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 찾아 하다 보면 친구도 생기고, 인생이모작
제주도에 살며 자신의 집을 한 달 살기, 일 년 살기로 임대하는 지인이 있다.
지인에 따르면 한 달이나 일 년을 재미나게 살아보겠다며 사람들이 오지만 실제 알차게 보내고 가는 사람은 드물다고 한다.
처음에는 주변 여행을 하며 좋은 음식점과 카페를 찾아 맛난 음식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재미난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곧 따분함을 느껴 계약한 날짜보다 일찍 보따리를 싸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부부가 함께 온 경우는 싸우고 한 사람은 집으로 돌아가고 혼자 남아 여행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혼자 알차게 시간을 보내겠다고 오지만 며칠을 못 참고 심심해 이 친구 저 친구 전화해 놀러 오라 애걸하기는 경우도 있단다.
이들이 못 견뎌하는 이유는 혼자서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놀고 쉬러 왔는데 그 일도 쉽지 않다. 놀고 쉬는 것도 놀아본 사람이 쉬어본 사람이 잘할 수 있다.
며칠 전 퇴직자들을 대상으로 한 귀촌 프로그램에 강의 부탁을 받아 갔다. 중간 쉬는 시간에 퇴직이 일 년 남은 이가 말을 걸어온다. 귀촌하려고 강원도 평창에 집을 하나 얻어 살고 있는데 밤이 무섭다는 것이다. 낮에는 동네 마실이라도 다니는데 밤이 되면 할 일이 없어 미치겠다고 한다.
시골 마을이나 면소재지는 물론이고 읍소재지들도 초저녁만 되면 불빛을 보기 힘들다.
“도시에서는 잠이 안 오면 운동장에 나가 걷기라도 하고, 친구를 만나 동네 호프집에서 술이라도 마실 수 있는데, 시골에서는 정말 할 일이 없어요. 밤이 왜 그렇게도 긴지 심심해서 못 살겠어요.”
집 앞에 둑방이 있다. 걷기를 하는 마을 사람들이 많다. 그들 중에는 귀촌한 사람들도 많다. 마당 일을 하다 보면 둑방을 걷던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기도 한다.
하루는 혼자 공구를 챙겨 들고 집을 고치고 있는데 둑방을 걷던 부부가 일부러 들러 말을 걸었다.
"일 하시는데 청소할 사람 필요하지 않아요?"
귀촌한 지 일 년도 안 됐다는데 너무 심심해 못 살겠다는 거였다. 남편이란 사람이 내가 하는 일을 돕고 싶다는 거였다. 옆에 있던 부인이 말을 거들며 웃었다.
"우리 남편 이런 일 하고 싶어 하는데 부려 먹으세요! 일당은 밥만 먹여주면 돼요!"
농담인지 진담인지 몰라하며 나는 말을 받아줬다.
"이런 일 하실 분 같아 보이지 않는데요? 군청이나 면사무소 가보세요. 거기 가면 재미있게 배울 것들 많아요."
"아휴! 평생 교육받고 배우고 하며 살았는데 뭘 또 배워요. 이런 현장일이 좋지!"
좋은 땅 사 좋은 집 짓고 귀촌해 살 수는 있다. 하지만 누구나 재미있고 가치 있게 잘 사는 것은 아니다.
귀촌해 삶의 질을 높여 보람 있게 살려면 여러 가지 요소들이 필요하다. 그중에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두 가지가 있다. 귀촌한 사람들에게는 더욱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지만 꼭 귀촌한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SNS시대를 살려면 꼭 필요한 요소인 것 같다. 강의할 때나 얘기할 기회가 있으면 이것을 '2C'라 소개한다.
그것은 자신만의 ‘콘텐츠(Contents)’와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커뮤니티(community)'다.
도시에서 직장 생활할 때는 항상 일이 있고 바쁘다. 중요한 일이 아니라도 불러내면 심심한 시간을 채워주는 친구도 가까이에 있다. 하지만 시골서는 그렇지 않다. 혼자 잘 놀아야 한다.
막연하게 생각할 때는 할 일이 많을 것 같지만 막상 해보면 그렇지 않다. 혼자 놀아본 사람은 잘 놀지만 도시에서 열심히 산 사람들은 혼자 노는 것을 못한다. 놀 줄을 모른다. 옆에 할 일이 많아도 뭘 해야 할지를 못 찾는다.
자기만의 재미있는 일이 없다 보니 정원이나 마당, 텃밭에 풀만 뽑는다. 처음에는 그 일도 재미있다. 물론 그런 재미로 사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딱히 할 일이 없어 마지 못 해 하다 보면 힘든 노동이 되고 싫증 난다. 젊었을 때는 그나마 견딜만했는데 나이 들면 무릎에 힘도 빠진다.
귀촌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 있다. 각 지자체나 단체들은 취미부터 자기계발까지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글쓰기, 그림 그리기, 노래 부르고 악기 다루기 등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다. 힘든 일 하기는 싫고 심심하기는 하고 그런 귀촌자들이 많이 찾는다.
이번엔 글 쓰고 다음엔 그림 그리고 노래 부른다. 사실 그것이 적성에 맞아서가 아니라 심심하니깐 다닌다. 재능이 안 따라주니 몸만 바쁘고 재미가 없다.
마음 맞는 친구라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지만 쉽지 않다. 잘 못 어울려 다니다 보면 구설수에 오르기 십상이다. 나에게 맞는 콘텐츠를 찾지도, 좋은 친구도 못 만들고 시간만 허비한다. 나중에 보면 안방에 도화지 수채화 물감만 쌓이고 기타와 색소폰이 거실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귀촌할 때는 내가 푹 빠져 성의껏 할 수 있는 일을 먼저 챙겨야 한다. 우아하고 거창한 일이 아니라도, 마당에 나무 심고 풀 뽑는 일도, 창고를 만들고 고치는 일도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렇게 나만의 ‘콘텐츠(Contents)’가 있다면 함께 이야기하고 어울릴 수 있는 좋은 ‘커뮤니티(community)’가 저절로 만들어진다. 이웃이 될 수도 있고 SNS상의 친구가 될 수도 있다. 좋은 사람들은 그렇게 만들어져야 한다. 같은 정보를 공유하는 이웃과 친구, 동호인과 어울리면 생활의 질도 높아진다.
거기서 상품이 만들어지고 비즈니스가 돼 소득도 얻을 수 있다. 경제활동도 일어난다. 인생 2모작 3모작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