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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 먹던 힘까지

조금은 유별난 암 투병일기 (26)

by Sacony Review

기관지 내시경 때 우리가 들었던 "좋은(?)" 소식 때문이었는지 매번 CT 결과에 실망을 해놓고 또 기대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나. 결과는 암이 또 커져있었다. 약이 다 떨어진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약을 제공하는 제도를 통해 제공받은 약이 안 들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물론 준비해 간 약들 리스트가 있었지만 계속되는 치료 실패는 내가 다음 약을 교수님께 제시하는데 필요한 드라이브를 거는데 전혀 도움이 안 되었다.


교수님은 이전 선 항암 때 썼던 공포의 빨간약의 Doxorubicin을 Liposome화 한 새로운 약을 써보자가 권하셨다. 이전 선 항암 한 지 벌써 2년이 넘었고 그나마 남은 약 중에 가능성이 있다고 하셨다. 내가 알아본 바로도 말이 아예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유일한 반응이 cisplatin이었고, 선 항암 AC때도 SD정도는 줬던 약이니. 하지만 와이프가 선항함할때 빨간색 물만 봐도 토가 나온다고 할 정도로 악명 높은 약이었다. 교수님께서는 이 약이 업그레이드가 되면서 투입량이 줄어들어 부작용은 조금 덜할 거라고 위안을 하셨다.


치료를 아예 안 하는 건 아직도 받아들이기 힘든 나였기에 와이프가 교수님께 그러겠다고 했을 때 솔직히 위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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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장마 때부터 생긴 이 조금 한 벌레가 와이프 방에 계속해서 출현한다. 아무리 잡아도 끝이 없었고 비가 많은 여름이어서 생긴 벌레가 다 없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게 수라고 한다. 독한 벌레 약을 와이프 방에 칠 생각은 없었기에 계피, 식초 등으로 해보았으나 와이프의 "아 냄새!"만 돌아올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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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부터 꾸준히 공부해왔던 비표준 치료 약들. 메트포르민, 스타틴, 구충제 등 이전부터 한 가지씩 몇 번 시도는 해보았으나 구체적으로 시스템 있게 시도는 못해본 것 같았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좀 더 구체적으로 시도를 해보기로 하고 공부를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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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이렇게 알약통을 만들어서 식탁에 놓으면 와이프가 아침, 점심, 저녁 이후 먹는 그런 시스템이었고 와이프는 큰 알약들을 삼키기를 힘들어하면서도 내가 이렇게 만들어놓은걸 참 열심히 먹었다. 난 절대 못했을 그런 행동들. 와이프는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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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젤로다 티센 트릭을 시도해볼 때였는가 그때 젤로다 티센 트릭을 임상 중이라는 어떤 환우분께 내가 와이프 인척 쪽지를 드린 적이 있다. 부작용 리스트라도 얻어보려고 그랬었다. 그때 인연으로 만난 이 부부는 알고 보니 캠핑 마니아였다. 그래서 우린 이번 기회를 삼아 같이 캠핑을 갔고, 고기도 구워 먹고, 물고기도 잡고, 밤에 남편들은 한잔하며 캠프파이어를 하고, 고구마를 구워 먹고, 와이프가 너무 행복해했고 이 부부에게 너무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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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프의 폐 상태가 안 좋았기에 우린 약을 2번만 써보기로 했었고 그 6주는 순식간에 지나갔다. 눈에 보기에도 와이프의 컨디션이 안 좋아지고 있기에 큰 기대는 없다. 단지 조금만 더 살아주길 바랄 뿐. 조금만 더 우리 곁에 있기를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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