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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화정 Mar 13. 2020

내 몸의 재발견

몸에게 말을 건다고요?

 오십대로 접어들며 몸에 대한 감각이 예민해졌다. 이중턱이 신경 쓰이고, 늘어지는 볼 살이 얄미워 자꾸 두 볼을 꼬집으며 괴롭힌다. 똥배는 포기했지만 윗배가 둥그렇게 나오는 건 정말이지 당혹스럽다. 요가원에서 전신이 보이는 벽거울을 쳐다볼 때마다 몰래 체크를 한다. 배에 힘을 꽉 주고 등을 펴고 서 있으면 괜찮은 듯 보이다가도 잠시 방심하면 '곰돌이 푸' 배 모양이 된다. 소화기가 약해 과식하지 않는 편이고, 쉽게 살이 찌는 체질도 아니었다. 사십 대 중반 이후 야금야금 살이 붙기 시작하면서 먹는 양을 평소보다 줄여도 몸무게는 절대로 줄지 않았다. 체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처음엔 단순히 살을 빼고 싶어 운동을 시작했다. 목돈을 내고 몇 달치 이용권을 끊으면서 얼마나 망설였는지 모른다. 기간을 늘릴수록 가격이 낮아지니 무리를 해서 9개월 치 이용료를 3개월 할부로 끊었다. 그렇게 2017년 처음으로 마음먹고 시작한 운동은 필라테스였다. 주 3회 열심히 8개월을 다녔다. 마지막 달은 공짜인 티를 내려고 그랬는지 빼먹기 일쑤였다. 자세가 좋아지고 컨디션이 나아졌다는 걸 알면서도 다시 등록하지 못하고 시간은 흘러갔다. 몸이 다시 삐그덕거리는 걸 감지한 건 몇 달이 지난 뒤였다. 풀어진 몸만큼이나 마음까지 허약해지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 노릇하려고 과욕을 부리다 지쳐갈 무렵이었다. 나를 방치하고, 혹사시키느라 위험 신호가 켜지는 것도 몰랐다. 부서지기 쉬운 연약한 마음을 감추며 살았다. 더 잘해야 한다고, 더 노력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혹독하게 채찍질하며 살아왔다. 몸도 마음도 힘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의 서점’에 들러 추천받은 책이 <나의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이었다. 산티아고를 걸어보지는 못했지만 그 책 덕분에 마음 순례길을 떠날 수 있었다.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을 멀리하며 내 몸과 마음을 돌보는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존중하는 마음은 쉽게 생기지 않는다. 중요하다고 여기고, 귀중하게 대하는 자세는 진정한 가치를 알아챘을 때 생긴다. 잃은 뒤에 비로소 찾아오기도 한다. 내 몸을 존중하는 법을 구체적으로 배워본 적이 없다. 몸의 변화가 뚜렷해지며 처음으로 내 몸을 의식하던 사춘기 시절, 달리기를 할 때마다 부끄럽고 싫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처녀 시절은 처녀답게, 여자니까 조신하게, 예뻐 보이고 싶으면 날씬하게, 엄마가 되었으니 엄마답게, 늘 조심시키고 억압하고 관리해야 하는 대상으로만 바라보던 몸이었다. 내 존재의 근간이 된다는 것, 나이가 들수록 내 마음과 정신을 좌우하며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게 '몸'이라는 자각은 신선하고도 강렬했다. 집중하여 몸을 '쓰는' 요가 덕분이었다.

 2018년 5월부터 요가를 배우며 이제야 나한테 맞는 운동을 찾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라테스를 할 때는 늘 나와 싸워야 했다. 15회씩 3세트를 하기에 나의 지구력은 힘에 부쳤다. 두 세트를 겨우 마쳤는데 한 번 더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세상 불행한 마음이 들곤 했다. 요가는 필라테스와는 확연히 달랐다. 처음에는 몸의 소리를 들어보라든지, 몸에게 말을 걸어보라는 강사의 말이 생소했다. 다양한 호흡법을 따라 하는 것도 어려웠다. 요가 용어는 아직도 외계어처럼 들린다. 그래도 은은한 불빛과 조용한 음악이 흐르는 장소에서 내 몸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위안이 되었다. 조금씩 익숙해졌고, 나를 살살 달래가면서 할 만했다. 동작의 난이도에 맞춰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하면 되었다. 따라 하지 못하는 동작이 많아도 마음이 편했다. 책을 읽는 방식도 덩달아 변했다. 늘 씨름하듯 책을 읽고, 완독 주의자에, 어떻게든 정리와 기록을 남겨야 하는 강박에 시달렸는데 조금씩 힘을 뺐다. 책을 소개해야 한다는 의무감과 리뷰를 써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놓여났다. 시선을 들어 눈앞의 풍경과 실제의 삶을 보려고 했고, 그 삶의 근본이 되는 몸을 매 순간 의식하며 아껴주려고 애쓴다. 무엇을 위해 써야 하는 몸이 아니라 나를 담고 있는 소중한 몸 그 자체로 존중받아 마땅하다. 몸의 재발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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