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MBTI는 OOOO입니다
ADHD 검사를 고민하던 찰나에 내 목소리를 도청한 유튜브가 추천해 준 영상은 다음과 같았다.
작년 민희진 프로듀서 기자회견이 굉장히 뜨거웠고, 본인의 MBTI와 ADHD를 언급하면서 함께 화제가 되기도 했다. <멘탈탄탄|정신과의사의 멘탈 관리 채널> ADHD 관련한 콘텐츠에 댓글로 ENTP와 ADHD와의 관련성을 찾으시고 제작하신 영상으로 보인다. 이 영상을 언급하는 이유는...
그렇다, 나는 ENTP!
* 흔한 ENTP의 특징
□ 관심받는 것 좋아함
□ 일 벌이는 것을 좋아하지만 끈기는 없음
□ 한 가지에 집중하기 어려움
□ 아이디어가 넘침
□ 그림 또는 글쓰기
□ 자신의 의견을 고집하는 경향
□ 잔실수가 많아 덤벙거린다는 소리를 들음
□ 즉흥적, 충동적
□ 토론이나 논쟁거리를 좋아함
□ 마이웨이, 이상주의자
□ 내 의견과 상대 의견 다르면 설득함
□ 타인이 나에게 간섭하는 것을 싫어함
영상에서 선생님들께서도 말씀하시지만 MBTI가 기질적인 성격과 후천적으로 형성된 성격을 포괄하기 때문에 부정확할 수도 있으니 ENTP과 ADHD 둘 다에 해당되는 것 같다면 성격의 문제인지 병의 문제인지 잘 고민해 볼 것을 권한다. 나도 MBTI의 척도와 ADHD의 특성을 비교해 보고자 가벼운 마음으로 작성하였으니 독자 분들도 재미있게 즐겨주셨으면 하는 마음이다.
T(Thinking ) : 진실과 사실에 주로 관심을 가지며, 이성적, 논리적, 분석적이며 객관적으로 상황을 판단한다.
F(Feeling) : 사람과의 관계에 주로 관심을 가지며, 정서적, 포괄적, 감정적이며 주변 상황을 고려하여 판단한다.
MBTI를 몰라도 "T발 너 C야?" 하는 밈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상대방에게 공감해 주기보다는 사실과 논리로만 상황을 바라보는 T인간을 놀리는 말로 한 때 유행했다. T인간으로서 T 나름대로 걱정과 공감의 대화를 한 건데 억울하기도 하지만 뭐, F사람들이 그렇게 느낀다고 한다.
ADHD의 특징으로 충동적인 성향으로 말에 필터링이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 말을 하면서 상대방에게 할 말로 적절한지, 필요한 말인지 깊이 있게 생각해보지 않는다. 이런 대화방식이 상대방의 감정보다는 이성 중심으로 대화하는 T의 성향과 닮았다고 여기지는 것 같다. 둘 다 가진 나의 생각은 조금 다른데...
새로운 업무 도입을 두고 상사와의 갈등 중, 꼭 필요한 업무는 아니지만 나는 업무가 늘어나서 싫고, 상사는 이미 마음을 굳힌 상황이다.
-> 됐고,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겠다. "말씀하신 그 업무는 상위 법, 매뉴얼에 없는데,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ADHD적 특성 : 뒷상황 생각 안 함)
-> 말해봤자 어차피 해결 안 되니 말을 말아야지. "네 알겠습니다. 지난 ~~ 건의 후속조치로 근거 제시하고 진행하면 될까요?"(T의 판단 : 적당히 사회적이고 이성적인 판단)
동생이 우울해서 빵을 샀다고 한다.
