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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래 Apr 16. 2024

혹시! 풀이 꽃이 아닐까?

꽃이라 하니 꽃인 줄 알고 풀이라 하니 풀인 줄 아는데 정말 그럴까?

봄비가 내립니다.

낮잠듭니.

바람이 흔드는 나뭇잎 소리에 잠을 깼습니다.

비는 그쳤고, 푸르러지는 마당에 복숭아꽃이 흐드러집니다.


오후 볕이 따사로워 마당에 쪼그리고 앉았습니다.

봄을 맞으며 새로 일궈 꽃씨를 뿌려 놓은 꽃밭에 풀들의 새순이 보입니다.

저건 당연히! 당장! 뽑아야 하는 것들입니다.

장렬히 싸울 생각만으로 장갑 챙길 새도 없이! 호미도 들지 않고! 맨손으로 달려가 용감무쌍하게 뽑습니다.

뽑히지 않는 것들은 손톱으로 야무지게 잘라냅니다.


마음에 담았던 상념들이 하나씩 솎아지고 잘려나갑니다.

새털 같은 가닥의 근심들도 하나씩 뽑혀 나옵니다.

뿌리 깊은 욕심 한 덩어리가 한 손 가득 잡혔습니다.

 

마음이 맑아집니다.

흐리던 눈도 맑아져 세상은 더욱 푸르러졌습니다.


그런데 내가 뽑고 잘라 손에 들고 있는 이 것이 정말 풀인지 모르겠습니다.

남들이 풀이라 하니 의심 한번 안 하고 나도 풀이라 여겼습니다.

당장 무찔러야 하는 것이고 당연히 죽여야 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꽃을 풀이라 하며 열심히 뽑고 있지는 않았을까?"


마당에 늦은 저녁이 오듯 어슴프레 다시 근심이 생깁니다.

상념들이 풀의 새순처럼 꽃의 새순처럼 돋아납니다.


내일도 봄볕이 좋으면 마당에 나갈 겁니다.

그때 꽃밭에 앉아 어느 것이 정말 꽃이고 풀인지 내 눈으로 단단히 확인해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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