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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마 Nov 27. 2023

[한국문학] 배달노동자가 된 K-능력자들

심너울, 《내 손 안의 영웅, 핸디히어로》전삼혜, 《위치스 딜리버리》



unsplash.com

문학으로 읽는 2020년대 청년 풍속도


https://imnews.imbc.com/replay/2023/nwdesk/article/6445133_36199.htm

시작은 한 뉴스였다. 고용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임시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배달노동을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다는 청년의 인터뷰. 보도 내용에 따르면 일자리가 없거나 생활비가 필요해서 어쩔 수 없이 특수형태 근로자가 된 사람들 - 소위 '비자발적 특고'라 불리는 사람들은 지난해 19만명이었다고 한다. 인생의 장기 계획을 세우고, 꿈을 향해 달려가는 말은 이제 배부른 소리가 된 지 오래다. 취업준비생이 되기 위해 준비를 하는 '취준준생' 현상이 열리는 것이다.


책은 사회 현상이나 트렌드에 비해 느리다. 반짝이는 무언가를 포착한 시점으로부터 원고 작성, 교정, 디자인, 인쇄 등의 작업을 거치다 보면 이미 핫했던 이슈도 반쯤 식어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문학은 다르고 생각한다. 동시대를 감각하는 작가들이 '있을법한 이야기.', 즉 픽션을 쓰기 때문에 '상상력'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이런 세상이 펼쳐지지 않을까? 그땐 사람들이 이렇게 행동하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그래서 어떤 이야기들은 세상에 앞서 현상을 예지하기도 한다. 물론 의도한 건 아닐 것이다.


오늘 살펴볼 작품들은 각각 2021년과 2020년의 상상이다. '한국식 히어로'라고 말하기는 면구스럽고 그렇다고 평범한 것은 아닌 주인공들이 그리는 '능력자물'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내 손 안의 영웅, 핸디히어로>- 리디북스 // <위치스 딜리버리> - 알라딘

같이 읽은 콘텐츠


《내 손 안의 영웅, 핸디히어로》는 SF를 주로 쓰는 심너울 작가의 단편이다. 리디북스 오리지널 콘텐츠로 제작된 이 단편은, 공무원 시험을 치던 중 능력이 발현된 황기연이 빌런 퇴치 앱 '핸디히어로'에서 활동하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담았다. 생각보다 핍진한 배달노동의 현실을 느낄 수 있는 책.

《위치스 딜리버리》는 마찬가지로 SF를 주로 쓰는 전삼혜 작가의 단편이다. 좋아하는 걸그룹 씨엘즈의 콘서트 표값을 벌기 위해 고등학생 보라는 알바를 시작한다. 여성만 가능하다는 '위치스 딜리버리'에 찾아가 계약서를 쓴 그의 일은 청소기를 타고 하늘로 배달을 하는 마녀(?)였다. 어느날 자신의 덕메이트이자 단짝 주은이 오컬트 샵 '밴시 포켓'에서 위험한 물건을 주문하고, 그걸 배달하던 중에 사고가 발생하는데...


네이버 영화

능력이 발현된 순간들_차별성과 노력


《내 손 안의 영웅, 핸디히어로》의 주인공 황기연은 공시생이다. 공무원 시험장에서 시험지 위에 한 손을 올렸는데 손끝에 찌리리 전기가 통하며, 손이 닿은 좋이가 천천히 불타기 시작한다. 감독관은 그에게 다가와 고개를 숙이며 혼잣말을 속삭인다.

"능력 발현하셨네."

기연은 자신의 경쟁력에 대해 의심하며 살아왔다. 운동을 잘하는 것도 아니고,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친화력이 좋은 것도 아니고, 심지어는 통닭을 바삭하게 튀길 수 있을 것 같지 않다고 스스로를 평한다. 어린 시절부터 경쟁과 비교 속에서 자라나 '공무원 시험'이라는 또 하나의 경쟁 속에서 그는 자신의 존재와 쓸모에 대해 의심한다. 정량적으로 평가되고 순위가 매겨지는 사회에서 그는 무엇도 증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내겐, 누가 뭐래도 분명한 차별성이 있었다.


