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화정 Mar 13. 2020

오십 년이라니, 내 몸을 위한 헌사

내 몸과 사이좋게 지내요

겨울 사이 몸무게가 5kg이나 늘어나 있었다. 대사기능이 떨어지는 나이다 보니 먹고 싶은 걸 참으며 신경을 쓰는데도 살이 쪄서 몹시 우울했다. 키가 작고 뼈가 가는 체형이라 살이 쪄도 별 티가 안 났었는데, 그즈음 자주 듣는 인사가 "살쪘네?"였다. 아니 뭐 꼭 그렇게 확인을 해주지 않아도 되는 것을. 매일 같은 패턴의 옷(배를 가리고 허벅지를 덮는 것)을 입고 다니던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왔을 때, 처음으로 하늘거리는 봄옷을 봐도 시큰둥한 나를 보며 이대로 가다간 큰일 나겠다 싶었다. 마음이 너무 아파 몸까지 따라 아픈 적이 많았다. 몸이 망가지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마음에도 병이 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우울해졌다.

 2019년 일산으로 이사 온 뒤 목돈을 주고 다시 운동을 하는 게 여의치 않아 망설이다가 요가를 다시 시작했다. 왜 돈을 들여 운동을 하냐는 남편의 핀잔도 들었다. (남편은 돈도 안 들이고, 당연히 운동도 안 했다.) 요가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몸에 변화가 왔다. 뭔가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사실 무게는 전혀 줄지 않았지만)

등을 꼿꼿하게 펴고 걸으려고 의식하다 보니 구겨진 마음도 펴지는 것 같았다. 동작을 따라 하고 설명을 듣다 보면 '그래 여기였어, 너 많이 아팠구나. 미안해. 지금 찢어질 듯 아픈 너, 그만큼 수고한 게지? 기억할게. 고마워,‘ 이렇게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요가를 하며 한결같이 좋았던 건 낯선 동작을 따라 하느라 낑낑대다가 땀에 흠뻑 젖은 채 휴식을 취하는 마지막 10분이었다.


 홍대 앞 요가 학원을 다닐 때의 일이다. 제일 좋아하는 요가 선생님이 수업하던 날이었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호흡하는 법을 자세히 가르쳐줘서 따라 하기가 수월했다. 순서와 동작도 천천히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수련을 마치고 불을 끄고 누웠는데, 살며시 다가온 선생님이 두 손으로 양어깨를 지그시 눌러주었다. 옆에 놓아둔 수건도 눈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주었다. 도심의 불빛이 눈에 어른대다 암흑으로 변하는 순간 흑, 소리를 내며 울고 말았다.

 한 번도 나에게 말해주지 못했었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그냥 십 분만 쉬어. 걱정도 하지 말고, 계획 같은 것도 세우지 말고, 이해하려 애쓰지도 말고, 슬퍼하지도 말고 완벽하게 쉬어. 딱 십 분만. 정말 아무것도 하지 말고."

 매번 그 10분은 몸을 돌보지 않았던 날들에 사과하는 시간이었고, 고여 있던 마음의 노폐물들을 빼는 시간이었다. 가끔은 까무룩 잠이 들기도 했다. 몰래 눈물을 삼킨 적도 여러 번이다. 뻣뻣한 내 몸이 안쓰럽다는 생각은 잠깐 들었을 뿐 힘들어서 흘린 눈물은 아니다. 너무 행복하고 좋았다. 스무 명 가까운 수강생들 사이를 다니며 한 명 한 명 뭉친 어깨를 눌러주던 그 마음을 생각하면 지금도 감동이 된다. 눈 위에 수건을 얹어 주었을 때 완벽한 휴식을 맛보았다. 그 사려 깊은 손길 덕분에 내 몸을 존중하는 법을 배웠다. 부르르 몸을 떨며 균형을 잡고, 좀 더 멀리 손과 발을 뻗기 위해 애를 쓰는 동안 수고하는 몸에게 다정히 말을 걸곤 한다.

‘아프지 말자, 몸아. 잘 부탁해! 오늘도 별 탈 없이 움직여 줘서 고마워!’

그렇게 요가를 하며 내 몸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이 글은 무려 50년 동안 애쓴 내 몸을 위한 헌사다. 내 몸과 사이좋게 지내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이전 04화 내 몸의 재발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