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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cony Review Aug 26. 2020

젖 먹던 힘까지

조금은 유별난 암 투병일기 (26)

기관지 내시경 때 우리가 들었던 "좋은(?)" 소식 때문이었는지 매번 CT 결과에 실망을 해놓고 또 기대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나. 결과는 암이 또 커져있었다. 약이 다 떨어진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약을 제공하는 제도를 통해 제공받은 약이 안 들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물론 준비해 간 약들 리스트가 있었지만 계속되는 치료 실패는 내가 다음 약을 교수님께 제시하는데 필요한 드라이브를 거는데 전혀 도움이 안 되었다. 


교수님은 이전 선 항암 때 썼던 공포의 빨간약의 Doxorubicin을 Liposome화 한 새로운 약을 써보자가 권하셨다. 이전 선 항암 한 지 벌써 2년이 넘었고 그나마 남은 약 중에 가능성이 있다고 하셨다. 내가 알아본 바로도 말이 아예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유일한 반응이 cisplatin이었고, 선 항암 AC때도 SD정도는 줬던 약이니. 하지만 와이프가 선항함할때 빨간색 물만 봐도 토가 나온다고 할 정도로 악명 높은 약이었다. 교수님께서는 이 약이 업그레이드가 되면서 투입량이 줄어들어 부작용은 조금 덜할 거라고 위안을 하셨다. 


치료를 아예 안 하는 건 아직도 받아들이기 힘든 나였기에 와이프가 교수님께 그러겠다고 했을 때 솔직히 위안이 되었다. 



여름 장마 때부터 생긴 이 조금 한 벌레가 와이프 방에 계속해서 출현한다. 아무리 잡아도 끝이 없었고 비가 많은 여름이어서 생긴 벌레가 다 없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게 수라고 한다. 독한 벌레 약을 와이프 방에 칠 생각은 없었기에 계피, 식초 등으로 해보았으나 와이프의 "아 냄새!"만 돌아올 뿐!



이 전부터 꾸준히 공부해왔던 비표준 치료 약들. 메트포르민, 스타틴, 구충제 등 이전부터 한 가지씩 몇 번 시도는 해보았으나 구체적으로 시스템 있게 시도는 못해본 것 같았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좀 더 구체적으로 시도를 해보기로 하고 공부를 시작하였다. 


매일 아침 이렇게 알약통을 만들어서 식탁에 놓으면 와이프가 아침, 점심, 저녁 이후 먹는 그런 시스템이었고 와이프는 큰 알약들을 삼키기를 힘들어하면서도 내가 이렇게 만들어놓은걸 참 열심히 먹었다. 난 절대 못했을 그런 행동들. 와이프는 대단하다. 




예전 젤로다 티센 트릭을 시도해볼 때였는가 그때 젤로다 티센 트릭을 임상 중이라는 어떤 환우분께 내가 와이프 인척 쪽지를 드린 적이 있다. 부작용 리스트라도 얻어보려고 그랬었다. 그때 인연으로 만난 이 부부는 알고 보니 캠핑 마니아였다. 그래서 우린 이번 기회를 삼아 같이 캠핑을 갔고, 고기도 구워 먹고, 물고기도 잡고, 밤에 남편들은 한잔하며 캠프파이어를 하고, 고구마를 구워 먹고, 와이프가 너무 행복해했고 이 부부에게 너무 감사했다. 




와이프의 폐 상태가 안 좋았기에 우린 약을 2번만 써보기로 했었고 그 6주는 순식간에 지나갔다. 눈에 보기에도 와이프의 컨디션이 안 좋아지고 있기에 큰 기대는 없다. 단지 조금만 더 살아주길 바랄 뿐. 조금만 더 우리 곁에 있기를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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