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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cony Review Jul 18. 2020

또 한 번의 기적

조금은 유별난 암 투병일기 (25)

혹시 그런 적들이 다른 사람들도 있나 모르겠다. 가끔 하늘에 구름이 너무 이쁘고 햇빛이 살짝 정면이 아니고 퍼져서 보이는 하늘. 이 하늘을 보면 나도 모르게 "천국"같았다. 나중에 우린 다 저기서 만나겠지? 


교수님 허락하에 조직 생검을 기관지 내시경을 통해서 하기로 하였고 호흡기내과 교수님까지 설득하여 조직을 받기로 하였다. 조직을 받은 뒤 냉장보관을 일본에 갈 때까지 하여야 했기에 난 아침부터 아이스팩이 가득 찬 보냉 가방을 싸매고 와이프의 조직검사를 기다렸다. 


암에 상처가 나면 그 암이 더 커질 수도 있다는 설이 있다. 상처가 나면 염증이 생기고 사실 사실여부에 관계없이 찝찝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런 리스크를 안고서라도 조직검사를 해서 얻는 게 더 클 것인지. 


어쨌든 하기로 한 것 얻는 게 더 크다고 믿어야 했다. 


일본행 비행기를 타러 인천공항 가는 길 마치 "천국" 같은 하늘이 보였다. 속으로만 생각했다. 와이프는 "죽음"에 관한 책을 너무 많이 읽었다.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와이프는 준비를 하여야 한다고 믿었고 그 준비를 한지도 어느덧 1년이 넘어섰다. 난 반대로 과연 그게 준비한다고 준비가 되는 것인가 싶었고 와이프가 죽음에 대한 자기 생각을 밝힐 땐 같이 공감해주었지만 정말 상상하기 싫었다. 


생검을 한 다음 교수님을 뵀는데 기관지 내시경으로 폐 쪽으로 내려가 보니 예전 CT에 비해 정확하게 비교할 순 없지만 눈으로 보기엔 암이 좀 줄어 보였다고 하였다! 새 약이 듣고 있는 모양이었다!!!


삼중음성 유방암은 그래도 금방 내성이 또 생길 것 같았지만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소식이었다! 야호! 


이제 유전자 변이 검사 / 네오 안티겐 검사까지 하여 다음 치료를 준비만 하면 되었다. 이것도 참 심리적인 게 막상 이런 소식을 접하고 나면 기침도 좀 덜 한 것 같고 와이프가 왠지 모르게 컨디션도 더 좋아 보였다. 사람의 심리란....


이 행복한 시간과 좋은 컨디션을 낭비할 수 없지 않은가. 우린 선선한 가을 날씨에 어울리는 뮤직 페스티벌 티켓을 끊고 아들과 함께 마포까지 갔다. 가는데 1시간 반. 정말 힘들었지만 도착해선 우리가 좋아했던 슈퍼밴드 뮤지션들 등 여러 노래를 듣고 나는 맥주까지 한잔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아마 근래 들어서 가장 행복한 날이었던 것 같다. 

페스티벌이 열리던 한강공원에 있는 놀이터에서 한참 시간을 보내기도 하면서 몇몇 노래를 아쉽게 놓쳤지만 그냥 와이프와 벤치에서 손잡고 아들이 노는 모습을 마치 늙은 노부부처럼 흐뭇하게 한참을 쳐다보았다. 


나는 어릴 적 꿈이 곤충학자였다. 적어도 초등학교 3학년까지는. 왠지 아들도 나와 비슷한 구석이 있지 않을까? 이번 여름부터 잠자리채를 들고 잠자리 / 매미 채집을 몇 번 나갔다. 비록 와이프는 함께 할 수 없었지만 둘이 한참을 놀고 잡아온 잠자리를 엄마한테 보여주겠다고 때를 부리는 아들을 와이프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1-2주에 한 번은 꼭 잠자리채를 들었다. 


행복한 시간도 불안한 시간도 빨리 흐른다. 캘린더에 표시해뒀던 CT촬영일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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