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도 하나의 특성이 된다. ADHD 어서 오고, 나 좀 독특한 사람 할래
ADHD는 발달장애의 일종이다. 병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한 부분도 있는데 disorder라고 장애라는 표현을 붙인 것은 '장애만큼 힘들다'는 의미를 주기 위한 목적도 내포한다. 많은 ADHD 환자들은 일상생활에서 수시로 어려움을 겪지만, 본인도 주변 사람들도 병으로 생기는 문제라고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집중력을 '개인의 정신력' 문제로 보기 때문에 ADHD 환자의 행동에 자책감이나 불안감을 불러일으키고 이는 여러 공존장애를 동반하기도 한다.
내가 ADHD 환자임을 밝히고, 약을 먹는다고 말했을 때의 주변반응은 이랬다.
T라미숙해 무관심형
"그거 그런 약 함부로 먹으면 안 된다! 보험들 때 불이익 있을 텐데?"
위로를 해주고픈 착한 친구형
"요즘 성인 ADHD 많다더라... 그랬구나."
이미 눈치채고 있었던 무당형
"내가 그럴 줄 알았다!"
다른 환자와 비교하는 의심형
"어, 내가 아는 ADHD 형과는 다른데?"
내가 ADHD임을 알게 된 지 그리고 ADHD 약을 먹기 시작한 지는 겨우 석 달이지만, 첫 작가로서의 주제를 ADHD로 정했다. 나는 ADHD를 진단할 수 있는 의사도 아니고, 심각한 증상으로 고생하는 ADHD 환자도 아니다. 비교적 평범하고 초보 ADHD 환자(?)인 내가 ADHD와 관련한 글을 써야겠다 결심한 것은 큰 고민 없이 그저 주제가 남들 보기에 흥미로울 것 같아서였다! ADHD 환자 특유의 충동성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글을 처음 연재하기 전에는 글을 쓰면서도 '나는 ADHD가 아니야!'라는 작은 속삭임이 마음속에 있었다면 이제는 아니다. 나는 ADHD 환자가 맞고, 그런 나 자신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ADHD가 아닌 적이 있었던가? 학창 시절 매일 발생하는 사칙연산 실수나 '틀린/아닌 것을 찾으시오' 실수. 숙제 범위를 착각해서 밤새워 다시 숙제를 하고, 맨 마지막장 시험지를 못 보고 풀지 않고 제출하는 그런 실수도 잦았지만 소소한 문제였다. 나에게 진짜 큰 고통은 외로움이었다. 종종 터지는 과한 행동과 말실수로 인간관계가 힘들었다. 물론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은 있었고 지금도 연락하고 지내는 친구들이야 있지만 여학생들에게는 당연한 '베스트프렌드'가 나에게는 어려웠다. 이후로의 회사생활, 육아, 집안일도 나는 몰랐지만 남들보다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도 ADHD이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그랬고, 가장 가까운 사람들은 어땠을까?
내가 ADHD 환자라는 동생의 의심은 어릴 때부터 시작되었다. 물건을 자주 부수고 잃어버리고, 주변 정리가 되지 않는 나를 보며 ADHD를 의심하긴 했지만 치료 대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가장 가까이에서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 매일 혼이 나면서도 문제를 고치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보며 동생도 답답해했다.
그 와중에 나는 동생을 보며 '얘도 내가 못 보는 곳에서는 사고 치고 다니겠지.'라고 생각하고, 보통은 그 정도로 사고를 치지 않는다는 생각조차 못했다.
내가 ADHD 검사를 망설이고 있을 때, 동생은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결과에도 크게 놀라워하지 않았다. 동생은 SNS로 얻는 각종 정보로 나의 병을 가장 잘 이해하면서 다른 심리, 발달장애는 없는지 적극적으로 의심해 준다(놀린다). 이런 나와 함께 자라는 조카들을 걱정해주기도 한다. 그렇지만 나의 행동 하나하나를 평가하지 않고 나보다도 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러려니 하며 바라봐준다.
