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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cony Review Oct 08. 2020

24시간 7일

조금은 유별난 암 투병일기 (29)

왠지 산소포화도가 낮아진 걸 알고 나서는 와이프가 더 안 좋아 보였다. 새벽 1시였기에 집에 어른들에겐 말씀도 못 드리고 우리 둘이 집을 나왔고 연락을 드리겠지만 아침에 일어났을 때 아들이 우리를 찾진 않을지 걱정부터 와이프가 정말 괜찮을까까지 걱정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병원에 도착해서도 응급실 앞에 먼저 차를 임시주차를 하고 와이프를 부축하여 들어갔다. 



응급실 수속을 하면서 옆에 넘어져서 다리가 다쳐서 온 사람을 보고 잠깐이나마 부러웠다. 우리도 그냥 저 정도였으면. 


입원실 베드에서 처음 한 혈액검사 결과를 보니 와이프의 상태가.. 빈혈 수치도 높았고 심장의 활동의 무리 정도를 재는 지표도 상한선을 한참 뛰어넘은 상태였다. 


다행히도 숨참은 산소 콧줄을 최소한의 양으로도 와이프가 숨쉬기가 너무 편하다고 하였다. 아 이젠 산소가 필요한 와이프구나. 아니 얼마나 전부터 와이프가 이렇게 산소 부족하게 살아왔던 걸까. 한편으론 내가 미련하게 와이프가 그 정도로 심각한 건 아니라고 믿고 있었던 건 아녔을까 자꾸 생각이 들었다. 



산소 콧줄에도 불구하고 와이프의 맥박이 내려오긴 했으나 정상은 아니었고 간호사와 인턴 의사는 좀 더 지켜보자는 소리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제일 중요했던 현재 복용 중인 경구 항암제의 효과 여부였는데 너무 먹은 지 얼마 안 되었으니깐 일단 오늘도 먹고 낼 퇴원하고도 먹으라고 하였다. 


빈혈 수치가 회복되어야 하는데 두 번의 수혈에도 24시간 동안 빈혈 수치가 돌아오지 않았고 우리는 결국 입원하게 되었다. 



10인실로 배정이 된 우리는 각오가 남달랐다. 예전에 10인실에 왔을 때 와이프가 힘들었던 적이 있어서 난 무슨 수가 있더라고 와이프가 편하게 지낼 수 있길 바랬고 또 하루빨리 퇴원을 할 수 있길 바랬다. 


이틀 연속으로 수혈을 하였고 와이프는 빈혈을 조금 극복한 듯하였다. 


게다가 하루는 간호사의 실수로 혈액팩이 터져서 와이프의 옷과 바지가 다 피로 젖어서 진짜 사진만 봤을 땐 엄청나게 큰 일이라도 일어난 것만 같았다.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이틀이 사흘이 되고..


와이프의 숨참 현상 외에 제일 괴롭히던 현상이 허리 아픔이었는데 갑자기 오늘은 또 허리가 엄청 아프다고 하였다. 우리 주치의에게 방사선 치료를 하는 건 어떻냐고 하였고? 와이프의 암이 뼈에 있는 것도 확인이 된 상태였기에 주치의는 하고 싶으면 할 수 있지만 아마 폐의 상태를 봤을 때 그렇게 크게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고 하였다. 


그래도 와이프가 너무 괴로웠기에 진행을 하였고 방사선 치료는 목, 금, 월, 화, 수 이렇게 5일 진행하게 됨으로써 입원이 자동적으로 1주일이 더 연장되었다.. 이렇게 우리는 30대 부부로써는 몇 안되는 10일째 한번도 떨어지지 않고 붙어 지낸 부부로 이번 달을 보내가고 있었다.


방사선 치료를 처음 해본 우리는 잘 몰랐는데 약 2-3분 걸리는 방사선 치료시간에 노래를 틀 수가 있었다. 


나는 와이프가 좋아하던 콜드플레이의 "Fix you"를 틀어줬고 내가 와이프한테 "널 고칠 거야"하면서 농담을 했던 생각을 와이프가 하면서 조금이라도 웃길 바랬다. 


