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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cony Review Jul 03. 2020

혹시나 가 역시나

조금은 유별난 암 투병일기 (24)

어느덧 CT 검사날이 다가왔고 지금까지 어떤 약을 두 CT이상은 사용해 본 적이 없기에 기대치는 낮은 편이었다. 하지만 나의 단순한 긍정주의적으로 또 기적을 바라고 있었다. 상당히 예민해지기도 했던 모양이다. 와이프는 특히 검사 결과 보러 가는 날 내가 너무 말이 없다고 하였다. 난 그런 줄 몰랐었는데. 


혹시나 가 역시나. 그 두 달을 못 참고 암은 또 커져 있었다. 조금 더 많이 그리고 조금 더 크게. 그리고 복부 림프 노드까지 추가 전이. 이젠 걸어 다니는 게 힘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라고 하였고 와이프가 장범준 콘서트 때 힘들어했던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이젠 응급임상으로 지난 몇 달 동안 준비를 해왔던 Ipatasertib을 시도해 볼 차례였다. 삼중음성 유방암 대상으로 임상에서 긍정적인 결과를 냈던 Ipatasertib은 Paclitaxel이라는 세포독성 항암제와 병용 임상으로 낸 결과였다. 하지만 우린 Paclitaxel을 써봤었고, 내가 가져간 다른 논문에서 사용한 병용 조합인 Paclitaxel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Nab-paclitaxel을 같이 써보기로 하였다. 게다가 내가 우겨서 면역항암제까지 같이. 와이프는 언제나 그랬듯이 나를 조금은 부끄러워하였고 과하다고 생각했다. 난 그래도 부족했다. 


우린 실패를 연속했고, 그런 실패들에 대한 두려움도 커져갔다. 하지만 그런 두려움이 어느 순간부턴 더 이상 커지진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처남 부부가 미국에서 놀러 왔고 우린 다 같이 강원도로 향하였다. 아들은 신이 났고 와이프도 조금은 들떴다. 걷기를 힘들어하는 게 이제는 체력 저하가 아닌 폐에 있는 암임을 알기에 절대 무리는 안되였지만 또 바깥바람을 쌘 와이프는 조금 더 힘이 나는 모양이었다. 


설악산 국립공원의 케이블카는 비록 아들과 나만 올라갔지만 이런 역경 속에서도 힘을 내주는 와이프, 그리고 웃어주는 와이프가 고마우면서도 눈물이 났다. 



우리가 4월부터 즐겨보던 슈퍼밴드. 결선 무대 방청권을 받아서 시청하러 갔다. 사실 피디에게 연락하여서 사정사정하여 받은 티켓인데 와이프한테는 그냥 당첨되었다고 했었다. 이 방청객 중에 우리 와이프 같은 환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면 사람들은 많이 놀라겠지? 게다가 그런 와이프를 데려간 나 보고도 놀랄 것 같다. 



내가 박사과정을 시작하면서부터 꼭 참가하고 싶었던 워크숍 참가차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약이 바뀌자마자 그것도 와이프가 새 약을 쓰기 시작하자마자 떨어지는 게 마음이 좋지 않았다. 와이프는 애써 며칠 동안이라도 걱정은 덜어놓고 사람들 많이 만나고 오라고 하였다. 


보스턴에서 열리는 이 워크숍은 창업을 공부하는 경영학/경제학 학생들에겐 아주 좋은 기회였다. 정말 좋은 교수진들이 5일 동안 8개의 토픽을 가르치고 세계 각국에서 학생들이 참가한다 (주로 미국이지만).


나 역시 그런 기회가 존재함을 알았기에 항상 참가하고 싶었고 올해 운 좋게도 기회를 얻게 된 것이었다. 


도착 한날 네이버 뉴스를 보다가 오늘 LA 다저스가 보스턴에서 경기를 한다고 하였다. 게다가 선발은 류현진! 이건 운명이었다. 바로 중고 티켓을 구해 그 유명한 스타디움으로 고고.



이전 학회에서 만났던 학생들도 보여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고 잠시 (몇십 분 단위로) 현실을 잊기도 하였다. 와이프 말대로 너무 내가 와이프의 투병에 24/7 집착하고 살았기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집착 안 하고 살 수도 없지 않은가)


셋째 날 워크숍이 끝나고 뒤풀이에서 예전에 통화한 적이 있는 박사과정 얼굴이 보여 반갑게 인사를 하였더니 그새 미국 아이비리그 경영대 교수가 되어있었다. 참 시간이 빠르다 싶었다. 그와 이것저것 얘기도 하고 하다 가족 얘기가 나왔고 나는 와이프의 투병 사실을 알리었다. 그의 얼굴이 심상치 않더니 사실 자기 아들이 지금 희귀 암과 투병 중이라고 하였다. 이럴 수가. 눈물이 핑 돌았다. 


이렇게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제 각각의 삶마다 이렇게 힘겹고 어려운 일이 많은데. 와이프의 암 vs. 아들의 암. 우리는 왜 이렇게 힘든 일을 겪어야 하고 앞으로 어떻게 해나가야 될지 얘기를 하다 금세 시간이 늦어졌고 우린 다음을 기약했다. 다음에 볼 때 우린 과연 어떤 모습이고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지.


새로 시작한 항암치료와 함께 내가 비장하게 준비하던 새로운 일본 치료법이 있었다. 이름하여 네오 안티겐 치료법. 와이프의 암을 유전자 분석하여 항원을 고르고 그 항원으로 자극한 면역세포를 배양하여 다시 몸에 집어넣는 치료였다. 하지만 이런 유전자 분석을 하기 위해선 조직 생검이 필요했고, 현재 와이프의 암은 기관지, 폐, 복부 림프 정도에 있었기에 생검이 쉽지 않은 상태였다. 


교수님께 상의를 드렸더니 기관지 생검이 유일한 옵션이라고 한다. 내가 혹시 그럼 그 조직을 제가 받아서 일본에 가져갈 수 있을까요? 교수님은 "허허허" 웃고 마셨다. 한 번 더 여쭤보았다. 뭔가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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