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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cony Review Apr 06. 2020

희생 속의 이기심

조금은 유별난 암 투병일기 (11)

제주도 여행과 더불어 우리가 즐겨 찾게 된 곳이 생겼다. 강원도  홍천의 힐리언스 선마을이었다. 


처음엔 무작정 와이프가 쉬기에 좋을 것 같아서 찾았다가 내가 너무 좋아하게 된 곳이다. 그곳은 전파가 차단되어 숙소나 대부분의 공간에서 전화 및 인터넷이 안 되는 곳이었다. 그렇게 되니 자연스레 책을 읽거나 온전한 휴식을 할 수 있었고 나는 생각했던 것보다 그런 휴식이 필요했었던 모양이다. 식단 또한 건강식으로 3끼가 나오니 '건강한' 식당 검색도 안 해고되고 나에겐 정말 편한 공간이었다. 


와이프가 첫 진단받은 지 1년가량 되었고 4기 환우가 된지는 4개월이 넘어가는 이 시점 나는 와이프가 치료가 될 수 있다면 뭐든지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마음속들 어딘가엔 내가 노력하고 희생하는 만큼 나를 챙겨야겠다는 이기적인 마음도 항상 같이 존재했다. 


학교에서 사정을 봐줘서 한국에서 학업을 이어가게 되었지만 박사과정이기에 Qualification (퀄 시험)을 앞두고 있던 나는 가끔은 내가 '이렇게'까지 하면서 공부를 해야 하나? 하는 조금은 삐뚠 생각에 며칠을 사로잡히기도 하였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까지 살고 있다는 걸 인정 못 받는 생각이 들 땐 기분이 나빠지기도 하였다. 


어쨌든 시간은 흘러 또 다음 CT촬영을 앞두고 있었다. 




CT를 찍고는 바로 내 퀄 시험이 있었다. 24시간 봐야 하는 시험이었기에 밥 먹는 시간도 아껴야 했고 와이프는 나에게 도시락을 싸주었다. 공부하면서 와이프를 돌보는 게 희생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와이프는 아픈데도 나를 돌보는데.


시험을 잘 마치고 며칠 뒤 병원을 찾았다. 저번과 마찬가지로 영상판독지를 떼었다. 


암은 커져있었다. 개수도 늘어 있었다. 와이프의 폐의 모습이 어떨까 상상을 하려다가 멈칫했다. 나는 담담하게 와이프를 위로하여야 하는 건지 같이 슬퍼하여야 하는 건지 헷갈렸다. 둘 다 어설프게 한 것 같다. 하지만 눈물은 참았다. 


교수님 진료실에 들어가자 교수님도 안타까움을 표시하셨다. 워낙 젊어서 '센' 약으로 했던 거고 효과를 좀 볼까 희망을 가졌었다고 한다. 결과는 5개월 만에 약이 바뀌게 되었다. 


교수님께서는 저번에 '센'약을 썼으니 이번엔 조금 약한 약을 쓰자고 하셨다. 젤로다 (Capacitabine)이라는 경구용 항암제였다. 약하다는 말은 부작용이 약하다는 말이었지만 왠지 '효과'가 약하다는 말처럼 들렸다. 


내가 알아본 최근 임상시험과 논문들에 의하면 냅 파클리탁셀 (Nab-paclitaxel)과 티센트릭 (Atezolizumab)이라는 면역항암제와 병용이 의사와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결과를 내고 있었다. 그래서 냅 파클리탁셀과 비슷한 카테고리인 세포독성 항암제와 면역항암제의 병용이 우리가 해야 할 치료라고 생각했다. 


교수님께서 현병원에서는 면역항암제를 법적으로 처방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난 교수님께 아무 근거 없이 "그럼 제가 방법을 알아오겠습니다" 하고 외래를 다음 주로 잡았다. 와이프는 내심 걱정하는 눈치였지만 당장 항암치료를 안 하게 된 안도감도 있었던 모양이다. 


내일모레 제주도 가기 전에 방법을 찾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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