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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cony Review Apr 28. 2020

미지의 영역

조금은 유별난 암 투병일기 (18)

와이프가 아프고 나서 자주 하는 말이 있었다. 자신의 불안한 예감은 항상 맞는다고 한다. 사실 안 좋은 일이 생기기 시작하면 그렇게 느낄 만도 하다. 처음에 가슴에 뭐가 만져질 때도 '설마 암일까' 했는데 암이었고, 첫 번째 항암치료가 지나고도 별로 작아지지 않은 것 같아 불안했는데 역시나 그대로 있었고, 재발 전이가 설마 되겠어했는데 재발 전이되었고, 어쨌든 그런 불안한 예감의 적중률은 계속해서 높았다. 


전이 후 첫 번째, 두 번째 약을 그렇게 보내고 나서 세 번째 약에 대한 기대치가 내려가긴 했지만 또 혹시 하는 마음이 있었다. 언제나 그때 나의 역할은 Chief 긍정주의 Officer이었다. "이 약을 세 번째로 쓰게 된 이유가 있을 거야!" 허공에 대고 외치는 것 같긴 했지만 나로서도 침묵 말고는 이 옵션뿐이었다. 


불행하게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교수님이 치료를 그만하는 것도 고려해보라는 '무서운' 말도 하셨다. 꽤나 충격을 받았다. 전이된 후 세 가지 약들을 8개월 만에 소진하고 바로 치료 포기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은 내가 생각하던 치료의 방향과 방법과는 거리가 먼 얘기였다. 우리는 교수님께 한 번은 더 해보고 싶다고 말씀드렸고 교수님은 딱히 추천할만한 약이 없다고 하셨다. 내가 폴더를 꺼낼 차례였다. 


전이가 되자 말자 진행했던 유전자 검사 NGS (Next Generation Sequencing) 결과에서 유전자 증폭이 발견된 AXL이라는 유전자가 있었다. AXL로 검색을 해보면 안 좋은 얘기 투성이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하게 AXL만 선택적으로 표적 하는 표적치료제는 아직 2상에 있는 약이 전부였다. 반대로 AXL을 포함한 여러 가지 표적을 저해하지만 하나만을 선택적으로 줄이지 못하는 표적 치료제가 최근에 출시되어있었다. 미국에서는 신장암 적응증을 받은 카보메틱스 (Cabozantinib)이라는 알약 형태의 표적항암제였다. 


한국에서는 적응증이 없는 약을 못쓰게 해 놨지만 뭐 저번 면역항암제 케이스도 있었듯이 지금 법이나 제도가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다행히도 카보메틱스는 아직 한국에서는 신장암에서 급여화되지 않아서 비급여로 사용이 가능한 '사각지대'의 약이었고 더 이상 어떤 약도 추천하시기 어려운 교수님은 감사하게도 한번 이 약을 써보자고 하셨다. 이제부턴 정말 '미지의 영역'이었다. 


나는 마치 완치약을 얻은냥 마냥 처방전을 들고 약국으로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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