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 집중할 수 있는 주제는 있는가?
마을일이나 이웃일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마음에 상처를 입는 귀촌인들을 종종 본다. 잘하려다, 열심히 하려다 뒤탈이 생기는 사례가 많다.
적극적으로 마을일을 찾아 나서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가만히 있어도 마을 사람들이 같이 하자며 청하기도 하고, 의견을 묻기도 한다. 부탁도 한다.
이때는 머리를 좀 굴려야 한다. 상대가 정말 몰라 그러는 건지, 정말 부탁하는 것인지에 대한 분위기 파악을 잘해야 한다. 큰 의미 없이 지나가는 말일 수도 있고, 분위기만 떠보는 것일 수도 있다.
눈치 없이 이렇게 하면 되고, 이렇게 고치면 좋겠다며 성의껏 침을 튀기다 보면 어느 순간 잘난 체하는 인간이 돼 있다. 열심히 하겠다며 달려들었다가는 자기 멋대로 하는 놈이 될 수도 있다.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없는 것이 마을일이다. 잘하면 잘한 대로 못 하면 못 한 대로 욕을 먹을 수도 있다.
A씨는 귀촌한 지 꽤 됐다. 산마을에서 카페를 운영하는데 제법 유명하다. 도시에서 여행객들이 일부러 찾아온다. 주말에는 자리가 없어 돌아가는 손님들도 있다.
A씨는 어지간한 마을 일에는 나서지 않는다. 처음 귀촌했을 때는 지역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겠다는 마음에 직책도 맡아보고 행사에 불려 다니기도 했지만 대부분 감투놀음이지 일을 하는 게 아니었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건의를 해도 거기까지였다. 그래서 자신의 일만 열심히 하기로 마음먹고 주민들과 어울리는 것을 최소화하며 살고 있다.
그러다 최근 헛발질했다. 그의 하소연은 이랬다.
옆 마을 이장을 비롯한 몇 사람이 마을의 빈 건물을 고쳐 카페를 하고 싶다며 찾아왔다. 군청에서 마을에 지원해 준 예산이 있어 그걸 쓰겠다는 계획이었다.
찾아온 사람들은 건물 인테리어는 물론 카페 운영과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이었다. 받아놓은 예산은 있으니 '우아하게 커피숍'을 해보고 싶은 거였다. A씨는 성의껏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었다.
며칠 후 마을 사람들이 다시 찾아왔다. 자신들은 잘 모르기 때문에 카페를 오픈할 수 있게만 해달라며 사정했다. 카페를 하기에는 턱없는 예산이었지만 A씨는 도와줄 마음으로 나섰다.
자재를 사서 일을 시작하는데, 마을 이장이 이렇게 바꿔달라 요구했다. 어떤 날은 마을 책임자란 이가 나서서 이건 직접 한다며 견적에서 빼라고도 했다. 인근 도시에서 카페를 한다는 마을 사람의 아들이란 이가 나타나, 커피머신은 이걸 쓰기로 했다며 전혀 어울리지도 않는 머신도 가져다 놓았다. 아무것도 모른다던 사람들이 페인트 색까지 간섭했다.
결국 A씨는 마을 사람들에게 계약서를 보여주며 따졌다. 언제 이런 말을 나눴고, 이렇게 해달라 해서 이렇게 했다며 핸드폰 문자 메시지도 보여주었다. 앞뒤 사정을 설명한 후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정확하게 얘기하면 그렇게 할 테니 결정하라고 했다.
마을 이장이든 책임자든 누구도 며칠이 지나도 답이 없어 손을 떼겠다 하자, 그제야 이장과 책임자란 이가 나타나 앞으로는 절대 그러지 않을 테니 알아서 마무리 지어달라 했다.
다시 일을 시작했지만 수시로 말이 달라졌다. 계약서부터 주고받았던 문자 내용까지 꺼내 놓고 따져도 그때뿐 정리가 안 됐다.
하는 수 없이 공무원을 불러 중재하라 하여 일을 끝낼 수 있었다. 군청 예산으로 하는 공사라 그렇게라도 정리를 할 수 있었다.
도울 마음으로 나섰는데 결국 A씨는, 주민들 말 안 듣고, 무시하고, 잘난 척하고, 돈만 달라고 하는 사람이 됐다.
“내가 만들어 준 간판은 건물 입구에 떡하니 붙어 있는데 카페 문은 늘 닫혀 있어요. 카페 할 생각도 없었던 것 같아요. 그걸 할 사람도 없었고요. 자기들 돈이 아니니 그냥 쓰고 싶었던 거겠지요.” A씨의 하소연이었다.
B씨는 귀촌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름만 있고 활동이 없는 지역 문학단체 회장이란 사람을 만났다. B씨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난 회장은 B씨에게 사무국장 일을 해달라 부탁했다. 지역 사람들도 사귀고, 지역을 위해 봉사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수락하고 열심히 일했다. 당연히 무보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역에서 주목받는 단체가 됐다. 그렇게 자리를 잡자 회원이란 사람들이 하나 둘 말을 하기 시작했다. 잘했다고 손뼉 쳐 놓고도 어느 자리에서는 왜 그렇게 했는지를 묻고 따졌다. 계획서를 만들고 이렇게 하자고 해 마무리한 일을 두고 회장이란 이는 왜 그렇게 했느냐고 또 따졌다.
B씨는 손을 뗐다. 결국 혼자 신나 자기 멋대로 잘난 체한 사람으로 뒷말을 듣고 끝냈다.
시골서 살아보면 뭘 열심히 하려다 망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농사도 그렇고 집 짓기도 그렇다. 무리하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해야 뒤탈이 없다. 이웃 사람 사귀는 것도 똑같다. 열심히 김 씨 박 씨 이 씨 만나고, 뭔가 잘해보려다 망한다.
매사에 다부지게 붙어 싸워 이길 자신이 없으면 적당히가 답이다. 도시에서처럼 치열하게 싸워 이기려고 귀촌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적당한 거리에서 분수껏 어울려 사는 것이 좋다.
그런 뒷심을 가지려면 나만의 일이 있어야 한다. 남 눈치 안 보고 남 신경 쓰지 않고, 내가 집중할 수 있는 주제를 찾아 주제파악을 해야 한다. 할 일이 없으면, 내 주제가 없으면, 주변을 자꾸 두리번거리고 기웃거리게 되고 그러다 헛발질한다.
살아보니 인생이 다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