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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cony Review Jun 08. 2020

행복한 나날들

조금은 유별난 암 투병일기 (23)

우리는 오랜만에 느낀 시차로 며칠 힘들어했지만 잠깐이나마 꿈같은 여행으로 충전을 해서인지 평화로운 며칠을 보냈다. 


이 평화를 괴롭히는 존재가 예비군 훈련 정도였으니. 예전에 밀렸던 예비군 훈련이 한국에 체류시간이 늘어나자 보따리로 날아오기 시작하였다. 이번 날이 조금 따뜻해지자 모든 훈련은 나의 훈련이라고 통보를 받았고 정말 "이런 상황"에서도 예비군 훈련을 가야 하나로 자괴감이 많이 들었다. 하지만 막상 다녀오면 밀린 일이 해결된 것 같아서 시원하기도 하였다. 


예비군 점심 도시락

4월에는 우리의 귀염둥이 아들 생일이 있었다. 와이프는 작년부터 이번 아들 생일을 고대해왔고 우리는 미리 에버랜드 사파리 체험을 예약해두었다. 그날만은 하루 종일 아들이 좋아하는 것만 마음먹기로 한 우린 평일 오전부터 분주히 준비해서 에버랜드로 출발하였다. 


누구를 위한 사파리인가

실제 사자, 곰, 호랑이 등에게 먹이를 주는 체험을 즐겁게 하고는 맛있는 솜사탕 등 아들이 먹고 싶은 간식도 많이 먹고 힘들지만 정말 행복한 하루를 보냈다. 


와이프도 다행히 체력이 받혀줘서 오랜만의 하루 종일 외출이었지만 돌아오는 길에 잠든 아들을 뒤로 돌아보면서 너무 행복하다고 말해주었다. 


'ㅠㅠ 이렇게만 살 수 있다면'



유럽을 갔다 온 지 얼마 안돼서 일본 치료를 갈 일정이 다가왔고 이번 따라 와이프는 이제 더 이상 일본 치료를 가는 게 마음도 몸도 쉽지 않다고 나에게 털어놓았다. 


"아니 왜! 우리 저번 주에 에버랜드도 잘 갔다 왔잖아!" 와이프의 속마음을 모른 채 나는 또 우린 할 수 있단 식의 긍정주의적 응원을 하였고 와이프는 저양반 또 저러는가 보다 표정을 짓더니 이내 잠이 들었다. 


와이프는 나에게 반쯤 떠밀린듯하여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이번엔 와이프의 컨디션을 고려해서 바닷가에 좀 더 편안한 숙소를 예약했었다. 바닷가 백사장에 앉아서 자기는 사실 이번에 오는 게 정말 싫었는데 막상 바다에 오니 좋다고 말해주었다. 날 위해 억지로 해주는 말이 아닌가 싶었지만 그래도 너무 고마웠다. 그렇게 열심히 치료해주는 와이프가. 




4월의 아들 생일에 이어 5월은 와이프의 생일이었다. 단지 와이프의 생일 전 이번에 쓰는 항암제의 두 번째 CT촬영이 잡혀있었고 최근에 다시 기침을 조금 하기 시작한 와이프와 나는 살얼음판 걷는 것처럼 하루하루를 살고 있었다. 


우리가 연애할 때 두 번이나 간 (우리가 두 번이나 콘서트를 간 가수는 유일했다) 장범준 콘서트가 마침 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티켓을 예매하였다. 와이프는 또 언제 공연을 가겠냐며 또 힘을 내서 움직였다. 



가수들 공연 중에 꼭 한곡쯤은 다들 일어나는 곡이 있는 것 같다. 장범준의 공연도 마찬가지였다. 


그 차례가 되었을 때 난 와이프의 눈치를 봤고, 와이프는 일어나지 않기에 나도 일어나지 않았다. 많이 힘들긴 한 모양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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