-> 아, 어제 먹은 빵집의 빵이 맛있었는데! "어제 내가 빵을 샀는데..."(ADHD적 특성 : 산만함)
-> 우울한데 왜 빵을 샀을까? 대체 무슨 빵이길래 "무슨 빵 샀는데?"(T의 판단 : 논리적인 흐름)
상황과 사람에 따라 위 예시의 답변들을 둘 다 하는 편이다. 충동적인 성향도 있지만 나의 경우 판단방식이 T에 가깝다고 느낀다. ADHD 환자들의 경우 T와 F 다양하게 나오는 듯하다. 나의 어느 모습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 같은데, 나의 남편의 경우 나를 ENFP로 확신했다. 남들에겐 차갑지만 남편에게만 따뜻한 나의 모습♥
인식(Perceiving) : 계획이 있더라도 자율적이고 유연하며 유동적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판단(Judging) : 목적의식이 뚜렷하고,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P가 주로 계획을 세우더라도 잘 지키지 않고, 그에 따른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많은 ADHD 환자들이 겪는 시간관리나 체계화에서의 어려움, 부주의함 등이 이와 겹친다. 또한 행동을 실행하고 유지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 ADHD 환자의 특성상 엄격한 계획은 숨이 턱 막힐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P(인식형)과 J(판단형)이 거의 반반 나오는 ENTP다. 목표와 계획을 세우고 지키는 것을 좋아하고 또 어떤 때에는 계획을 아예 잊고 지내기도 한다. ADHD로 인한 강박과 충동이 표출된 게 아닐까 싶다. 업무나 학업에 있어서는 J 성향이 강하고, 이 외의 생활에서는 P답게 산다. 종종 덤벙거려서 숫자를 틀리거나 준비물을 빼먹기는 해도, 일을 시작하기 전에 할 일 리스트를 꼭 적어두고 하는 습관이 크게 도움되었다.
어쨌든 ADHD 환자라면 인지행동치료 차원에서도 조직화나 시간관리 기술을 꼭 익혀야 하지 않은가. 종종 강박으로 느껴질지라도 목적과 계획을 세우고 체계적으로 실천하고 기록하는 습관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약물을 복용하며 가장 중요한 목표가 매일 다이어리를 쓰고 기록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좀 더 J스러워진 나 자신을 기대해 본다.
감각(Sensing) : 대상을 인식하고 지각할 때 오감에 의존하고 현재에 집중, 현실을 중요시한다.
직관(iNtuition) : 상상력이 풍부하고 창조적이며, 나무보다 숲을 보려는 경향이 있다.
ADHD 환자 중에는 아이디어가 넘치고 창의적인 사람이 많다. ADHD 환자는 도파민이 부족하기에 새롭고 자극적인 대상에 흥미를 빠르게 느끼고, 특유의 산만함으로 인식하는 대상이 남들보다 양적으로도 많고 다양하다. 그런 부분이 바로 창의성과 연결된다. MBTI의 N 성향도 미래지향적이고 아이디어가 다양하다. 서치 해보니 ADHD 환자들의 MBTI로 N은 매우 흔한 것으로 보인다. ADHD 환자가 N이라는 것은 감각과 경험보다는 직관에 의존하는 성향이 그 이유라고 생각한다.
다른 교육 관련 유튜브에서 고기능 ADHD 환자의 추천 직업 중 하나가 전투기 조종사였는데 이유가 특이했다. 전투기가 급강하를 할 때 몸의 감각이 상승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고 한다. 조종사가 몸의 감각에 의존하지 않고 계기판 정보에 집중하여 판단할 필요가 있고, ADHD 환자들은 선택적으로 강한 집중력을 보이니 조종에 유리하다는 것이다.
영상 속의 교수님께서는 집중과 관련하여 설명하셨지만, 나는 '감각'에 집중해 보았다. ADHD 환자라면 보통 감각이 예민한 사람이 많다. 나의 경우 청각, 후각이 민감한 편이지만 또 나의 감각으로 얻은 정보를 의심하는 경우도 많다. '어? 지금 내가 들은 말이 이 말이 맞나?'라거나 '뭐라는지 못 들었어.', '어디서 담배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 맞나?' 이런 생각들을 하루에도 몇 번씩이고 한다. 실생활에서 중요한 소리나 냄새에 집중하고 걸러내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오히려 나의 감각보다는 직관(무의식)을 믿거나 다른 판단기준(타인의 의견, 객관적인 평가, 앞서 이야기한 계기판 등)을 믿는 것이 편하다.
