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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cony Review Apr 02. 2020

암 공부의 시작

조금은 유별난 암 투병일기 (10)

폭풍우 뒤에 고요한 바다처럼 우리는 안정을 찾아가는듯하였다. 나의 학교에선 사정을 봐줘서 남은 학업과정을 한국에서 수료할수있게 해주었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였다. 


전이 후 시작한 항암 치료제로 3차까지 항암을 마치고 이제 CT촬영을 앞두고 있었다. 아직 아무 증상도 없었기에 암이 좋아졌는지 더 심해졌는지 알 방법은 영상 촬영밖에 없었다. 


한편으론 좀 '오버'라고도 생각했지만 나는 이번에 혹시 항암치료의 반응이 없을 경우를 대비하여야 한다고 생각했고 '암 공부'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암'에 대한 공부라기보단 '삼중음성 유방암 4기'에 대한 공부에 가까웠다. 이번 치료가 실패하면 무슨 약을 써야 할지. 


수술할 때 남은 조직으로 Next Generation Sequencing (NGS)라는 유전자 검사 그리고 PDL1 발현율이라는 면역항암제 반응율(?)이라고 알고 있었던 검사도 진행하였었다. 뭔가 과학적으로 접근하면 조금이라도 가능성이 올라갈 것 같았다. 


NGS 검사 결과 와이프의 암 조직에서는 수십 개의 유전자 변이가 발견되었지만 실제로 그 유전자 변이를 타깃 할 수 있는 표적 치료제는 시장에 많이 나와 있지 않았다. 게다가 PDL1발현율도 낮았기 때문에 면역항암제의 효용성도 근거가 부족했다. 


한국의 종양내과 교수들은 워낙 환자를 많이 보고 한 환자 환자에게 신경을 쓸 겨를이 별로 없었다. 나는 미국에 삼중음성 유방암을 진료하는 교수들에게 이메일을 보내기 시작했고 약 3-4명에게 답장을 받았다. 물론 이들도 나에게 정답을 제공할 순 없었고 (정답이 존재하지도 않지만) 어느 정도 다음엔 어떤 약을 쓰는 게 우리에게 최선일지 나 홀로 자신감을 얻어갔다. 




CT촬영 후 첫 외래 날 우리는 교수님을 만나기 전 미리 원무과를 찾아 영상판독지를 떼었다.


한줄기의 빛이었다. 생소한 단어들로 이루어진 판독이었지만 확실히 '암이 줄었다'라고 되어있었다. 와! 선 항암 할 때도 한 번도 줄지 않았던 암이기에 실제로 암이 줄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 기분은 엄청나게 좋았다. 와이프가 죽다가 살아난 기분까진 아니였겠지만 그와 비슷한 느낌이 났다.


그리고 여태까지 불안해 해 왔던 그리고 다음 약까지 알아왔던 나의 '오버'가 살짝은 부끄러웠다. 


'그래 이렇게만 계속 가면 돼!'와 '다음엔 또 어떻게 될지 모르니 또 준비해야 돼'사이에서 조금 더 희망적인 생각으로 많이 기울게 되었다. 최소한 다음 3차 항암치료 동안인 약 9주 동안은 그냥 이렇게만 살면 되니깐. 행복하게만 살면 되니깐.


4기 환우가 된 와이프가 지난 9주 동안 먹고 싶은 것도 잘 못 먹고 이랬던 걸 알기에 오늘만은 그녀가 먹고 싶은 음식을 먹어야겠다 싶었고 역시나 피자를 먹으러 우리는 병원을 나섰다. 


식사를 하던 도중에 우린 다음 주 주말 제주도로 가는 비행기표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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