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니 어르신들은 벌써 짐을 싸고 계셨다. 난 어제 미리 싸 놓아서 침낭만 잘 말아 넣으면 됐기에 아침을 기다리며 내일 히혼에서 잘 숙소를 예약하기로 했다. 막상 호텔에서 자려니 늘 알베르게나 호스텔에서 잤던 숙박료와 비교가 되면서 돈이 아까웠다. 하룻밤 지낼 곳에 언니가 보내준 돈을 다 쓰기가 아까워 결국 반가격의 호스텔로 예약했다. 예약을 마치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아침은 미니 머핀과 비스킷, 커피.
자리에 앉기 전 어제 한 빨래를 만져보니 전혀 마르지 않았다. 덜 마른 옷을 입고 밖을 나왔다. 조금 걷자 비가 부슬부슬 내려 우비를 입었는데 우비를 입으니 안은 더워 땀이 많이 나서 젖은 옷에서 열기가 나는 것 같았다.
오늘 걷는 길은 약 25km. 긴 거리는 아니지만 작은 마을 9개를지나간다. 일요일이라 그런지 가게 대부분이 닫았고 거리에 사람도 거의 보이지않았다. 시골 마을을 6개쯤 지나니 걸으면서도 졸음이 쏟아진다. 출발하기 전 Colunga 마을에 바가 있다는 표시를 봐서 여기에 도착하면 잠시 커피를 마실 생각으로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Colunga 마을에 도착하니 마을 입구에서부터 사람들이 모여 있고 스피커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사람들의 복장을 보니 마라톤이 있는 모양이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마라톤이 막 시작할 참이었다. 나도 함께 서서 마라톤이 시작할 때까지 기다려본다.
Colunge 성당, 스타트라인에 서서 출발을 기다리는 사람들
4시간쯤 걸었을 까, 언덕길을 넘어가는데 아주 작은 요크셔테리어가 왕왕 짖으며 내 쪽으로 뛰어오는 게 보였다. 이런 순간은 그냥 지날 칠 수 없어 집 밖의 작은 바위에 가방을 내려놓고 앉아 강아지를 기다렸더니, 내 품으로 뛰어들어와내 품에 앉아 가만히 있었다.
곧 집 안에서 부르는소리에 강아지는 다시 안으로 돌아갔다. 나도 가려는데 이번에는 고양이다. 고양이가 내 쪽으로 다가오더니 앞에서 배를 발라당 뒤집으며 애교를 부린다. 다시 주저앉아 고양이를 쓰다듬었다. 이번에는 작은 소년이 집에서 나와 고양이와 놀고 있는 내쪽으로 오더니 스페인어로 인사를 건네왔다. 서로 통하지 않는 말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아이를 부르는 아주머니 소리에 소년이 일어났다. 나도 인사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양이와 소년
1시간쯤 더 걸으니 Villaviciosa 마을이 나왔다. 마을 이름의 뜻이 Rich village라는 유래를 갖고 있다고 하는데 과거 무역이 활발했던 곳이라고 했다. 마을 중심에 도착하니 카페와상점이 제법 많았다. 오늘 도착할 알베르게가 이곳에서 30분거리에 있어 바에 들리지 않고 도로변 바위 앉아 잠깐 어깨를 쉬게 한 후 다시 걸었다.
숙소에 도착하니 큰 개가 버선발로 마중 나와주었다. 오늘은 마중의 날인가 보다. 오늘따라 동물친구들이 유난히 반겨준다.
순례자들이 오면 일일히 맞이해 준 친절한 치코
도착하니 아직 2시쯤이었다.해가 있을 때 빨래를 하고 햇볕에 널어 뒀다. 일기예보에 비가 온다고 했지만 마을을 넘어와서 그런지 감사하게도 지붕 위로 해가 눈부시다. 침대에서 일기를 쓰고 있는데 누가 인사를 건네온다. 애나 아주머니 알베르게에서 내 옆에 앉아 같이 저녁을 먹었던 그 체코 아저씨였다. 체코에서 온 피터 아저씨는 영어를 거의 하지 못해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반갑게 인사를 건네주셨다.
순례길에서 체코 사람은 프랑스 길에서도 북쪽길에서도 피터 아저씨가 처음이다. 인사를 마치고 구글 번역기를 켜서 대화를 이어 나갔다. 아저씨는 그저께 거의 40km를 걸으셨고 오늘은 10km만 걸으셨다고 했다. 그리고 내일은 히혼으로 가신다고 했다. 이렇게 나를 보며 반가워해주시는 분을 만나니 오늘은 길에서 만난 동물 친구들과 체코 아저씨의 반가움이 담긴 미소로 기분이 좋은 오후이다.
장미가 멋진 뒤뜰
나도 내일 히혼으로 간다.이틀 전에는 오비에도로가려했으나 Primitive 순례길은 다음에 다시 오리라 하며 마음을 바꾸었다. 그대로 북쪽길 해변을 따라 총 30km 걸어야 해서 제법 오래 걸을 예정이다.
히혼에는 카미노 순례자를 위한 알베르게가 없다. 산 세바스티안처럼 큰 휴양 도시이다. 아쉽게도 내일 5월 1일은 노동절이라 큰 슈퍼마켓은 닫아 호스텔에서 요리를 해 먹을 순 없지만 빌바오를 지난 이후 오랜만에 큰 도시에서 하룻밤 지내며 도시 곳곳을 볼 수 있을 거란 기대가 되었다.
빨래를 다 널고 숙소에 와이파이가 없어 노트북을 켜 일기를 쓰며 저녁을 기다렸다. 저녁은 스페인 전통 빠에야,채식주의자를 위한 채소가 듬뿍 들은 노란색빠에야였다. 그리고 샐러드와 디저트까지.
예쁜 노란색 빠에야와 시나몬 푸딩
영어를 잘하시는 주인아저씨 옆에 앉아서 그런지 내 와인잔이 계속 채워졌다. 식사를 하며 앞자리에 앉은 폴란드 청년의 북쪽 순례길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누군가 주인아저씨께 산티아고 북쪽길을 걸으셨는지 물어보니, “나는 순례자야”라고 바로 대답하시는 것이 멋졌다.
주인아저씨는 20번 넘게 순례길을 걸으셨다고 한다. 알베르게 운영은 4월부터 10월까지만 하니, 알베르게를 닫는 11월에 주로 카미노를 걷고 11월에도 비는 내리지만 4월보다는 비가 적게 내려 걷기에 좋다고 한다.
나는 걸어본 순례길 중 어느 곳이 가장 마음에 드는지 물어봤다. Primitive 길이 가장 좋으셨다고 하는데, 가보지 않은 길은 늘 궁금해진다.프랑스길과 북쪽길을 다 걸으면 다음은 Primitive길을 가보고 싶다.
주인아저씨는 장난스럽게왼쪽의계신 할아버지가 코를 심하게 고니 귀마개를 잊지 말라고 선포하든 알려주셨다.소박하고 정감 있는 저녁, 모두들 이른 잠자리에 들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