검사 결과를 들은 동생의 담백한 대답, "그래 언니 ADHD일 것 같더라."
남편과 나는 회사에서 만났다. ADHD라서 가진 나의 특성들이 보이긴 했지만, 병이라기보다는 한 사람의 특성이라고 생각했지 문제가 있다고 느끼지는 않았다고 한다... 진짜 문제는 결혼을 하고나서부터!
"요리할 때 조금 설거지를 해가면서 하는 게 어때?" 하면 되는데 그냥 못한다고 한다. 왜?
"오늘 00 업체에 꼭 연락해!" 기억을 못 하는 건지 까먹는다. 아니, 하기 싫은 건가? 왜?
"이건 왜 여기에 뒀어?" 정리 정돈하라고 눈치를 주는데 나중에 한단다. 왜?
화를 내기도 했고 잔소리도 많이 했다. 노력한다고 하는데 바뀌는 것이 없다. 왜 안 바뀌는 거지?
처음 심리상담에서 ADHD 검사를 권유받고 내가 ADHD일지도 모른다고 남편에게 말했을 때, 남편의 표정은 새로운 놀림거리를 찾은 11살 남자아이 같았다. 나도 그때만 해도 사실일 거라 진지하게 생각하지는 않았기에 그의 웃음에 나도 웃어넘겼다. 그리고 검사 결과를 들은 이후 우울하고 불안한 나에게 남편은 꾸준하게도 '어, 그거 ADHD?' 하며 열심히 나를 놀렸다.
그리고 달라진 점이 있다면,
'요리하면서 설거지하는 것이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거라서 못하는 거였구나!'
'어휴 또 까먹었네. ADHD 환자니까 이해해 줘야지.'
'그래도 잔소리하고 시간을 두니 치우기는 하는구나 잠시 둬야지.'
아, 그래서 그랬구나!
오늘 남편에게 나의 병에 대해 물었을 때 남편의 대답은 두 단어로 정리할 수 있었다. '놀림거리' 그리고 '이해'.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초등학교 아이 같은 남편에게 '놀림거리'라는 것은 즐거운 대화 수단이다.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 장애로 놀린다는 건 그만큼 친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는 나와 인생에서 가장 친한 사람이니 그렇게 놀릴 수 있다. 그리고 나도 재미있다. 심지어 나도 새롭게 나의 일상 속 행동에서 ADHD로 인한 모습을 찾기도 한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남편이 나의 행동을 바라볼 때 정신력 문제가 아닌 병의 문제로 바라보니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 원래도 화가 많지 않은 사람이라 잘 몰랐는데 병을 알고 난 후 훨씬 더 화날 일이 줄었다고 한다. 병에 대해 깊이 있게 공부하지는 않아 잘 모르지만 나의 문제 행동에 대해 대충 'ADHD라서 그런가' 생각하면(대부분 맞고) 화낼 일 없이 뭉뚱그려 지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결혼 후 5년이 지났고, 아이도 둘이나 있는 이 상황에서 나는 발달장애가 있다고 남편에게 말하기가 꽤 곤란했다. 반품이야 안 된다지만 부끄럽기도 했고, 유전적인 부분도 있으니 사기결혼이라고 생각하면 어쩌나 싶기도 했다. 이런저런 나의 고민을 녹이는 남편의 한 마디, "그렇게 고민하는 것도 ADHD야?"
조금 독특한 친구, 제 의견을 낼 줄 알지만 선을 잘 모르는 친구.
덤벙대서 흘리고 부수고, 정리정돈을 못하는 언니.
멀티태스킹이 안 되고 종종 할 일도 까먹는 아내.
