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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연 Mar 28. 2019

버려지는 것들에 대하여

2. 영화티켓

해당 사물이 버려질만한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구분하는 기준이 애매한 것들이 있다. 영화티켓이 가장 대표적이다. 최근 한국의 영화상영관들은 결제 영수증을 티켓으로 대체하여, 빳빳한 종이 재질의 영화티켓을 찾기 어려워졌다. 이러한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을 때, 나는 속으로 깊이 한탄했다. 나에게 영화티켓은 입장할 때 점원에게 보여주고 버리는 용도만 가진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영화를 보고 난 뒤에 티켓을 노트에 붙여 짧게나마 느낀 점을 적고, 인상 깊었던 영화들은 포스터 속 주인공들을 오려내어 정성스레 풀로 붙여 코멘트를 달기도 했었다. 내게 종이로 된 영화티켓은 기록을 위한 도구였고, 누구와 함께 영화를 봤는지 추억할 수 있게 해주는 매개물이자, 그것을 모으는 것 자체만으로 하나의 취미생활이 되곤 했었다. 


영수증 티켓이 종이티켓을 대체할 수 없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그것은 영수증이 가진 물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기다란 모양과 얇은 재질의 혈통을 이어받은 티켓에게, 우리는 편의점에서 물 한 통 산 뒤에 받는 영수증과 같은 태도를 취하게 된다. 반으로 접어 지갑에 쑤셔 넣거나, 그 자리에서 손으로 움켜쥐어 구겨버린 뒤 쓰레기통에 던지는 태도 말이다. 우리는 영수증을 막 대하는 버릇을 버리지 못한다.  (영화티켓이 그저 지갑 한구석에 몇 달간 구겨진 채 방치해뒀던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이렇듯 사물의 물성은 나와 그것의 경험에 깊이 관여하고, 따라서 우리의 관계를 정의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또한 영수증 티켓은 유한하다. 기록의 도구가 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요소가 결여되어 있다. 이것은 아주 치명적인 결함이다. 기록은 영원성을 간직한 무언가로 유한함을 대체하려는 욕구인데, 영수증에 적힌 글자는 점차 지워지고 색이 변한다. 영수증 티켓을 모아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정성스레 모아 놓은 영수증 티켓의 글자가 점차 희미해지는 것을 확인할 때의 그 허망함을. 영수증 티켓은 오히려 우리가 가진 유한성을 확인시켜줄 뿐이다.


며칠 전, 독일 영화관에서 캡틴 마블을 봤다. 영수증으로 티켓을 대체한 우리나라와 달리, 아날로그 한 독일은 여전히 종이티켓을 준다. 마치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겠다며 로맨틱한 약속을 하는 듯한 빳빳한 종이티켓을 받으며 나는 과거의 향수에 젖어 감격스러울 지경이었다.   

바로 이전에 쓴 글에서 영수증이 하나의 기록물이 될 수 있다고 해놓고, 이번에는 영수증 티켓이 가진 한계를 말하고 있는 나 자신이 참 웃기기도 하다. 내가 영화감상에 유독 깊이 의미부여를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는 편의점에서 사는 물 한 통과 영화 한 편이 동등하게 느껴질 뿐만 아니라, 오히려 버려지는 종이를 아껴 환경을 보호할 수 있으니 더 선진화된 시스템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티켓이라는 기능과 영수증이라는 기능을 이상하게 조합해놓은 영수증 티켓은 여전히 내게 미스터리이다. 버려질만한 것이 아닌데도 버려질 취급을 받은 종이티켓이 안타까운 마음에, 추모하듯 회고하는 마음으로 글을 써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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