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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화정 Mar 13. 2020

몸치의 비애

내 세계는 좁을지언정 꽉 차게 살겠습니다.


 요가를 배우며 보람만 있었던 건 아니다. 몸치의 비애를 느끼며 한계를 의식하기도 했다. 일산으로 이사를 하고 난 후 요가 학원을 옮겼다. 어느 날 벌어진 일 때문에 몹시 당혹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너무 생소해서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는 프로그램이었다.

'난 요가를 배우러 왔는데.... 이건 골반 운동이라 해도 춤이잖아.'

처음 하는 동작, 남들은 두어 번 시범을 보이면 잘 따라 하는데 난 계속 발이 꼬였다. 너무 어려워 머리가 하얘졌다. 자꾸 반대 발부터 나갔다. 세 번째 줄에 앉았는데 첫 줄 가운데가 비었다고 옮기라고 할 때부터 한숨이 나왔었다. 정 중앙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멈춰 버렸다. 군무 속에서 난 어쩔 줄을 모르다 결국 탈의실로 도망쳤다. 기다렸다.

'와서 살짝 가르쳐 주면 좋겠는데. 아, 안 되지. 구령 맞춰 진행해야 되니까 선생님은 한순간도 멈출 수가 없지.'

근데 눈물이 나려 했다. 두어 달 다니는 동안 잘 안 되는 동작이 있어 멈췄을 때 도움을 받지 못한 채 민망한 자세로 있던 적이 몇 번 있었다. ‘이 선생님은 이런 스타일이구나.’ 그렇게 생각하려 애썼다. ‘그래, 때 되면 나도 할 수 있겠지’하며 스스로를 달랬다. 8명 정도가 모여 운동하는 공간에서 몸치인 나는 너무 티가 났다. 이사 오기 전 요가를 배우면서 정말 행복했었다. 몸보다 마음이 더 건강해졌다. 내 몸을 존중하는 법을 배웠다. 어떤 모습이든 사람의 몸이 얼마나 신비롭고 아름다운지 알게 된 시간이기도 하다. 잘 따라 하지 못하면 자세를 잡아주고, 당겨주고, 천천히 설명하는 선생님들에게서 배워서인지 한 번도 좌절감 같은 건 느낀 적이 없다. 이사 온 후 요가를 다시 시작해서 다행이라 여겼다. 작은 규모라 좀 부담스럽긴 했다. 못하면 너무 티가 나서 민망하기도 했다.

 시작한 지 며칠 안 되었을 때의 일이다. 모로 누워 몸을 일자를 만든 뒤 동작을 따라 하는 거였는데, 자세가 바르지 않았는지 선생님이 와서 팔부터 발끝까지 이렇게 저렇게 설명을 하며 바로 잡아줬다. 안 되면 다음 동작을 하지 말고 그대로 유지해도 된다고 했다. 배우고 싶었던 나는 끙끙대며 다리를 들어 올리는 동작을 따라 했다. 선생님이 다시 와서 내 몸을 만지며 말했다.

"회원님, 안 되면 그냥 기다리시면 돼요. 따라 하면서 몸이 흐트러지면 제가 이렇게 다시 처음부터 잡아줘야 되잖아요.”

민망했다. 의아했고 마음이 상했다. ‘아니 그게 귀찮으신 거예요? 저 배우러 왔잖아요.' 속으로만 항의할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다음날은 가지 않았다. 등록한 기간만큼만 다니자고 스스로를 달래며 다니던 차에 또 민망한 사건이 벌어진 거였다. 매트커버를 그대로 두고 나와서 문자를 보냈다.

'선생님, 매트커버를 그냥 놔두고 와서 죄송합니다. 제가 심한 몸치라 체육시간에 늘 마음의 어려움이 있었어요. 그때 생각이 나서요. 전 이 프로그램이 있는 날은 빠져야 될 것 같습니다.'

