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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ew Sep 12. 2023

두 번째 산티아고, 스물 여섯째 날

Gontan-Baamonde 40.38km

2023.05.09


오늘은 어제 원래 걷기로 했던 40km를 걷기 위해 일찍 출발했다. 일어나 잠옷을 갈아입고 어젯밤 미리 싸 놓은 배낭에 넣은 뒤 바로 숙소를 나왔다. 어제 스무 명쯤 숙소에 있었던 것 같은데 모두 일찍 출발한 듯 신발장에는 내 신발과 두 명의 신발만 남아있었다.


오늘의 길은 평평한 40km를 걸어도 크게 힘들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몸이 아프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 큰 실수였다. 8km쯤 걸었을 때 도저히 걸을 힘이 나지 않았다. 이번 산티아고 순례길 중 가장 몸이 아팠던 것 같다.


일단은 몸이 계속 너무 안 좋으면 Gontan과 Baamonde 중간 지점인 Vilalba에서 자고 가기로 하고 계속 걸었다. 걸으면서 당장은 커피를 마시면 좀 힘이 날 것 같아 구글지도를 보며 근처에 바가 있는지 찾아봤지만 주변에는 도로만 있을 뿐 아무것도 있지 않았다. 어제 사둔 식량도 어제 다 먹어 아침엔 남은 견과류만 조금 먹었던 터라 걸을수록 점점 배는 고파오고 몸에 힘이 빠져 다리가 앞으로 가는 듯 몸이 앞으로 가는 듯 걸었다.


순간, 눈앞에 Bar 200m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순례길 방향은 아니었지만 일단은 너무 배가 고파 커피라도 마셔야 했기에 그리로 향했다. 200m를 걸어왔는데 바는 닫혀 있었다. 다시 구글 지도를 보니 1km 더 가야 빵집이 있는 것이 보여 그리로 향하기로 했다.


지도를 확인한 후 고개를 드니 눈앞에 희미하게 무지개가 보였다. 무지개가 사라지기 전에 얼른 사진을 찍었다. 사실 무지개를 태어나서 처음 본 것은 작년 프랑스길에서였다. 다시 순례길에서 무지개를 보다니 작년 처음 무지개를 봤을 때 마치 네 잎 클로버를 발견한다면 이런 느낌일까 하는 행복감이 생각나 다시금 행복해졌다.

저기 멀리 희미한 무지개

도착한 빵집은 감사하게도 불이 켜 있었다. 마음이 급해 문을 잡아당겼는데 문이 열리지 않아 당황했다. 문 옆을 보니 초인종을 누르게끔 되어 있어 벨을 누르자 잠시 후 안에서 여성 분이 문을 밀라고 하는 손짓이 보였다. 배가 고프니 문을 잡아당기고 열리지 않자 그만 당황한 것이다. 약 4시간 만에 무언가 먹을 것을 보니 얼굴에 미소가 절로 펴졌다. 웃는 얼굴로 안으로 들어가니 바게트 칸이 텅 비어 있었다. 난 작은 목소리가 Pan? 하고 물어보니 안에서 70cm쯤 되는 바게트를 들고 나오셨다. 나는 ‘오!, 뽀꼬’하고 크기를 줄이는 제스처를 급히 취했는데, 다행히 그 반쯤 되는 크기의 바게트도 있었다. 한편에 바게트 말고도 에스빠나다라는 고로케빵마냥 겉은 조금 딱딱한 반죽에 치킨으로 속을 채운 빵도 샀다. 계산을 하며 찍은 무지개 사진을 보여드렸는데, 그냥 덤덤한 표정으로 ‘아하, 무지개구나’하는 것만 같았다. 무지개에 모두가 열광하는 건 아닌가 보다.


그렇게 다시 빵으로 든든해진 마음으로 문을 열고 나와 편안해진 마음으로 빵을 먹으며 길을 따라 10분쯤 걸었을 까, 재미있게도 아침부터 그토록 찾아 헤매던 Bar가 눈앞에 불쑥 나왔다. 허탈하게 웃으며 안으로 들어가니 길에서는 안 보이던 순례자들이 다 여기 있었나 보다. 이들도 나처럼 바를 찾아 순례길이 아닌 이곳까지 걸어온 것이리라.

