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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cony Review May 06. 2020

기적의 약

조금은 유별난 암 투병일기 (20)

세포독성 항암제가 아닌 알약으로 먹는 표적항암제만을 쓰고 나서 와이프의 컨디션은 나날이 좋아졌다. 암적 증상은 워낙 없었기에 이게 암이 줄어서 좋아진 거라곤 판단하긴 어려웠지만 어쨋던 와이프의 컨디션이 좋은 건 좋은 일이었다. 


약값이 워낙 고가였기에 우리 주치의는 이번에도 2개월 만에 CT를 찍자고 하셨다. 와이프는 CT촬영 때 조영제 주사를 워낙 힘들어하였지만 또 경제적인 부담도 어쩔 수 없었기에 그리고 달리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없었기에 그런다고 마지못해 끄덕였다. 


사실 전이되고 4번째 약이 주는 메시지는 상당히 컸다. 작년 12월에 치료를 시작했을 때만 해도 3차 치료제 안에 효과가 없으면 나는 사실 치료를 포기하게 되는 줄 알았다. 그렇다고 포기할 나도 아니지만 어쨋떤 이론상으론 그렇게 정리가 되어있었다. 


CT 촬영 후 판독지를 떼던 날 우리는 소리를 질렀다. 암의 사이즈가 커지지도 않고 작아지지도 않고 그대로 있다는 판독 지였다. 이럴 수가! 기적이었다. 기적!


물론 암이 작아졌다는 소식을 내심 기대했었지만 지난 2달의 삶의 질이 워낙 좋았기에 우리는 더 바랄 게 없다고 생각했다. 약 가격 빼고는. 2달을 더 써보기로 결정하고는 우린 정말 지난 1년 안에 최고로 가벼운 발걸음으로 병원을 나왔다. 


그날 밤 우리는 제주도 숙소 예약하느라, 아들과 여행 계획 세우느라, 연말 콘서트 티켓을 사느라 무지 바빴다. 




와이프는 김동률의 팬이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김동률 음악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지만 와이프와 한 번쯤은 콘서트를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었고 마침 이번 2018년 겨울에 콘서트를 한다기에 티켓팅을 시도하였고, 엄청난 경쟁률에 놀랐고, 프리미엄을 얹어서 다녀왔다. 와이프가 노래를 따라 부르다 눈물을 훔치는 걸 보고는 나도 눈물이 찔끔 나왔다. 너무 행복했던 하루. 이런 나날이 계속 됐으면 했다. 



11월 말에 첫눈이 내렸다. 우리는 아들과 공룡박물관을 갔다. 아니다 공룡박물관을 가기로 한날 첫눈이 온 게 더 정확한 순서겠다. 어쨌든 우리는 아들이 너무 좋아할 줄 알았는데 움직이는 공룡을 보고 무섭다고 우는 아들을 달래느라 바빴고 대부분의 시간을 박물관 주차장에서 눈사람을 만들며 보냈다. 와이프는 힘들지 않게 우리가 잘 보이는 커피숖에 놔두고 나와 아들은 밖에서 엄마한테 손을 크게 흔들며 엄청 큰 눈사람을 만들었다. 



정말 행복한 더 바랄 것 없는 2-3달을 보내고 있던 도중 와이프의 기침소리가 가끔 귀에 들어왔고, 일부러 걱정할 필욘 없기에 와이프 게 티는 내지 않았지만 조금씩 걱정이 되던 쯤에 크리스마스가 다가왔다. 


우리 부부는 연애할 때부터 결혼하고 나서도 교회를 나가다가 말다가 한 나이롱 신자였다. 이번 겨울에 외국에 있는 와이프의 친구들이랑 와이프가 카톡으로 성경공부를 한다고 했었다. 이번 기회에 우리도 다시 교회를 나가보면 어떨까 싶어 크리스마스 예배를 참석했고 아들이 기도시간에 기도하는 모습을 보곤 '오 제법 폼이 나오는데?' 싶었다. 


항상 힘들 때만 교회를 찾는 것 같아 마음이 안 좋은 적이 많았고 그런 마음 때문에 또 교회를 다시 찾는데 오래 걸렸던 같기도 하다. 와이프 아프다고 또 찾아온 것처럼 그럴까 봐. 교회 예배드리는 동안에도 와이프의 기침소리가 살짝 불편했다. 1월 초에는 또 CT촬영을 앞두고 있었고 지난 2-3개월의 행복함이 더 지속되길 바라는 건 욕심인가요? 이렇게 기도를 드렸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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