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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cony Review Oct 03. 2020

집을 떠나다

조금은 유별난 암 투병일기 (28)

아이의 유치원 발표회가 있었다. 전 날 혹시 못 가면 아이가 실망할까 봐 와이프는 아이에게 "엄마 낼 꼭 가보도록 할게. 하지만 안 가더라도 가기 싫어서 안 간 거 아니야! 아빠는 갈 거야"라고 말을 해놓았었고, 아이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엄마방을 두드리며 엄마 오늘 올 수 있어?를 외쳤다. 와이프는 정말 초싸이언적인 힘을 발휘하여 참여하였다. 


계속되는 기침에 나는 신경이 많이 쓰였고 유치원 건물 지하에서 진행된 발표회가 원망스럽기만 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발표회가 시작돼 아들이 사회를 보는 모습을 지켜보며 우리 둘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무사히 발표회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 와이프의 느려진 걸음걸이에 맞혀 집에 오는데 날씨가 무척 괜히 썰렁하게 느껴졌다.



어쨌든 방법을 찾았고 이번엔 지난 조직검사를 통해 알아낸 BRCA2 유전자 변이를 빌미로 PARP 저해제 약을 노려야 했다. 다행히도 현재 임상 중인 PARP저해제는 많았다. 비록 우리가 임상 대상은 안 되겠지만 - 주로 임상은 전이암의 경우 첫 번째 치료 대상이 위주 - 치료 목적 승인을 또 노려볼 수 있었다. 


교수님의 그만두길 권유한다는 말에 또 포기를 못하고 우린 치료를 하기로 하였다. 일반 독성 항암제에 비핸 부작용이 덜할지 모르나 혹시 모르는 거기에 우린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약을 받아서 집으로 향했다. 



여김 없이 우리가 예매해놓았던 김동률 콘서트가 다가왔고 와이프는 한 번 더 힘을 냈다. 하필 콘서트 전 식사에 와이프가 다시 치료를 그만하자고 말을 했고 나는 나도 모르게 너무 섭섭해 싫은 말을 왕창 해버렸다. 그리고 우린 살짝 냉랭한 채로 콘서트에 들어갔다. 


콘서트 보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고 나오면서 내가 아까 좀 예민했었던 것 같다고 말하였다. 나는 정말 예민한 상태가 오래 유지되었던 것 같다. 정말 살얼음판이 있다면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이 거기 일듯.


며칠 뒤엔 가까운 곳에서 우리가 즐겨 시청했던 슈퍼밴드의 공연이 있었다. 


약이 좀 듣는 것인지 아님 그냥 와이프가 컨디션이 좋은 것인지 와이프가 흔쾌히 가자고 하였고 우린 우리의 여름을 불태워줬던 슈퍼밴드의 메들리를 들으며 황홀해하였다.


어느 날 2차 병원에서 약을 좀 타서 오는 날 와이프가 갑자기 어떤 호텔의 식당이 가고 싶다고 하여 주저 없이 향하였다. 와이프는 요즘 무엇을 워낙 먹질 않기 때문에 이제는 먹고 싶은 것만 있으면 다 먹이고 싶기도 하였다. 


새우볶음밥을 시킨 와이프는 그래도 반이상 제법 먹었다. 흐뭇하게 집으로 돌아와서 와이프를 내려주고 나는 약을 타러 약국을 가였다. 


돌아와 보니 와이프는 그새를 못 참고 먹었던 볶음밥을 다 올려놓은 상태였다. 이런. 


그날 밤 유난히 와이프가 숨 참 현상이 심해보였고 나는 사놨던 산소포화도 측정기를 쓸 때가 왔다고 생각해서 포장을 뜯었다. 


이럴 수가 산소포화도가 90% 미만이었다. 간이 측정기긴 하니 오류범위가 넓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이 숫자를 본 이상 응급실을 안 갈 수 없었다. 와이프는 2019년 내내 응급실을 안 갔던 기록이 드디어 깨진다며 농담을 했지만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


어차피 응급실에서 밤샐 준비를 한다 치고 이것저것 챙겼고 방 불을 끄면서 와이프가 말했다.


"오빠 나 집에 다시 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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