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법 따르지 않아 자재와 공법 선택 자유롭고 농업진흥지역도 가능
농사짓는 땅을 농지라 한다. 논밭과 과수원이다. 이 땅은 아무나 가질 수 없다. 우리나라 헌법에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이란 것이 있는데 ‘밭갈이하는 사람’, ‘농사에 힘쓰는 사람’이 밭을 가지라는 원칙이다. 소작을 금지하기 위해 대한민국 헌법을 만들 때 함께 만들어진 원칙이다.
그래서 농지법에서 농지 소유와 관리를 엄격히 하고 있다. 농지에는 농사만 지어야 한다. 내 땅이라 하여 밭에 논에 집이나 창고를 마음대로 지을 수 없다. 허가를 받든가 신고를 해야 하는데 까다롭다.
지금은 없지만 예전에는 ‘통작거리’란 기준이 있어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서 먼 곳의 농지는 소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예전과 비교해 지금은 농법이 많이 발달했다. 또 교통도 좋아지고 다들 자가용을 가지고 있어 농지가 어디에 있든 농사 지을 수 있는 환경이 됐다. 그래서 강원도에 살면서 제주도에서 당근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됐다. 비행기가 다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농사를 지으려면 도구가 필요하다. 농약도 비료도 있어야 한다. 강원도에서 제주도에 있는 농지에 일하러 갈 때 매일 호미며 농약과 비료를 싸들고 다닐 수 없다. 일하다 피곤하면 잠깐 휴식도 취해야 하고, 가지고 간 도시락도 먹어야 한다. 이런 목적으로 농지에는 농막이란 작은 창고를 지을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원거리 영농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농지에 쉽게 설치할 수 있는 농막이다. 복잡한 절차 없이 가설건축물로 설치해 사용할 수 있다. 면적은 20㎡로 제한하고 있으며 숙박은 할 수 없다.
귀농 귀촌하는 사람들은 농촌에 집 짓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이다. 집 짓는 비용도 비용이지만 인허가에 막혀 포기한다. 지으면 세금 부담도 있다. 농촌주택은 도시아파트와 비교해 가격상승 기대도 할 수 없다. 환금성도 떨어진다. 부동산 투자 매력은 없다. 그래서 집 짓기를 망설인다.
이런 사람들에게 틈새가 농막이다. 전원생활을 하고 싶지만 집 짓기에 부담을 느낀 사람들이 농막으로 많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농막은 숙박을 못 하게 하고 면적도 적어 사용하기 불편하다. 농막 설치 신고 후 임으로 면적을 키우고, 데크를 만들고, 정원을 꾸미고, 정화조를 묻는 등 편법과 탈법이 판을 치게 된 이유다. 관리주체인 지자체들은 걷잡을 수 없이 생겨나는 농막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가 힘들어 그동안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농림축산식품부에서는 농막을 원칙대로 규제하겠다 나섰다. 특히 농막의 원칙에 맞게 숙박을 할 수 없도록 하겠다 하자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민원에 밀려 한발 물러섰다. 그러면서 불법과 탈법이 판치는 농막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제도를 선보였다. ‘농촌체류형 쉼터’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8월 1일 국정현안관계장관회의에서 ‘농촌체류형 쉼터 도입 방안’을 발표했다. 올 12월부터 농지에 임시 숙소인 '농촌체류형 쉼터'를 지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인데, 기존 농막이 가지고 있는 불편함을 많이 보완했다.
정리하면 우선 농막보다 면적이 커졌다. 농지를 소유하고 농사를 짓는 사람은 해당 농지에 전용 허가 등의 절차 없이 연면적 33㎡(10평) 이내로 농촌체류형 쉼터를 설치할 수 있다. 농막 면적의 1.7배다.
특히 중요한 것은 농막에서는 숙박을 할 수 없었는데 체류형 쉼터는 숙박이 가능하다. 숙박을 할 수 있으니 거주가 가능하다. 물론 장기 거주는 안 된다.
또 농막에서 불가능했던 데크와 주차장, 정화조를 따로 설치할 수 있다. 면적 규제는 있다.
양도소득세와 종합부동산세가 부과되지 않고 취득세 10만 원과 연 1만 원의 재산세만 내면 된다.
문제는 설치 후 최초 3년 간 사용할 수 있고 이후 3년씩 3번 연장할 수 있다. 최대 12년까지 사용 가능하며 이후는 철거해야 한다. 기간을 한시적으로 한 것 때문에 현재 논란이 일고 있다.
농촌체류형 쉼터로 도시와 농촌을 오가며 영농 활동하는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을 최소 숙박 공간은 만들 수 있다. 주소 이전해 거주할 살림집이 필요하지 않다면 굳이 주택을 지을 필요가 없다.
주택 건축과 비교해 장점이 많다. 가장 큰 장점은 구조나 자재를 내 맘대로 하여지을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철근콘크리트로 지을 수는 없다. 가설건축물이기 때문이다. 그것만 피한다면 자재선택이 아주 자유롭다. 재주만 있다면 직접 지어도 된다.
체류형 쉼터는 주거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집인데도 주택과 달리 허가와 신고, 착공과 준공 등의 절차가 필요 없다. 건축법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면적만 맞추면 내 식대로 지을 수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자재, 내가 잘할 수 있는 공법으로 내 맘대로도 지을 수 있다.
집을 지어보면 알지만 정상적인 집 짓기는 토지에 대한 허가, 주택에 대한 허가, 건축할 때 규정, 준공할 때 챙겨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신고부터 착공, 준공까지 까다롭다.
현장에서 일하다 보면 또 건축주 입장에서 보면 “이게 왜 필요하지?” 하며 의아할 때도 많다. 건축주는 필요도 없는 것을 법이 먼저 요구한다. 맞추다 보면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 거기서 많이 지친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다. 주택은 내진설계가 필수다. 아무리 작은 집도 내진설계를 해야 하고 도면대로 지어야 한다. 주택은 단열 규정이 까다롭다. 법에서 정한 단열재를 사용해야 하고 두께도 맞추어야 한다. 창문도 등급이 맞게 끼워야 한다. 공법과 자재를 내 맘대로 할 수 없다. 모두 비용과 연동된다.
나무만으로 짓던 통나무집, 흙벽돌이나 블록으로만 짓던 황토집은 짓고 싶어도 지을 수 없다. 통나무집, 황토집이 사라진 이유다. 나무와 흙으로 단열 규정 맞추기 어렵기 때문이다.
농촌체류형 쉼터는 이런 것들로부터 자유롭다. 구조나 소재를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다. 내가 원하는 쉼터를 내 맘대로 건축비를 줄여지을 수 있다. 큰 장점이다.
또한 어떠한 농지든 체류형 쉼터를 지을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 물론 도로 기준은 있다. 최소한 소방도로는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농지 중에는 아예 건축행위를 할 수 없는 농지가 많다. 농사만 짓도록 한 우량한 농지를 농업진흥지역이라 하는데 이곳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고는 손을 댈 수 없다. 하지만 농촌체류형 쉼터는 가능하다. 농업진흥지역에 숙박 가능 공간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은 농지혁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