5일 내내 내 마음을 담은 노래를 선곡했고 우린 방사선 치료 끝나고 먹는 딸기 스무디나 아이스크림으로 소소한 행복을 느꼈다. 



방사선 치료가 끝나갈 때쯤 우린 다시 퇴원의 꿈을 키워나갔다. 하지만 문제는 와이프의 빈혈 수치가 회복이 안된다는 점이었다. 


주치의는 결국 우리에게 항암제를 그만 먹는 것을 추천하게 된다. 우리가 먹던 항암제의 가장 흔한 부작용이 빈혈이었기에...

아 드디어 우리가 치료를 그만두는구나. 와이프는 어떻게 보면 조금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고.. 나는 아 이 엄청난 불안함을 표현할 수 없어서 괜히 더 와이프를 격려했던 것 같다.



어느 하루 우리 병실 앞쪽의 관찰실에서 심폐소생술을 받아야 하는 환자가 들어오는 장면을 얼떨결에 목격하게 되었다. 


상황은 아주 급해 보였고 그 층에 있는 모든 간호사 및 의사들이 몰려들었으며 병원 방송을 통해 우리 층 우리 앞 병실의 호수를 따박따박 방송하고 있었다. 


와이프는 그날 그렇게 무서워했다. 자기도 언젠간 저렇게 될 것 같다고. 나는 그럴 일 없다고. 조금 무리가 되지만 조금 편한 병실로 옮겨야겠다고 생각이 들었고 바로 다음날 좀 더 편한 병실 우리만의 공간이 있는 곳으로 옮겼다. 


와이프는 방을 옮긴 후 그 방이 천국 갔다고 하였다. 어제가 지옥 같았나 보다. (진작부터 여기 올걸)


그리곤 병실 티브이에 넷플릭스에 로그인을 해서 여러 프로들과 영화를 보며 수다를 떨었다. 


하필 연휴가 다가온다. 연휴 전에 산소 요구량이 기적적으로 줄지 않는 한 또 퇴원은 힘들어질 것 같았고, 이젠 퇴원을 하더라도 산소가 필요한 상황이어서 가정용 산소 발생기 및 호흡기도 다 계약을 마쳐놓은 상태였다. 



항암치료를 그만둔 후 와이프의 산소 요구량은 꾸준히 늘어갔다. 일반 콧줄 산소 공급량이 1~5L 정도인데 처음에 응급실에선 1로 시작했던 산소가 어느덧 3L 그리고 4L를 향하고 있었다. 간호사가 매번 산소량을 올릴 때마다 나는 너무 겁이 났다. 괜히 인정하기 싫어서 간호사가 가면 산소를 줄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을 정도였으니깐.


오늘은 주치의가 문진을 돌다가 잠깐 보호자를 밖으로 나오란다. 우리에게 처음 있는 일이었지만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너무 정확하게 알 것 같았다. 


역시나....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한다. 씨발



막상 그 문장을 듣고 나니 머릿속이 하얘졌다.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고 와이프에게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서 그냥 의자에 잠시 앉았다. 


조금 정신을 차리고 나서 같이 환우 보호자 커뮤니티에 있던 분께 전화를 드렸고 호스피스를 알아보는 게 좋겠다는 조언에 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집 근처 호스피스에 예약 전화를 걸었다. 


이 순간에도 모든 걸 내려놓지 못하고 와이프의 뒷바라지를 꼼꼼하게 한다고 신경을 써야 하는 나 자신이 밉기도 하였고 그렇다고 내가 내려놓으면 아무도 해주지 않은 일이라는 생각에 더더욱 정신을 똑바로 차렸다. 


어제 집에 갔을 때 아들이 엄마 언제 오냐는 말에 이제 금방 온다고 했는데 또 아빠 거짓말했다고 틱틱댈 아들 생각에 그리고 들어가서 와이프 얼굴을 보고 호스피스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에 병실로 들어가는데 몇 분 이상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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