덧붙여 ADHD 환자 특성상 작업 기억공간이 남들만큼 크지 않으니 문제해결을 위해 경험을 끌어오기 보다는 무의식에 가까운 직감에 의존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장기기억으로 남은 사례와 매뉴얼 내의 상황에서는 능숙하지만, 한 두번 겪어본 일이지만 익숙하지 않은 사례에 있어서는 순간적으로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기억이 안 날 때가 있다.
친정에 왔으나 엄마는 부재 중, 엄마가 오기 전에 밥을 미리 밥솥에 안쳐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밥솥과 쌀 확인. 그런데 밥솥 전용 쌀컵이 없다. 엄마에게 전화하여 밥솥 쌀컵이 없는데 밥을 어떻게 안치냐 물어본다. 그 말을 듣던 엄마, 그 상황을 옆에서 지켜보던 남편과 동생 어이를 상실한다. 정작 나는 주변의 반응이 이해가 안 되고 화가 나기 시작한다. 동생 왈 "언니야, 컵이 없으면 밥을 못 짓나?" "못 지ㅅ..."라고 말하려는 순간 20대까지 쌀컵 없이 냄비밥을 잘만 짓던 나의 과거가 떠오른다.
결국 그 날 모두의 놀림거리가 되었다.
익숙하던 루틴이나 매뉴얼을 조금이라도 틀어버리면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르는 나를 종종 발견한다. 돌이켜보면 어렵거나 겪어보지 못한 일이 아닌데도 지난 경험이 잘 떠오르지가 않는다. 이미 나에게 일어난 상황에 압도된 기분이다. 나의 뇌 속 (안그래도 남들보다 좁은) 화이트보드는 이미 닥친 상황만으로 가득 차있다. 그리고 과거에도 높은 확률로 그랬었겠지. 그래서 겪는 상황들이 체계화되지 못하고 느낌만 남는 게 아닐까 싶다.
* 이 부분은 특히나 영상이나 다른 인터넷 자료보다는 저의 개인적인 견해가 많이 들어갔기에 다른 ADHD 환자 분들의 의견이 있다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결론, ENTP 짱이다!
작년 지인찬스로 부모상담의 일환으로 TCI 검사를 받아볼 기회가 있었고, 나는 자극추구가 높고 인내력이 낮게 나왔다. 지인께서 본인과 비슷하다며 웃고 넘어갔는데, 훗날 ADHD 이야기를 꺼냈을 때 나의 검사결과를 언급하시며 공감해 주셨다. 알고 보니 지인께서도 비슷한 TCI 결과형태 + ADHD를 가지고 계셨던 것. 나와 같은 ADHD이지만 사회적 민감성이 굉장히 높은 편으로 ENFP다. 어린이집 선생님으로서 오랜 기간 활동하셨고, 요즘은 상담과 교육을 겸하시며 많은 아이들을 만나고 계신다. 좋아하는 분야를 발견하여 꾸준히 개발하는 모습과 좋은 대인관계 능력이 부러운 분이시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함께 그림 그리는 친구가 있다. 국립대 전기전자공학부에 합격한 수재이지만, 공기업으로의 취업도 접고 수학교육과에 재입학하여 지금은 전문 수학과외 선생님이 되었다. 그림을 좋아하고 잘 그리는 친구라 낮에는 디자인 회사에서 일하고, 밤에는 여러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쳐준다. 좋아하는 분야(수학, 그림)에서 뛰어난 집중력으로 적성을 잘 찾아간 친구이기도 하다. ADHD로 지루함을 견디기 어려워하는데, 디자인 회사에서는 주제 내에서 짧고 편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어 만족하고, 과외는 아이들마다 성향도 수준도 다르고 졸업하고 나면 또 새로운 아이들을 만날 수 있어 질리지가 않는다고 한다. 본인의 흥미와 적성에 맞게 본인만의 길을 찾은 이 친구가 매우 부럽고, 멋지다! 이 친구의 MBTI는 ENTJ로, 종종 튀어나오는 T스러운 공대생 모먼트마저 사랑스러운 친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