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경래 Aug 21. 2024

전원생활은 집보다 창고

느는 건 공구요 쌓이는 건 자재로다!

여름을 지나면서 태풍이 온다는 소식을 듣는다. 시골서 살다보면 기후에 매우 민감해 진다. 수시로 변하는 일기예보에 신경을 곤두세운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안 오면 안 오는 대로 걱정이 될 때가 많다. 태풍이나 폭우, 폭설 예보를 들으면 혹시 피해나 없을까 습관적으로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

      

시골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 중에는 경치 좋고 물 좋은 것만 보고 생각 없이 집을 지어 살다 폭우 폭설에 맥없이 당하는 경우도 있다. 계절 좋을 때야 콧노래를 부르지만 늘 계절이 꽃놀이일 수는 없다. 장마도 지고 폭우 폭설에 태풍도 분다. 날씨가 안 좋을 때를 잘 대비해야 안전한 전원생활을 할 수 있다.

      

집터를 만들며 기초를 부실하게 했거나 석축이나 경사지 관리를 잘 못했을 때, 강제로 물길의 방향을 틀어 놓았을 때는 태풍이 와 폭우가 내리거나 해빙기 때 큰일을 당한다. 특히 시골서는 배수가 중요하다. 석축이 무너지고 경사지가 쓸려나가는 등의 대형 사고는 배수가 안 돼 생긴다. 집을 짓고 난 후에는 물이 잘 빠질 수 있도록 해 놓아야 비가 많이 왔을 때 사고도 없고 고생하지 않는다. 살아보니 집터는 ‘해 잘 들고 배수 잘 되는 곳’이 최고다.




처음 전원생활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경치 좋은 땅과 아름다운 집에 많이 꽂힌다. 신문 잡지나 방송에 나오는 그림 같은 전원주택을 지으려 기를 쓴다. 내 살기 편하고 다른 사람 보기도 좋고 멋스럽고 폼도 나는 집이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영업하는 집처럼 특별한 목적이 있는 경우에는 편리함보다 멋과 폼이 더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살아보면 겉멋 든 집보다 살기 편한 집이 최고다.

     

내가 쓰는 집, 스스로가 편하면 되는데 겉멋이 들다 보면 다른 사람들 보기에 좋은 집이 된다. 보기 좋은 집이 살기도 좋을 수 있지만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 관리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구조가 되기 때문에 살면서 불편하다. 내 집에서 맘 편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자칫 모시고 사는 집이 될 수 있다.

 

시골살이는 보는 즐거움 뒤에는 늘 수고로움과 불편함이 따른다. 자연의 좋은 그림들도, 친환경적인 삶도 그렇다. 남 보기 멋진 집도 생활에 불편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걸 가꾸고 유지하려면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하고 비용도 많이 들여야 한다. 물론 체질적으로 그것이 맞고 이유가 있다면, 또 그만큼 경제적인 여유가 있다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계획할 때 따져봐야 한다.


시골생활은 늘 이중적이다. 편안함을 얻으려면 그만큼의 대가가 따른다.





어릴 적 춥고 눈 오는 겨울, 겉멋만 생각해 내복도 챙겨 입지 않고 얇은 옷에 멋을 잔뜩 부리고 나서면 어른들이 “개폼 잡다 얼어 죽는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멋 부리고 폼 잡다 얼어 죽는 집 몇 가지 예를 들어보면 이렇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고 잘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살면서 “저걸 왜 했지?” 하며 후회하는 경우들이 많은데 대체로 이런 것들이다.


전원주택을 지으며 아궁이에 장작을 때는 것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다. 군불을 지피고 아랫목에 누워 등을 지지는 멋으로 장작 아궁이의 황토방을 만들어 놓지만 실제 해보면 쉽지 않다. 나무를 준비해 장작을 패고 불을 지피는 수고로움이 있어야 방이 덥혀진다. 손가락으로 작동하는 보일러와 비교했을 때 몇 배의 불편함이 따른다. 


