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한없이 힘들어질 때면 도망갈 구석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위안받기도 했다. 과거형이다. 지금은 약간 회의적이다. 막상 그쪽으로 도망을 갔는데 거긴 더 골치 아픈 일이 기다리고 있을 때도 있었다. 나이가 들수록, 문제를 꿰뚫어 볼 힘이 생길수록 그건 진정한 도피처가 될 수 없다는 자각에 이르곤 했다.
책을 향한 마음은 늘 애정 충만한 상태였던 것 같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책이 버겁기도 했다. 읽어야 할 책이 너무 많아지는데 시간은 없고, 집중력은 예전 같지 않았다. 돋보기를 챙기지 못한 날이면 몇 페이지 읽지도 못하고 피로감이 밀려들어 책을 덮기 일쑤였다. 마냥 빠져들어 읽기엔 현실의 무게가 만만치 않아 도망치고 싶기도 했다. 시원한 카페에 앉아 책을 읽는다는 것 자체에 죄책감을 느낄 때도 있었다.
책의 힘을 누구보다 믿었던 내가 책이 보여주는 희망과 대안에 회의를 품게 될 줄은 몰랐다. 나부터도 현실의 언어들과 너무도 거리가 먼 관념의 언어들을 쓰고 있다는 자각도 한몫했다. 예전만큼 책에 의지하지 못하는 내게 현정 씨가 쓴 글은 단비 같았다. 메마른 내 마음밭에 쏴아아 쏟아지던 문장들.
‘아, 이 책 너무 읽고 싶은데?’ 장바구니에 이미 담겨 있다가 몇 달이 흐른 뒤 삭제된 책. 제목만으로도 호기심이 일었던 책,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반가웠다. 역시 책은 세 번의 인연이 쌓여야 내 책으로 오는가 보다. 이제 두 번. 당장 읽지 않기로 한다. 세 번째의 인연은 어디서 누구에 의해 다가올까?
현정 씨의 일상 풍경이 눈에 선하다. 운동복을 입고 긴 머리를 질끈 묶고 집을 나서겠지? 정해진 일정이 있어 다행스러워하는 마음이 뭔지도 잘 알겠다. 우리 글방도 그렇지 않은가. 두 주에 한 번 나는 월요일부터 설레는데. 설마 나만 그렇진 않겠지? 글방 식구들도 글방에 나오는 날만큼은 과제를 이미 낸 뒤라 조금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책방으로 향할 거라 믿는다.
필라테스 시퀀스를 겨우 따라 한다고 했지만 현정 씨는 운동하는 내내 세심하게 마음과 정신과 육체를 돌아보며 새 마음을 먹고 새 다짐을 했을 게다.
책 한 권이 얼마나 힘이 센지 현정 씨는 달게 읽은 책 한 권 덕분에 아주 중요한 결정을 하기에 이른다. 그뿐인가. 책을 소개한다는 건 자신의 영혼을 열어젖히는 것과도 같다는데, 단골 카페 사장님에게 책을 추천하기까지 한다. 아마도 사장님은 그 책만 읽지는 않을 게다. 분명 책을 건네준 이의 마음과 생각까지 헤아리며 읽을 테니까. 아마도 그 책에 대한 이야기는 커피머신이 데워지는 동안 덩달아 뜨겁게 달아오르지 않을까.
“어머 저도 그 구절 너무 좋았어요.”
“와 그 산. 너무 멋지지 않아요?”
어쩌면 책 한 권으로 이어진 두 사람의 대화가 울려 퍼지는 카페 안 시간의 밀도는 평소와는 달리 촘촘할 터. 그 틈새를 채우는 커피 향은 또 얼마나 근사할까. 두 사람을 감싸는 책의 향기를 상상해 본다. 그 오묘한 향기는 두 사람의 삶에도 배어들어 이유 없이 시큰둥해지는 날이나, 시작해 놓고 후회하든 끝내 하지 못한 걸 애달파하든 이런저런 회한으로 마음이 무너지는 날에, 슬쩍 코끝을 맴돌며 어떤 생의 의지 같은 걸 끌어올리지 않을까. 현정 씨가 ‘끝까지 하는 기쁨을 선택’하기로 결심했던 그날을 떠올리며 말이다.
킁킁, 가을의 향기와 더불어 그 카페의 고유한 커피 향을 맡아보고 싶어 진다.
“현정 씨! 나도 그 카페 데려가 줘요?”
오늘도 나는 외출하기에 앞서 즐거운 의식 하나를 치른다. 뒤죽박죽인 책장 앞을 서성이며 읽고 있는 책 말고 새로 읽을 책 한 권을 고르기. 이미 일거리로 꽉 찬 가방 한 귀퉁이에, 펴 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들고 올 확률이 높은 책 한 권을 기어코 쑤셔 넣고 집을 나선다. 잠시 서먹해졌던 책들과 화해시켜 준 현정 씨의 글이 새삼 고맙다. 그러고보면 글 한 편은 얼마나 힘이 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