그냥 그런 사람인데 환자라고 거창하게 붙여야 하나? 약을 먹는데 환자가 아니라고 하기도 애매하고. 그럼 이건 정신병인가? 발달장애인가? 앞으로 나에게 어떤 꼬리표가 달아지는 것일까? ADHD 확진을 받으면 '아, 내가 그래서 그랬구나.'하고 안심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반면 나에게는 그런 안심보다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ADHD로 인한 문제이고 나의 개인 문제인지, 앞으로 나의 태도는 어떠해야 할지 고민이 이어졌다. 무엇보다도 ADHD가 있는 나도 나의 한 부분으로 온전히 수용할 수가 없었다. 고칠 수 없는 나의 약점인 것만 같았고, 부정하고 싶었다.
혼란이 가득한 와중 브런치에 글을 연재하기 시작했고, 작가라는 사명을 갖고 공부할 필요성을 느꼈다. 도서관에 가 ADHD와 관련한 책이란 책은 거의 다 읽었고, 유튜브 영상, 블로그 글들을 보며 나의 병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의지로 되는 일들이 아니었구나. 그리고 모두가 이런 삶을 살고 있지 않구나.' 병을 인정하는 과정이 슬펐고, 속상했다. 실제로 연재 첫 글을 보면 '병'이라는 표현 자체도 꺼렸던 티가 난다. 그땐 병으로 인정해 버리면 병의 탓으로 다 돌릴 수 있는 것인 건지 그리고 그것이 옳은 건지, 앞으로도 나는 계속 병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만 하는 것인지 이런 병이 있는 내가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 것인지 질문이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잠시 멈출 새도 없이 나의 삶도 계속해서 이어졌다.
장동선 뇌과학 교수님은 유튜브 영상을 통해 시대마다 정신병의 정의는 변화해 왔으며, 시스템이 정한 범위 내에서 벗어난 사람이 정신병이라는 이야기를 하셨다. 그중에서도 '동성애도 한 때 정신병이었다.' 말이 나에게 크게 다가왔다. 나에게 동성애란 세상의 저항은 조금 있을지언정 병이라기보다는 성향에 가까운 영역이다. 한때는 동성애도 병이라고 보았다니! ADHD도 그저 적응하고 조절할 수 있다면 사람의 특성 중 하나로 볼 수 있지도 않을까? 원래 나에게 그랬듯이.
이쯤 생각이 드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7살 즈음 버스에서 굴러 찢어진 귓바퀴로 나의 왼쪽 귓바퀴는 휘어졌다. 엄마를 닮아 나의 새끼손가락들은 짧고 살짝 휘어졌다. 발목에는 엑스트라 뼈라는 뼈가 있어 잘 삐기도 한다. 월경을 규칙적으로 하지 않고, 손톱이 비교적 약해 잘 부러지기도 한다. 손발이 잘 차가워지고 발볼이 매우 넓다. 알레르기성 비염이 있으나 잠만 잘 자면 큰 문제없다. 나에게는 유전적으로든 후천적으로든, 크고 작은 병과 상처가 있는 나의 몸과 잘 적응해서 살고 있다. 이제 뇌가 추가된 것일 뿐. 나의 뇌랑 사이좋게 지낼 시간이 온 것이다.
나는 정상이 아니다.
사실 모두가 정상이 아니다. 모두가 환자다.
굳이 환자라고 할 필요도 없다.
모두가 특별하다.
나의 유난히 까만 피부와 장대한 기골처럼 나의 뇌도 전두엽이 정상의 범위에서 조금 벗어났을 뿐이다. 어릴 적 반 아이들이 나를 놀리며 '깜둥이'라고 부르던 별명이 병명이 아니고, 그것이 곧 나의 전부가 아니었던 것처럼 ADHD는 내 뇌의 독특한 특성이고 나의 일부일 것이다. 그 특성이 나를 아프게만 하는가? 그것도 아니다. 햇빛에 강한 피부와 근육이 잘 붙는 몸, 좋아하는 분야에서는 놀라운 집중력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런 나 자신과 친하게 잘 지내보자 결론 내렸다.
네, 저는 ADHD 환자입니다. 그런 특이체질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