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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건 꿈꾸는 걸까?

조금은 유별난 암 투병일기 (22)

by Sacony Review

와이프와 나는 여러모로 참 다르다. 와이프는 나보다 굳건하고 지혜롭다. 하지만 한편으로 와이프는 자신이 편해하는 범주안에서만 활동하는 걸 좋아했다. 나는 산만하고 정신없으며 안 해 본 것을 하길 좋아한다.


이번 스위스 건도 비슷했다. 와이프의 반응은 "오빠 가능할까?"였다. 나도 사실 속으론 조금 겁이 났다. 기침하는 암 4기 환우인 와이프를 데리고 해외여행을? 하지만 이번이 아니면 시도도 못할 것 같았다. 이건 내 욕심이었다.


정말 신기하게도 우리가 1주일만 더 고민을 해보자고 한 그 일주일 내내 와이프의 기침이 줄었다. '땜빵'약이 조금은 듣는가 보다 했다. 그래서 난 마지막으로 한번 더 와이프를 설득하곤 비행기 표를 예매하기로 하였다. 와이프는 또 이왕 간다고 생각하니 프랑스 파리도 들리자고 하였다. 난 바로 '콜'.


서울-> 파리 (비행기) 파리-> 스위스 (기차) 스위스-> 서울 (비행기)


비행기와 기차 예매내역을 받아 들곤 이게 현실인지 아닌지 꿈인지 아닌지 헷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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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실 영국 외 유럽은 처음이었다. 파리에 도착한 와이프는 아이처럼 맛있는 크라상과 초콜릿 그리고 거리의 풍경들을 마음껏 즐겼으며 오길 너무 잘했다며 행복해하였다. 나도 정말 행복했다. 작년만 해도 2019년 3월에 우리가 파리에 와서 에펠탑을 보면서 저녁을 먹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파리에 왔는데 쇼핑을 안 할 수가 있는가! 파리에 왔는데 미술관을 안 갈 수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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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같은 3-4일은 후다닥 지나갔고 이제 스위스로 넘어가는 날이었다. 스위스는 또 어떤 추억들을 가져다줄까? 일단 기차로 스위스 로잔에 도착한 뒤 거기서 렌터카를 픽업하여 우리가 예약해놓은 호텔로 가는 게 계획이었다. 파리 기차역에서 아들이 좋아하는 퍼피 구조대 장난감이 보여 정신없이 사들고 기차에 올라탔다.


와이프는 킨들로 책을 읽었고 나는 막간을 이용해 눈을 붙였다.


눈을 떴을 때 눈이 덮인 산을 지나고 있었고 점점 스위스의 대자연이 드러나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가 도착한 호텔은 내가 태어나서 가보는 호텔 중에 제일 좋았다. 발코니에서 보이는 풍경 하며 호텔의 분위기 하며 각종 시설은 정말 여기로 오길 너무 잘했다며 우리는 서로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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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이 있는 언덕에서 보이는 풍경은 그야말로 장관이었고 우린 정말 잠깐이나마 아픈 걸 까먹고 행복함을 누렸다. 스위스에서 계획은 이틀 동안 그냥 푹 쉬고 셋째 날 의료기기를 받으러 의사를 만나러 가는 것이었다. 우리가 연애할 때 결혼하고 나서도 여행을 하면 꼭 음식점을 그 동네 사람에게 추천받아 가곤 했었다.


이번에도 예외는 없이 호텔 로비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에게 식당 추천을 받았고, 가는 길에 눈과 우박이 쏟아져 고생을 좀 하긴 했지만 도착했을 때 풍경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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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속에 나오는 마을 같은 곳에서 정말로 느끼한 퐁듀와 돼지고기를 먹곤 눈이 덮인 벤치에 걸터앉아 자연을 만끽하였다.


시간이 멈추라는 식상한 말은 정말 이럴 때나 쓰는 말일 것이다.



미국 의사를 만나러 가는 날.


와이프가 하필 전날 잠을 좀 설쳤고 이 날따라 날씨까지 좀 쌀쌀했다. 와이프는 조금씩 힘들어하는 티를 내서 내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게다가 의사를 만나러 간 사무실엔 아무도 없었고 난 초조하게 와이프를 안아주며 기다렸다. 마침내 의사 등장.


그냥 평범함 백인 아저씨였고 이것저것 기록을 하더니 의료기기를 가져온다. 간단하게 설명을 듣고 와이프가 시험 삼아 한번 테스트해보곤 우린 바로 숙소로 왔다. 스위스로 오기전 의사보고 환우가 꼭 같이 와야되냐고 몇번이나 확인을 했었고 의사는 환우를 안보고 처방을 하는건 불법이라고 하였었다. 이렇게 간단한건데 그냥 좀 해주지!


와이프가 좀 푹 쉬어야 할 것 같았다. 이제 내일모레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괜히 무슨 일이 생기면 안 되었다. 장인어른 장모님의 얼굴이 순간 스쳐 지나갔다.



무사히 한국에 도착해 나는 또 무슨 기적의 치료방법이라도 찾은 마냥 기분 좋게 장인어른과 막걸리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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