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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cony Review Oct 21. 2020

잘 가 내 천사

조금은 유별난 암 투병일기 (30)

막상 호스피스를 알아보니 호스피스도 가고 싶다고 바로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동네 근처에 있는 한 곳은 베드가 10개뿐이어서 거기 계신 분이 세상을 떠나셔야지만 자리가 나는 곳이었고, 와이프는 병원이 아닌 어떠한 편안한 곳에서 마지막을 보내고 싶다고 하였다. 


이제 와이프는 밥도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고 영양제 팩들은 늘어갔지만 줄어가는 몸무게에 매일 보는 나조차도 와이프가 야위어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는 콧줄로 공급할 수 있는 산소의 맥 스치에 도달하여 다음은 이제 인공호흡기 전에 쓸 수 있는 장치만 남아있었다. 우리는 이전에 이미 무의미한 연명치료는 안 하기로 서명을 했기에, 인공호흡기는 사실 옵션이 아니었다. 와이프는 마지막에 자기가 의식 없이 살아있는 게 의미 없다고 이전부터 이야기해왔고 나도 그 부분은 존중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와이프는 콧줄로도 이젠 숨참을 막을 수 없는 상황이 하루 이내에 생겼다. 


와이프가 그날 밤 영정사진을 고르자고 하였다. 





혹시 모르지만 아들이 마지막일지 모르는 엄마와 만남을 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이프는 자신의 아픈 그리고 병원에서 입원한 모습을 사실은 보이기 싫어하였다. 하지만 자신도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는지 묵묵히 고객을 끄덕였고 우리 부모님과 장인어른 그리고 아들까지 병원을 찾았다.


아들이 올라왔을 때 와이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들은 어색한지 어리둥절 여기저기를 막 쳐다보았다. 병실의 분위기만으로도 심각한 상황이 전달이 되었던 건지. 


나는 와이프가 혹시 아들이 할 말이 있나 싶어서 "할 말 없어?" 물어보았는데 와이프가 자기는 지금 아무 이야기도 하고 싶지 않아라는 눈빛을 줬다. 


아들을 데리고 나왔다.



자기 사진들 중 가장 이쁜 사진 내 마음에도 쏙 드는 사진을 고르고는 자는 둥 마는 둥 괴로워하는 와이프를 앞에 두고 난 미련하게도 꾸벅꾸벅 졸았다. 


4주째 병원 생활이 되면서 나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더 정신을 차려야지 하면서도 점점 흐리멍덩해졌고 와이프와의 마지막을 더 잘 보낼 생각보단 와이프를 안 보내고 싶은 마음에 더 어리석게 미련하게 시간을 보냈다.


그날 밤 와이프는 친구들에게 작별 문자를 보냈다. 


친구가 보내준 여러 문자들을 보며 난 펑펑 울었고 그제야 와이프가 진짜 떠나는구나 싶었다. 와이프는 오히려 무덤덤했고 여러 가지 몸이 힘들었기에 울 힘도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또 미련하게 꾸벅꾸벅 졸다가 와이프가 핸드폰 메모장에 적은 몇 가지 메모장을 캡처해서 보내주었다. 


나와 부모님, 그리고 아들에게 쓰는 마지막 편지였다. 

뭐야 왜 벌써 나한테 마지막 편지야! 그렇게 포기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난 애써 담담하게 편지를 읽었다. 이렇게까지 마지막 인사를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하는지. 나와 와이프는 이 부분에 대해 항상 토론을 많이 했었다. 죽음이란 준비를 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 난 불가능한 것 같았다. 어떻게 죽음으로 인한 헤어짐에 시간이 많다고 준비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아침에 일어난 와이프는 삼각김밥과 주스가 먹고 싶다고 하였다. 난 부리나케 지하의 편의점으로 갔다 왔고 와이프는 웬일인지 삼각김밥 반개와 쥬스한병을 그 자리에서 해치웠다. 


와이프가 연락한 친구가 전화가 와서 오는 길에 필요한 게 없냐고 하여 난 문뜩 와이프가 좋아했던 "당근주스"가 생각이 나서 부탁하였고 무려 3병을 사서 친구가 도착하였다. 


와이프는 목이 많이 탔는데 당근주스를 그 자리에서 또 원샷을 하였다..


그리고 갑자기 귀가 아프다고 하여 선생님을 불렀는데 원인을 정확하게 알 순 없었다. 


여러 친구들이 혹시 마지막일 수도 있는 만남을 위해 줄줄이 방문을 하였고, 난 잠시 자리를 비켜주었다.




"오빠" 갑자기 와이프의 친구가 날 불러서 난 서둘러 병실로 들어갔다. 


와이프가 의식을 잃었다.


지금 장인어른이 오고 계신데.. 딸이랑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보고 싶으실 텐데.. 간호사님께 조금이라도 더 숨을 유지할 수 있게 강압제를 부탁하였지만 그 강압제가 병실에 도착하기 전에 와이프는 하늘나라로 갔다. 


잘 가 내 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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