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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쓴이 Oct 04. 2023

좋은 건 좋은 것만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고

나쁜 건 전부 다 나쁘지 않다.

안녕하세요. P입니다.


 요즘에는 부쩍 시간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 삐질삐질 땀을 흘리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가을이 성큼 다가왔어요. 아침저녁으로 창을 열어두면 제법 쌀쌀하고, 거리에 나무들이 붉게 또 노랗게 물들었지요. 거리에 은행 냄새가 진동하고요. 윽.

벌써 10월의 초입이라는 것이, 2023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 놀라워요. 또 한편으로는 정직하게 흐르는 시간에 감사하기도 합니다.


 제 마음의 구심점은 여유입니다. 느슨하게 살고자 했어요. 사람을 대할 때도, 연애할 때도, 일을 할 때도, 저 스스로와 마주 볼 때. 특히 외로울 때요, 이 구심점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강강술래 아시죠? 저를 이루는 것들을 강강술래 모양으로 표현해 보자면, 빡빡한 원을 그리고 있는 게 안정적이고 견고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를 이루는 것들이 촘촘하게 붙어있어야 해. 한결같아야 해. 그래야 안정적이야. 그래야 나를 유지할 수 있어.’ 그게 손 하나를 옆으로 펼칠 수 없는 거리감이었는데도요.


 시간이 흐르고, 아직 어리지만 (강조) 나이를 먹어가니 자연스레 간격이 벌어집니다. 한 뼘이었다가, 한쪽 팔 길이었다가. 이제는 양쪽 팔을 힘껏 벌려도 닿지 않는 거리에 나를 이루는 것들이 서 있어요. 꼭 이래야만 해. 하는 것들이 없어지고 그럴 수도 있지 뭐 하는 일들이 많아집니다. 잠시 소원해진 모든 것들, 잠깐 외로워진 스스로를 가만히 내버려 둘 줄 알게 된 게 참 감사해요.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한해 한해 지나며 제 안에서 점점 더 선명해지는 문장은 이겁니다. “좋은 건 좋은 것만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고 나쁜 건 전부 다 나쁘지 않다.” 머리로 이해하는 덴 금방이었는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어렸을 때는 이 사실 자체를 받아들이기 싫었거든요. 내가 좋아하고 내가 싫어하는 것들의 이유를 잃는 것 같아서요. 내가 줏대 없는 사람처럼 느껴져서요. 왜 좋은 건 다 좋지 않고 왜 나쁜 건 다 나쁘지 않은 거야? 왜 이렇게 모순이 많은 거야. 근데 살아보니까 그냥 모순이 삶입니다. 하나로 정의할 수도 없고 여러 갈래로 뻗는 것이 사람입니다. 좋은 것이 좋은 것만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고, 나쁜 것이 나쁜 것만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는 이 모순이 사람을 살게 합니다. 숨통을 트여줍니다. 


“좋은 건 좋은 것만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고 나쁜 건 전부 다 나쁘지 않다.” 

지금 사는 게 좀 괴롭다면 삶에는 다양한 형태의 사랑과 모순과 인생과 감정이 있다는 걸. 

다시 한번 더 의식적으로 떠올려 보세요. 잘 안되면 또 한 번 더, 또 한 번 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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