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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래 Aug 23. 2024

시골에서는 '아직도 청춘'

10년 후 나는 어떤 모습으로 늙어갈까?

도시에 살며 한창 일할 때는 대부분 나보다 연장자들을 만나 업무 협의를 하고 상담도 했다. 그렇게 바삐 살다 어느 순간부터 회사 모임이나 외부 행사에 가면 연장자 취급을 받기 시작했다. 후배들은 슬슬 눈치를 보며 피했고, 회식 노래방이라도 같이 가면 왕따가 되기 일쑤였다. “내 나이가 벌써?” 하는 생각이 뒤통수를 치며,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기분이 묘했다.

     

지금도 일이 있어 서울에라도 가면 대부분 나보다 젊은 사람들을 상대로 업무를 다. 꼰대 취급받지 않으려 옷도 갖춰 입고 말도 젊은 척 포장하지만, 흰머리에 주름은 못 속인다. 거기다 마당일 하다 얼굴 시커멓게 탄 촌놈 아닌가. 나이 먹은 티가 난다.


하지만 시골에서는 여전히 “내 나이가 어때서~”다. 주변을 둘러보면 내 또래 거나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눈이 침침하고 무릎이 쑤셔도 '아직도 청춘' '여전히 청춘' '언제나 청춘'으로 살 수 있다.

     

지역에서 살며 이웃들과 어울리는 것을 극도로 조심한다. 경험상 가까이 어울려 사는 것보다 멀리서 지켜보며 사는 게 편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너무 무관심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지역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하고 적극적 찾아 나서기도 한다. 혹 재미있는 무엇인가가 있으면 한 다리 끼어보려고 기웃거린다.


지역에는 크고 작은 모임이 많다. 다 챙기려면 한도 끝도 없다. 할 수 없이 가야 할 모임도 있고, 공식적인 회의에 불려 갈 때도 있다. 참석한 사람들을 둘러보면 또래도 있지만 연장자 분들이 많다. 10년 이상인 분들도 지역의 유지로 열심히 일을 한다. 모임에도 열심히 나오고 행사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마을에 사는 일흔 넘은 목수 형님은 여전히 공구통을 들고 지붕 위를 날아다닌다. "저 양반은 고소공포증도 없나?" 하며 올려다보며 늙음을 잃는다.


그런 선배 어른 형님들도 개인적으로 만나 같이 식사라도 해 보면, 귀가 잘 안 들리니 좀 크게 말을 하라는 분들도 계시고, 눈이 침침해 병원에 수술 날짜를 받아놓았다는 분도 있다. 틀니를 걱정하기도 한다. 저 나이가 됐을 때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10년 후에 나도 저렇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도 한다. 좀 더 품위 있고 품격 있게 나이가 들어야겠다 다짐도 는데 그게 잘 될지 모르겠다.




현대인들은 ‘웰빙(well-being)’이 생활화 됐다. ‘삶의 질을 높여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 웰빙이다. 주변에 주말주택을 지어 놓은 사람들도 웰빙을 위해서라 말한다. 웰빙을 외치며 잘 살고 있는 주변 사람들도 세월에는 장사가 없다. 한 해가 다르게 늙어간다.


며칠 보이지 않아 물어보면 병원에 다녀왔다고 한다. 작년과 다르게 찬 바람에 무릎이 시리다고 한다. 같이 막걸리 마시자 청하던 이웃이 조용해 물어보니, 종합검진을 했는데 종양이 발견돼 수술을 받고 요양 중이라 한다. 의사가 술은 절대 입에 대지 말라 해 끊었다고 한다. 몸이 편찮아 서울 아들네 아파트로 옮겨간 옆집 어르신은 아들네 집에 있다 요양원 갔다 큰 병원에서 작년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병실에 누워 엑스레이 찍고 피 검사 하고 주사 맞으며 마지막을 보내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 벌써 걱정된다. 죽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그 갑갑함을 어떻게 견딜지 벌써 우울해진다.





누구나 잘 사는 것에만 몰두한다. 그래서 잘 죽는 것에 대해 생각할 겨를이 없다. 사회적인 분위기도 ‘죽음’에 대해 말 꺼내는 것을 불편해한다. “재수 없다!”라고 타박한다. 나의 마지막 모습에 대해 심각한 고민들을 못 하고 안 하려고 한다.


하지만 태어나는 것은 반드시 죽는다. 인간이 가진 유일한 진리다. 죽음은 누구나 꼭 치러야 하는 인생의 마지막 과정이다. 질 높은 죽음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하고 준비가 필요하다. 잘 죽을 준비를 하는 것은 죽음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맞이하는,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잘 사는 것이 있다면 잘 죽는 '웰다잉'도 있지 않을까? 그래야 진정 행복하지 않을까?      




웰다잉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한다. 불행해서가 아니라 나와 가족들의 진정한 행복을 위해서 준비한다.


선진국들은 국민들의 삶의 질에 신경 쓴다. 마찬가지로 죽음의 질도 따진다. 죽음의 질이 가장 좋은 나라는 영국이라고 한다. 나라에서 국민들 죽음 질 관리를 한다. 영국에서는 좋은 죽음을 '익숙한 환경에서, 가족·친구와 함께, 존엄과 존경을 유지한 채, 고통 없이 죽어가는 것'으로 정의한다. 살고 있는 집에서 가족과 친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안히 잠드는 것이 최고의 죽음이란 이야기다.


오늘도 읍내에 회의가 있어 나갔는데 모인 사람들 대부분 나보다 연장자였다. 여전히 내가 심부름꾼 노릇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만큼이라도 젊다는 것이 행복하다.


모임을 끝내고 읍내에 살고 있는 아는 후배를 만나 막걸리 한 잔을 했다. 나이가 열두 살이나 어린 후배가 나보고 “형님은 늙지도 않고 여전하다”라며 입바른 소리를 했다. 어금니가 시려 예전처럼 얼음 띄운 막걸리를 벌컥벌컥 마실 수 없는데도 후배가 '여전히 청춘'이라 해주니 기뻤다. 늙는 것보다 청춘이 좋긴 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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