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하지 않으려고 준비하지만 결국은 손해
은퇴하면 전원주택 짓고 살겠다는 사람들은 많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못한다. ‘어디로 갈지?' '뭘 하고 살지?’부터가 고민이다. 땅 사서 집 짓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아는 사람들 없는 새로운 환경에서 살려면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땅 잘 못 사, 집 잘 못 지어 손해 봤다 말하는 사람들, 이웃과 갈등 때문에 힘들다 하는 사람들 얘기도 자주 듣는다. 점점 움츠러든다.
그런 말을 자주 듣다 보니 시골 사람들에게 당하지 않고 손해 보지 않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바리바리 준비한다.
하지만 살아보면 안다. 그렇게 힘든 건 많지 않다. 땅 사고 집 지어 크게 손해 본 것도, 이웃 사람 잘 못 만나 갈등하며 사는 것도 아니다. 전원생활 하는 사람들 대부분 만족하며 산다. 문제가 되는 것들을 따져 보면, 자신 때문인 경우가 더 많다. 스스로 벽을 쌓고 문제를 만들어 결국 힘들어진다.
전원생활에 만족하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을 관찰해 보면 몇 가지 요소가 있다. 가장 큰 것은 넉넉한 마음이다. 모자라는 것에 만족할 줄 알고, 양보하며 너그러워질 수 있는 마음이 전원생활을 잘할 수 있는 첫 번째로 중요한 요소다.
도시에서는 내 것을 나서서 챙기지 않으면 손해 본다. 양보하면 뒤처지는 것 같아 불안하다. 매사 시시비비를 따져봐야 직성이 풀린다. 딱 맞아떨어져야 하고 똑 부러져야 한다. 정리정돈이 잘 돼야 한다.
그러다 보니 땅을 사고도 그냥 놓아두지 못하고 내 땅이라며 금부터 긋는다. 한 뼘이라도 더 찾아먹으려 기를 쓴다. 옆에 공짜로 쓸 땅 없을까 두리번거리는 사람들도 많다.
손해 보지 않고 악착같이 내 것을 챙기려들면 이웃도 “네가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그럴 수밖에…” 하는 맘이 든다. 좀 놓아두었으면 편안히 원만히 살 수 있을 일이었는데 갈등이 생긴다. 결국에는 시골인심이 어쩌고 저쩌고 하며 갈등을 만든다. 시골 인심은 그대로인데 자신이 욕심부린 것은 생각지 못한다.
내 것 악착같이 챙기고 한 가지라도 손해 보는 것 없이는 좋은 이웃을 만날 수 없다. 내가 보는 손해가 아까우면 상대방도 똑같다. 내 맘 쓰는 것만큼 상대도 쓴다. 상식이다. 상식선에서 다들 재미있게 잘 산다. 상식이 없는 사람들은 전원생활도 힘들게 한다.
집을 지을 때도 그렇다. 돈만큼 욕심내면 되는데 만족하지 못한다. 아는 것이 많기 때문에 뭔가 손해 보는 것 같고, 업자한테 속는 것 같고, 어떻게든 본전은 뽑아야 할 것 같아 “이젠 됐다”란 마음이 안 든다. 이것 좀 더 저것 좀 더 챙기려다 보면 결국 일이 커진다. 모자라는 것은 살며 보완하고 수정하며 천천히 맞춰가며 살겠다는 마음을 가지면 되는데 그러지 못한다. 끝까지 챙겨야 한다. 딱 들어맞아야 하고 똑 떨어져야 한다. 손톱만 한 손해도 인정할 수 없다. 양보하고 물러서면 나만 손해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모든 일들이 다 그렇지 않다. 똑 떨어지고 완벽하고 정해놓은 대로 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살다 보면 그렇게 정리되지 않는 것들도 많다. 모든 일들이 다 나의 이익만으로 정리될 수 없다. 양보하고 손해 볼 때도 있어야 한다. 그게 더 큰 이익으로 돌아온다. 특히 시골서 살다 보면 그런 경우가 많다. 조금 양보하고 손해 보면서 ‘이웃과 불편 없이 사는 재미’ ‘전원생활의 행복’이라는 큰 가치를 얻는다.
텃밭 농사짓는 것도 완벽히 준비해 가는 사람들이 많다. 책이란 책은 모두 밑줄 쳐 읽고 여기저기 교육도 쫓아다닌다. 이론적으로는 전문가 못지않다.
아는 것이 많다 보니 눈에 거슬리는 것들도 많다. 딱 맞아떨어져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 불편하고 불안하다. 스스로 지지고 볶다 넘어진다. 문제는 내 안에 있는데 그걸 잘 모르는 사람들이다.
농사를 지어 팔자 고칠 생각이 아니고 가족들이 먹을 채소를 심어 가꾸고 남으면 친한 이웃에게 선심이라도 쓸 정도의 텃밭 농사라면, 너무 완벽하게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모르고, 준비하지 않은 채, 무장해제를 하고 시작하는 것이 더 좋을 수 있다.
포기하고 내려놓는 마음이 필요하다. 다 잘하고 모두 완벽하다고 하여 전원생활이 재미있지는 않다.
텃밭 가꾸기는 나 홀로 하면 재미가 없다. 친구도 참여시키고 옆집 사는 아저씨나 아주머니한테 잔소리도 듣고 배워가며 해야 재미가 있다. 이웃과 친해지는 방법이기도 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헤매다 보면 옆집 아저씨가 슬그머니 간섭한다. 감자를 심으라고도 하고 배추는 어떻게 심고 상추는 어떤 씨앗을 사야 맛있다며 하나씩 가르쳐 준다. 이웃의 끈질긴 간섭과 학습에 못 따라가고 게으름을 피우다 보면 인심 좋은 이웃은 답답한 마음에 자기 집 쟁기질할 때 내 것도 해준다. 고맙다고 소주 한잔 대접하며 가까이 다가갈 기회를 얻는다. 이웃은 그다음 것도 챙겨준다. 자연스럽게 이웃과 친해진다.
완전무장을 한 채 혼자 알아서 열심히 하다 보면 이웃이 끼어들 틈이 없다. 주변에서만 맴돈다. 내가 많이 준비했으니 옆집 아저씨의 농사법이 오히려 못마땅하다. 책에서 본 내용과 많이 다르기 때문에 가르치려 든다. 이웃들은 절대 그런 말 듣길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완전무장하고 있으면 이웃 사람들과 마음의 담이 생긴다. 혼자 열심히 하다 지치기 쉽다.
덜 준비한 채 시작해도 좋다. 빈틈이 오히려 이웃과 어울릴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전원생활의 큰 재미를 선사할 수도 있다. 모자람이 생활을 윤택하게 한다. 살면서 천천히 만들어 간다는 마음이 전원생활을 잘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다.
귀촌은 사전에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땅을 사고 집을 짓고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당하지 않고 손해 보지 않으려고 고민하고 철저히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재미있게 성공적으로 살기 위한 준비다. 모자람에 만족할 수 있는 내려놓는 마음과 손해를 보더라도 양보하는 마음의 준비가 우선이 아닌가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