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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cony Review Apr 13. 2020

천국이 있다면

조금은 유별난 암 투병일기 (12)

나는 이틀 동안 네이버 다음 등 온갖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글을 찾아봤고 그리고 또 그 글들을 쓴 사람에게 쪽지를 보냈고 몇 명과 전화통화까지 한 끝에 우리가 쓰고 싶은 약을 사용할 수 있는 병원 몇 군데를 알아내었다. 


어떠한 이들은 돈만 주면 다 해주는 곳이다, 양심이 없는 곳이다 댓글들이 달려있었지만 와이프를 살릴 수 만 있다면 무슨 일을 못할까 생각이 들었다. 


본 병원에서의 외래에 맞춰 이 두 번째 병원 외래를 잡고 나서 한숨을 돌렸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마치 '큰일'을 해낸 것 같았다. 심장이 두근두근 했다. 이럴 때마다 CT 판독 지를 읽었을 때 마음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진짜 와이프가 치료되는 거 아니야?' 이런 나이브한 희망들로 마음이 가득 찼다.


5월의 제주는 지난겨울 와이프가 다시 재발하고 찾았던 겨울 제주랑은 또 다를 거라는 기대에 잠까지 설쳤다. 


첫 제주도와 마찬가지로 표선 쪽으로 숙소를 잡았고 우리가 도착했을 때 구름이 좀 끼였지만 어느새 해가 나왔다. 나도 이렇게 바다에 놀러 오는 것이 오랜만이었고 게다가 아들이 이제 수영복도 입고 꽤 활동적이었기에 우리 세 가족에겐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다. 


아들이 잠들고 와이프는 천국이 있다면 오늘 그 바다가 천국일 거라고 말했다. 




나는 긍정주의자다. 나는 현실주의적이면서 긍정적 일수 있다고 믿었었다. 지금도 믿는다. 


정신없이 두 병원을 왔다 갔다 하며 젤로다 (Capecitabine)라는 경구용 항암제 - 교수님이 약하다고 표현했던 알약 항암제 - 와 티센트릭 (atezolizumab)이라고 불리는 면역항암제 병용 치료를 어느덧 2차까지 진행하였다. 저번 항암제와 마찬가지로 3차 진행 후 CT촬영으로 암 진행을 판단하기로 하였다.


초기 암의 경우 항암 횟수가 정해져 있지만 4기가 된 이상 효과가 있는 한 항암제를 계속 쓰는 게 전략이다. 효과가 없음을 알게 되면 항암제를 바꾸고. 이를 반복하다 보면 정말 효과가 좋아서 암이 많이 줄어들어 항암 방학을 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어려운 암은 항암제를 바꾸길 반복하다가 항암제가 다 떨어지게 된다. 삼중음성 유방암의 경우 식약처에서 지정하기를 세 번째 약까지 정해놓았다. 결국 우리는 세 약 중 두 번째 약을 쓰고 있는 중이었다. 


와이프는 첫 번째 약을 쓸 때부터 '엄마'가 없을 아이 걱정과 '아내'가 없을 남편인 내 걱정을 했다. 나는 그러기엔 너무 이르다고 했었다. 우린 노력할 것이고 혹시 모를 성과가 우리를 찾아올지도 모른다고 했었다. 


어느 날 마침 우리가 쓰는 조합의 항암제 두 가지를 시험하는 임상 공고가 떴고 나는 보란 듯이 '봐봐! 우리가 하는 치료가 정말 가능성이 있나 봐'를 집에 오자마자 와이프에게 외쳤다. 


와이프는 작년 11월 전이 재발 소식을 들었을 때 올해 7월 처남 결혼식을 못 갈 걱정을 했었다. 하지만 보란 듯이 우리는 다음 주 결혼식 참석을 앞두고 있었다. 


나는 그날 저녁 내 긍정주의가 오버가 아님을 와이프에게 확인받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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