답이 왔다. 잘 올려놨다고, 2주 간격으로 하는 수업이니 참고하라고. 그리고 분홍색 하트 이모티콘이 찍혀 있었다. 하트 이모티콘이라니. 나라면 우선 못해도 괜찮다고, 천천히 배우면 된다고, 그렇게 얘기해 줬을 것 같다. 근데 가르쳐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고민이 되었다. 나로선 거금을 내고 시작한 운동인데 겨우 절반을 채운 시점이었다. 안 가고 싶었다. 창피했다. 운동하는 내내 마음이 불편할 것 같았다. 그러면 몸은 더 말을 안 들을 테지. 몸치의 비애다. 잘 다독이며 사려 깊게 이끌어주는 선생님을 만나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내가 요가를 좋아한 건 한 선생님 덕분이다. 운동이 끝난 후 회원들 사이를 돌며 어깨 긴장을 풀어 주시던 분, 가장 열심히 시범을 보여주시는 분이었다. ‘플로우 요가’를 하실 때 동작이 너무 아름답고 우아해 늘 감탄하기도 했다. 헉헉거리며 따라 하면서도 조금씩 동작이 나아지는 기쁨을 느꼈었다. 나도 아이들을 가르쳐 본 적이 있는 사람이다. 너무 어려워서 좌절스러운 순간, 포기하려는 찰나, 민망해 어쩔 줄 모르는 상황을 알아채는 사람이 선생이다. 먼저 살아본 영역에서 먼저 경험한 것들을 가르쳐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처음엔 안 되는 게 당연하다고 안심시켜 주고, 어떻게 해야 잘할 수 있는지 안내하고 이끄는 게 선생의 역할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복잡해진 마음을 알아보는 사람, 망설이는 마음속으로 들어가 다시 해보자며 손잡고 나오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던 날이었다. 무언가를 배울 때 자존심이 상한다고 그만두면 내 손해다. 그만두면 배울 수가 없다. 그 일이 있던 날, 씩씩거리며 글을 썼다. 글에다 화풀이를 했다. 결국 기한을 제대로 채우지 못하고 다른 요가 학원에 등록했다. 규모가 큰 곳이라 여러 사람들 틈에 숨어 다시 요가를 배우기 시작했다.


 해가 바뀌고 쉰이 되었다. 드디어 50대의 몸을 살게 되었다. 2020년 1월, 마음을 다잡고 꼬박꼬박 운동하려고 노력했다. 어느 날의 일이다. 그날은 좀 힘에 부쳤다. ‘빈야사'는 물 흐르듯이 동작이 연결되는 요가인데, 호흡을 잘 따라 하지 않으면 몸의 균형이 쉬이 흐트러진다. 잘 따라 하다가 20여 분을 남겨두고 그냥 누워 쉬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이아림이 쓴 <요가 매트만큼의 세계>라는 책에는 인상 깊은 항목이 있다. 저자는 요가와 삶이 닮았다며 5가지 요가의 특징을 이렇게 정리한다.

‘1. 해도 해도 안 되는 것이 있다. 2. 옆 사람이 나보다 잘하는 걸 보면 질투가 난다. 3. 노력해도 모자란 게 느껴지면 서글프다. 4. 아주 조금씩 나아가는 재미가 있다. 5. 간신히 균형을 잡다 보면 어느새 나만의 리듬이 생긴다.'

끝까지 동작을 이어가며 나를 격려했다. 2년 전에 비하면 나는 확실히 몸과 마음이 유연해졌다. 에너지를 발산해야 할 때와 거두어들여야 할 때를 가늠할 수 있고, 남들의 속도에 허겁지겁 따라가지 않고 가만히 멈추어 서서 지탱하는 법을 익히기도 했다. 이 책의 저자는 요가 매트만큼의 세계에서도 자신만의 세계를 넓고 깊게 누리며 산다. 방만한 세계에 나를 밀어 넣고 전전긍긍하던 나는 이 책의 저자가 부러웠다. 요가를 하며 조금씩 내 세계의 반경을 줄이는 연습을 하고 있다.

 새해 들어 단톡 방 두 군데에서 탈퇴했다. 한 번 맺어진 관계의 망 사이에서 튼실하게 끈들을 엮어나가는 느낌이 들지 않거나, 내 존재가 허공에서 부유하는 것 같을 때 나는 허전하고 쓸쓸하다. 인맥의 크기가 내 삶을 더 좋은 방향으로 끌고 가리라는 헛된 기대를 접었다. 실제 삶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부터 잘 챙기겠다고 결심했다. 그 작은 세계에서는 누구 하나 소외감 느끼지 않고, 골고루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귀담아들으며 오래 간직할 수 있을 테니까. 내가 품을 수 있는 세계를 가늠하는 건 중요하다.

 요가를 하는 동안 내 몸의 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한다. 신음에 가까울 때가 많지만 내 몸이 고마워하는 게 느껴진다. 돌봐 줘서 고맙다는 소리로 듣는다. 오른쪽 다리로 지탱하고 서서 왼발을 감싸 쥔 뒤 최대한 위를 향해 끌어올리는 동작을 좋아한다. 오른손은 앞쪽으로 쭉 뻗어야 하는데, 저 손 끝에 방황하며 도망가는 내 마음이 있다고 상상해보곤 한다. 내 마음을 향해 간절하게 손을 뻗는다. ‘이리 오렴 내 마음아. 괜찮아, 나아질 거야’ 하며.

아직은 어설픈 모양새여도 언젠가는 우아하고 편안한 모습으로 혼자 요가를 즐기는 내 모습을 그려본다. 등을 곧게 펴고, 천천히 고개를 돌리고, 잠시 머물며 숨을 고르는 요가의 자세들이  삶을 대하는 자세와 태도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요가 매트 위에서 몸을 움직일 때마다 다짐하게 된다. 서툴지만 최선을 다하고, 좁을지언정 그 세계에서만큼은 꽉 찬 삶을 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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