마당에 파란 잔디가 깔린 전원주택은 참 보기가 좋다. 그런데 그것 깔아놓고 몇 년 후 뒤집는 사람들이 많다. 어지간한 정성으로는 관리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전망은 당연히 좋아야 한다. 바다나 강이 발아래 있는 곳, 마을을 내려다보는 언덕 위에 집을 짓고 싶어 한다. 가장 전망이 좋은 2층 방 앞에 발코니를 낸다. 예쁜 테이블을 두고 햇살 좋은 날 가끔 커피도 마시고 책도 읽고 뭐 그런 그림을 그리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거 만들어 놓고 제대로 사용하는 사람들 그렇게 많지 않다. 오래되면 먼지투성이의 창고로 변하거나 관리가 안 되면 누수 등 하자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장작불을 피고 흔들의자를 주변에 놓고 와인 잔을 기울이든가 고구마 구워먹을 멋에 들떠 거실 한쪽에 벽난로를 만드는 사람들도 많고 전원생활의 로망이다. 매일 장작불에 고구마 구워 먹고, 장작불 소리를 들으며 불타는 밤을 보낼 것 같지만 몇 번 해보면 별 재미도 없다. 귀찮기만 하다. 거실이 추워 보조 난방을 한다면 몰라도 멋으로 만든 벽난로는 나중에 인테리어 정도로 쓰인다. 시골집은 따뜻하고 살기 편한 것이 가장 좋다. 오래 살며 손 때 묻혀 가꾸다 보면 멋스럽고 폼 나는 집이 된다.


텃밭 농사도 한번 지어봐야한다. 상추도 고추도 손수 길러 먹고 또 이따금 친구나 친지들이 오면 삼겹살 파티도 해야 하기 때문에 큰 밭에 욕심을 낸다. 하지만 텃밭 관리 그렇게 쉽지도 않을뿐더러 잘 길러 놓아도 나중에 처치 곤란할 때가 많다. 제때 추수를 못한 채소와 야채 곡식들이 밭에서 그냥 버려질 때가 많다.





집은 짓는 것보다 관리가 중요하다. 시골에서 집을 지을 때는 관리하기에 얼마나 편하고 경제적인가를 꼭 생각해 봐야 한다. 관리가 불편하고 비용이 많이 든다면 두고두고 고민거리가 된다. 


개인의 성향에 따라 차이는 있을  것이다. 부지런 하고 무엇을 만들고 가꾸는 것에 취미가 있고 재능 있는 사람이라면 집을 직접 관리하는 것도 수월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누구에게  맡겨 관리를 해야 한다. 당연히 비용이 든다. 필요 없는 무엇인가를 붙여 놓으면 멋 부리고 폼 잡기는 좋아도 관리가 힘들고 비용이 발생한다.


쓸데없는 것에 겉멋을 부리지 말고 실제 필요한 것을 준비하는 것이 살면서 도움이 된다. 그게 바로 창고다.


전원주택에서는 집보다 창고가 더 중요할 때가 많다. 살면서 집과 마당, 텃밭을 관리하려면 공구와 도구, 자재들이 필요하다. 자재와 공구만 잘 알아도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요즘 집은 목수들이 짓는 것이 아니라 자재와 공구가 짓는 다고 한다. 자재와 공구가 중요한데 시골서 살아보면 절실하게 느낀다.


집을 수리하고 마당을 가꾸고 텃밭 농사를 지을 때 기술자를 부르고 일꾼을 시킨다면 비용을 감당할 수 없고, 내 맘 같지 되지도 않는다. 내가 직접 해야 할 때가 많은데 그러다 보면 공구들을 준비하게 되고 어느 순간 창고 한 가득 쌓인다.

     

정리가 잘 안 돼 있으면 이전에 사용했던 공구나 자재가 어떤 것이었는지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도 못하고 찾지도 못해 새로 사는 경우가 많다. 나중에 보면 똑같은 것이 몇 개 씩 있다. 그래서 큰 창고가 필요하다.

      

전원주택을 지을 때는 창고에 많이 신경써야한다. 살면서 창고 관리를 잘하는 것이 시골생활을 잘하는 방법이고 폼 잡다 얼어 죽지 않는 방법이기도 하다.

     

필요도 없는 겉멋 부리지 말고 실속 있게 창고를 크게 지으세요. 

이전 16화 콘텐츠와 커뮤니티! 2C를 챙겨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