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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공원 Feb 05. 2024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는 정신

잠시나마 악몽을 꾸었더랬습니다.

저를, 아니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만든 아시안 컵 축구 탓입니다.


새벽 1시부터 치러지는 사우디와의 16강 경기. 다음날 회사를 출근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잠자리에 들었지만 결과가 궁금하긴 했나 봅니다. 한밤중 잠결에도 수시로 핸드폰을 켜고 스코어를 확인했으니까요. 그러다 후반 막판까지 1대 0으로 몰리는 걸 보고 그만 마음을 내려놓아 버렸습니다. 


사우디에 패배하는 장면이 반복해서 등장하는 악몽 때문에 잠까지 설쳐야 했습니다. 힘들게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는 중에도 차마 다시 핸드폰을 켜볼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패배했을 거라 생각했고, 굳이 그걸 내 눈으로 다시 확인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요. 


시간이 좀 흐르고 마침내 핸드폰 화면에 등장한 경기 결과에 정말이지 깜짝 놀랐습니다. 자세한 내용을 읽어보니 후반 추가 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조규성 선수의 극적인 동점 헤더골로 경기를 연장전으로 끌고 갔고, 승부차기 혈투에서는 조현우 선수가 선방쇼를 펼친 끝에 우리 팀은 값진 승리를 거머쥐었다는 것이었죠.


혈투를 벌인 지 이틀 만에 다시 우승후보 중 하나인 호주와의 8강 경기가 펼쳐졌습니다. 이번에도 한국시간으로 한밤중에 벌어지는 경기였지만 다음날이 토요일이라 그나마 형편은 좀 나은 편이었지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일주일 내내 너무도 바쁘게 뛰어다녔던 터라 몸도 마음도 상당히 지쳐있던 상황이었고, 이미 잡혀 있던 다음날 일정 때문에 끝까지 시청할 수 있을지 살짝 걱정이 되었습니다.


졸다가 맞이한 호주와의 축구 경기는 예상대로 치열했습니다. 몇 번의 기회는 있었지만 원체 단단한 호주 수비를 뚫기는 결코 쉽지 않아 보였지요. 게다가 선취점까지 내어주고 고전하는 모습을 지켜보다 정확히 김민재 선수가 파울을 범하는 순간 저는 TV를 껐습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외부에서 들려올지도 모를 함성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그만 깊은 잠에 빠져 들었지요. 그렇습니다. 이번에도 중도 포기를 한 셈입니다. 


결과는 모두가 잘 아실 겁니다. 경기종료 직전 캡틴 손흥민이 얻어낸 페널터킥을 황희찬 선수가 성공시켜, 또다시 연장전이 벌어졌고, 연장 전반 손흥민 선수가 그림 같은 프리킥 골로 2-1 역전승의 대미를 장식했지요. 


마지막 순간까지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승리를 따낸 우리 대한민국 선수들이 정말이지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아울러 팀과 선수들을 마지막까지 믿어주지 못하고 중도포기를 한 저의 행동이 부끄럽고, 정말이지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아시안컵 축구 소식을 전하는 여러 기사들 중 일본의 어느 기자가 한 말이 유난히 뇌리에 남았습니다. 미리 보는 결승전이라는 강력한 우승 후보들 간의 경기에서 일본이 이란에게 종료 직전 역전골을 얻어맞고 패배한 직후의 일입니다. 


그는 일본의 명확한 단점으로 코너에 몰리는 상황에서 팀을 하나로 모으는 ‘캡틴’ ‘리더십’ 부재를 꼽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위기 상황에 하나의 팀으로 뭉치게 만드는 주장의 역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 자신과 팀원들을 달리게 만든 리더, 손흥민 선수는 대한민국의 보물 같은 존재임이 분명합니다.


이번 대회를 통해 손흥민 선수는 왜 그가 팀의 캡틴이자 세계 톱클래스 플레이어인지 그 진면목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들을 국뽕에 취하게 만들고, 하나로 뭉치게 하는 엄청난 저력을 발휘하고 있기도 하지요. 


만만치 않은 경제 현실과 꼴사나운 정치판이 보여주는 피로감에 지친 우리 국민들을 숨 쉬게 해주는 선수들의 극강 투지가 정말 고마운 요즘입니다. 경기의 최종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애초 목표로 삼았던 우승을 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4강에 오른 경쟁팀들 역시 대단한 실력과 투지를 보여주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고된 여정을 극복하며 온 국민을 열광케 하고, 응원과 지지를 아끼지 않도록 이끈 대한민국 팀과 선수들이 보여준 불굴의 투지와 저력은 결과를 떠나 칭찬받아 마땅합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는 정신이 얼마나 위대한지 다시 한번 느끼고 배움을 얻습니다. 또한 리더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마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드네요. 혹시 내가 안 보니까 이긴 것은 아닐까 하는…… ㅎㅎㅎ

결과만 좋으면 다 좋다고, 어쨌거나 우리 팀이 이겼으면 된 거지 그게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혹시 내가 라이브로 경기를 안 봐야 이기고 그래서 우승까지 할 수 있다면 전 기꺼이 재방만 볼 생각도 있습니다. 


아무튼 고맙습니다. 팀과 선수들. 

대한민국 파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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