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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가 그랬다면

조금은 유별난 암 투병일기 (27)

by Sacony Review

와이프의 현실적임 그리고 나의 낙천주의


우리는 투병을 해나가면서 이 두 가지에 대해 자주 그리고 깊게 대화를 나눴다. 죽을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야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손을 놓고 어떻게 있냐? 할 수 있는 데까지는 노력해야지


사실 당사자의 입장인 현실적임을 더 받아줘야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게 힘들었다. 가족으로써 남편으로써 친구로서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가 있을까. 한편으론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옆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내줘야 하는 사람이 바쁘게 정신없이 치료에만 목매달리는 것은 과연 올바른 것일까? 만약 내가 그랬다면 하는 생각을 더 해보게 되었다.



어쨌든 우린 정말 쓸 약을 다 쓰고 썼던 약을 써야 하는 단계까지 왔고 와이프의 숨참은 이제 산책이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와이프는 젖 먹던 힘까지 우리와 함께 하고자 두 번째 캠핑까지 무사히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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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 집 근처에는 수목원이 있었는데 거긴 딱 와이프의 취향인 나무 소재로 된 놀이터가 있었고 이번엔 숨이 차 같이 가진 못했지만 나와 아들은 또 가서 실컷 놀다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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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와이프가 오늘 좀 컨디션이 괜찮다고 하여 그럼 오늘은 우리 와이프 가고 싶은 데 가자고 아침부터 분주히 준비하여 근교로 나왔다. 와이프가 인스타에서 봐놨던 카페. 벌써 단풍이 들어가고 있었고 우린 아무 일도 없는 마냥 가서 커피도 한잔 그리고 맛있는 빵도 몇 개 사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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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프가 이전부터 예약해놨던 강원도 호텔. 여행 며칠 전 와이프가 말했다. 도저히 자기는 못 가겠다고. 아 그럼 우리도 안 가겠다. 하지만 와이프는 아들이 너무 기다렸던 여행인데 둘이라도 다녀오라고 확신에 찬듯한 눈빛을 보내주었고 우리 둘은 와이프에게 미안했지만 둘이 출발했다. 잘 노는 아들을 보니 기분이 좋았고 열심히 녹화를 하고 사진을 찍어 와이프 게 보내주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 나중에 와이프가 없을 때 나와 아들이 둘이 여행을 온 모습이 상상이 자꾸 되는걸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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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노인복지회관 앞에 있는 초상화 카트. 어른들은 직접 가서 초상화를 그림을 그리기도 영정사진을 본인이 미리 찍기도 하는 모양인데 기분이 어떨까?


와이프에게 보여줄까 하다가 안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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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프와 나 혹시 어떤 일이 있기 전에 할 수 있는 건 다하자는 식의 티켓 구매. 마침 바로 걸어서 갈 수 있는 아트센터에서 뮤지컬이 있었고 와이프가 너무 가고 싶어 했다. 하지만 와이프가 5분도 걷기가 힘들어진 상태. 장인어른이 차로 5분 거리를 데려다주고 부축을 해서 우리 세 가족은 뮤지컬을 보았다. 와이프가 울지도 않았는데 와이프가 울고 있는 것 같았고 뮤지컬을 보는 내에 가슴이 뭉클뭉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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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역시나 이번 약이 안될 경우를 또 대비해야 했고 대전에 있는 병원에 계신 교수님과 상담을 위해 1박으로 다녀왔고 나름 성과는 있었다. 다음 약도 치료 목적 승인을 통해 임상 중인 약을 받아야 했고 CT 결과까지 기다렸단 시간이 부족할게 뻔하기에 미리 주치의를 만나서 승인 절차를 밟았다.


교수님께서는 이제 정말 치료를 그만하는 걸 고려해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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