그토록 찾아 헤매던 카페에서 라떼와 갈리시아 비스킷

나도 모르게 Everyone is here 하고 웃으며 인사를 건네자, 다들 웃으며 ‘올라’라고 인사를 셨다. 이제 막 가시려던 참이었나 보다. 테이블이 비면서 앉을자리가 생겼다. 커피를 마시는데, 아침에 너무 배고파 카페를 찾아 헤매던 것이 웃기기만 했다. 시간은 11시가 조금 넘었는데 아직 걸을 길이 30km 정도 남아 나도 카페를 나왔다. 문을 연 순간, 이럴 수가! 아까 사라졌던 무지개가 다시 피어 있었다. 이번에는 매우 선명하고 큰 무지개였다. 다시 사라지기 전에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찍어 보내며 사람들과 행복을 나눴다.

정말 무지개는 빨주노초파남보 였다.

2시간을 더 걸으니 Vilalba 마을에 도착하였다. 몸 상태도 오전보다 많이 좋아진 것 같아 그냥 마을을 지나가기로 했다. 지나가기 전 관광 안내소에 들려 크레덴시알을 펼쳐 Vilalba 마을 이름이 새겨진 도장을 받았다. 이제 남은 칸은 4개뿐이다. 산티아고 콤포스텔라에 거의 다다른 것이 눈에 확 보인다. 마을을 떠나기 전 큰 마트에 들러 오늘 저녁과 아침에 먹을 바게트 한 개, 샐러드 한 봉지, 사과 두 개, 칠리 후무스와 크림치즈 그리고 에담 치즈를 샀다.

오래된 나무다리 건너 돌담길 옆 집이 동화속 집같이 생겼다.

다시 3시간 정도 지났을 까, 다시 길에는 바 하나 보이지 않고 인적 드문 도로만 이어졌다. 목이 너무 말라 침을 꼴깍 삼키며 길을 걷고 있었다. 아까 물을 샀어야 했는데, 너무 무거울까 봐 물을 사지 않고 길에서 물을 마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 실수였다. 생각과는 달리 샘물이 보이지 않아 목이 타들어가고 더군다나  기침까지 나오자 마른 피맛이 느껴졌다. 목이 심하게 아프기 시작했다.


일단은 계속 앞으로 걷는 것밖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러다 도로 옆에 주택이 하나 있어 고개를 돌리니 할아버지 한 분이 나를 보고 계셨다. 나는 처음으로 길에서 혹시 물을 한 컵만 떠갈 수 있는지 여쭤봤다. 그런데 손만 나갈 뿐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목이 잠겨 버린 것이다. 쉰 목소리도 나오지 않아 가방에서 물컵을 떠내 손짓으로 물을 마시고 싶다고 보여드렸다. 할아버지께서는 ‘Agua?’ 하시더니 집으로 들어오도록 손짓으로 마당 수도꼭지에서 물을 떠먹을 수 있게 해 주셨다. 난 서서 두 컵을 연달아 마셨다. 다시 감사 인사를 하려 했지만 목이 잠겨 더 이상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고개를 숙여 인사를 대신하고 나머지 길을 걸었다. 걸으면서 오늘은 아침부터 뭔가를 찾아 구하는 날인가 싶었다.

옥수수가 가득 들어있는 옥수수 집

저녁 6시를 10분 앞두고 Baamonde에 도착했다.  Baamonde 공립 알베르게는 입구는 작은데 내부는 90여 명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컸다. 체크인을 할 때 여전히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고, 계속 재채기와 기침이 심해져 내일이 걱정되었다. 근육통이나 열은 없어 다행이었지만 그래도 목이 너무 아파 약을 먹을까 싶었지만 5일 동안 약을 먹었는데 별로 차도가 없어 이건 약으로 나을 것 같지 않아 일단 오늘은 저녁을 먹고 몸을 쉬도록 일찍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빽빽하게 긴 나무 사이를 걸을 땐 기분이 멋있다.

하루 이틀정도 조금 더 걸으면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 100km 시작점이 있는 곳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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