니 말없이 각자 걷기를 오래 지나지 않아, 심심하셨는지 구글 번역기를 열어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으며 산을 올라갔다. 구글 음성 번역기의 도움으로 나눈 대화는 이렇다.

자세히 봐야 보이는 작은 송아지가 낮잠을 자고 있다.

피터 아저씨는 체코에서 장애인 고용과 관련된 사회적 기업에서 일을 하신다고 했다. 10년째 일을 하고 계신데, 체코 최저임금이 700유로 정도인본인이 대표이면서 최저 임금에 가까운 900유로 정도 되는 월급을 받는다고 하셨다. 회사는 체코 노동부의 지원을 통해 장애인을 고용하고 고용된 장애인들이 주로 소방대원 작업복에 자수를 심어 납품하는 일이라고 한다. 10년 전 처음 10명의 직원들과 시작했는데 지금은 약 70여 명으로 확장되었고, 직원들은 하루 2시간에서 6시간 정도 작업을 한다고 했다.


올해 50세라고 하셔서 이 일을 하기 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는지 여쭤보니 15년 정도 청소 업체를 운영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밤낮없이 일만 하다 보니 돈도 벌고 집도 있지만 일이 너무 힘들어 이제 그만하고 싶어 지금의 사회적 기업을 만들고 예전보다 훨씬 적은 돈을 받으며 일을 하지만 만족스럽다고 하셨다. 그리고 이번의 순례길로 난생처음 연속 40일의 휴가를 쓰는 것이라고 하셨다.

곧게 하늘 높이 뻗은 나무

이러한 상세한 얘기를 구글 번역기에 의존해 가며 대화를 이어나가다 보니 높은 산도 시간도 훌쩍 지나갔다. 드리어 내리막길이 나오고 4시간이 넘어서야 만난 바는 오늘 노동절을 맞아 문을 았다. 목이 너무 말랐지만 앱에는 앞으로 나오는 마을에도 바가 없다고 했다. 그렇지만 그동안 체력이 늘었는지 산을 타도 이상하게도 크게 힘들지 않았다. 나는 계속 걷기로 하고 아저씨는 문 닫힌 바에 붙어있는 야외 테라스에서 좀 쉬었다 오신다고 하여 나는 계속해서 Gijon으로 향했다.

그림같은 산간마을

가는 길에 노란색 화살표가 잘못되어 있어 길을 종종 헤매면서 멀리 Gijon이 한눈에 보이는 마을까지 도착했다. 이 마을에서 숙소까지 다시 8km를 걸어가야 했다. 1시간을 걸었을까, 목이 너무 마르고 배가 고팠다. 순례길을 걸으며 체력만 느는 것이 아니라 먹는 양도 비례한다.

이 집에는 페르난도 목수가 살고 계시다.

중간중간 문을 연 레스토랑을 보긴 했지만 연휴를 맞아 세련되게 차려입고 가족 단위로 식사를 하고 있는 그 틈에 땀 냄새를 풍기며 앉기가 적절한 상황같이 않아 일단 숙소까지 계속 걸었다.


다행히 숙소 근처 주유소에 딸린 편의점이 열어 있었다. 바나나를 사고 싶었는데 통조림, 음료, 빵만 판매하고 있어 바게트와 미니 크루아상 3개, 레몬 맥주를 사서 나왔다. 운이 좋게도 바게트가 금방 나와 뜨끈뜨끈해 숙소 가는 길에 맥주와 함께 순식간에 먹었다. 배가 고파 빨리 걸은 것인지 체크인 시간인 3시 보다 30분 일찍 도착하여 정원에 앉아 체크인 시간까지 기다렸다.


이곳은 일반 호스텔이면서도 직원들이 봉사자들 인 것인지 청소년처럼 보이는 어린 청년들이 직원처럼 여기저기 보다. 30분 동안 체크인 시간을 기다리며 혹시 주변 마트가 연 곳이 있는지 찾아보니 까르푸 익스프레스가 열었다고 보여 좀 있다 시도해 보기로 했다.


드디어 3시가 되어 체크인을 하는데 충격적 이게도 이 호스텔은 아침을 9시에 먹는다고 했다. 늘 아침 8시에는 길을 떠났었기에 아침을 9시에 먹으면 하루가 많이 늦어질 것이지만 그렇다고 아침을 안 먹고 걸을 수는 없었기에 알겠다고 한 후 방에서 짐을 정리했다.


앉아서 쉬고 있은 지 1시간 정도 지나자 체코 아저씨가 도착하였다. 난 아저씨에게 까르푸가 열었는데 같이 가시겠는지 물어보니 배낭에 먹을 것이 많다고 사양하셨다. 마트에 가는 길에 해안가 주변으로 파라솔을 펴놓고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 서핑을 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모래사장도 바다도 넓다.

마트에 도착했다. 까르푸 익스프레스에는 내가 좋아하는 크래커를 판다. 크래커를 얼른 집고 또 내가 좋아하는 쥬키니 호박, 당근, 시금치와 파마산 가루, 계란, 생수를 바구니에 담았다. 채소를 채칼로 길게 면처럼 만들어 볶은 후 계란 프라이를 얹고 치즈를 뿌려 먹을 계획이었다. 빌딩과 호텔이 가득한 길을 헤쳐 돌아오는 길은 바닷바람이 굉장했다. 바다에 반사된 빛 또한 강렬했는데 해는 뜨겁고 바람은 차가우니 콧물이 주르륵 흘렀다.


숙소에 돌아와 채소를 다듬고, 쌀을 안친 후 저녁밥을 만들었다. 오랜만에 내가 좋아하는 재료로 만든 저녁이었다. 저녁을 먹고 올라와 씻으려고 보니 침대 가림막에 곰팡이가 잔뜩 피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얼굴에 맞닿은 위치라 교체를 요청했는데 이 단순한 작업에 매니저를 기다려야 해서 2시간 지난 뒤에나 침대에 누울 수 있었다. 내일은 도로를 따라 걷기만 해서 조금 지루한 길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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