'차별성'이라는 단어는 2020년대를 살아가는 20대 기연에게 '핵심 미션'이다. 남과 차별화된다는 의미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영역에서 압도적인 실력 차이를 보이는 것, 다른 하나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며 자신의 역량을 펼치는 것. 기연은 자신에게서 특별한 역량이나 적성을 발견하지 못했기에, 공무원 시험이라는 다수가 가는 길을 택했고 그 안에서도 '차별화'할 만큼의 실력을 보이지 못했다. 그래서 '합격을 하기 전까지는' 필연적으로 실패자, 패배자의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다. 미션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사람이 태어나고 자라고 살아가는 방식은 어느 정도는 비슷할 수도 있겠지만 같을 수는 없다. 기연의 차별화는 나와 너를 구별하는 사전적 정의보다는 무리 안에서 '돋보이는 무언가를 증명'한다는 것에 방점이 찍혀있다. 마치 강박처럼 높은 점수로 시험을 통과하거나, 유튜브의 구독자 수, 월수입 같은 '남들과 비교했을 때 구별되는 무언가'를 강요받는다. 누구도 그들에게 직접적으로 해야 한다고 명을 내린 건 아니다. 살면서 자연스럽게 체득한 세대감각에 가까울 게다. 그래서 '차별성'이 신화인 것을 알면서도 놓을 수가 없다.

《위치스 딜리버리》의 고등학생 보라는 기연보다는 5~6년 어린 세대다. 그의 단짝 주은이 '밤 11시까지 학원 뺑뺑이를 돌고', 걸그룹 씨엘즈 콘서트에 가고 싶다고 하자 '학원 하나를 더 다니라고 끊어주는 부모'에게 자라는 묘사를 보면 경쟁은 더해졌으면 더해졌지 줄지는 않아 보인다. 그나마 보라는 공부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초점을 잡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전동 킥보드를 타다가 손목이 부러져 원동기 면허증을 따고, 콘서트 티켓값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찾는다.

'위치스 딜리버리'라는 수상쩍은 여성전용 아르바이트에서 그저 배달 건 당 단가가 높다는 이유로 쉽게 근로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그렇게 마녀가 되어버린다(?). VR로 청소기로 하늘을 나는 법을 연습하고, 교육과 실습시간을 거쳐 예비 마녀라는 수습이 된다. 보라가 능력을 발현하는 순간은 그저 연습의 결과로 나타나는데 이 또한 주목해볼만한 포인트다.

2000년대 초반 박민규의 《지구 영웅전설》 시대와는 조금 달라진 포인트가 있다면, '초능력의 대중화'가 아닐까 싶었다. 《지구 영웅전설》의 히어로들은 태생적으로 완성되어 태어난 특수 인종에 가깝다. 백날 바나나맨과 로빈이 히어로들과 같이 다녀도 속된 말로 따까리밖에 될 수 없는 건 그들과의 차이를 인정하고 계급화하기 때문이다.

왜, 우리 모두는 어벤저스의 세례를 받고 자란 세대 아닌가?

허나 두 작품의 인물들은 다르다. 기연이 위 대사처럼 말하는 건 지금 청년 세대가 어린 시절부터 '마블 시리즈', '해리 포터', '마녀 배달부 키키' 같은 탈인간적인 능력이나 마법 서사를 익히며 자라왔기 때문이다. 때문에 초능력이라는 개념은 청년 세대에게는 문화의 한 단편이다. '기회가 온다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초능력은 상업 영화들이 다수의 관을 차지하며 대량 유포한 공동의 상상력인 게다.

애석하게도 소수만 가질 수 있던 히어로의 지위는 대중화되면서 많이 낮아진 듯하다. 대신 사회적인 책임을 질 필요도 없고,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지도 않는다. 그저 사회의 일원으로서 소소하게 특별한 능력을 발현할 뿐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능력'은 애석하게도 '자기개발'의 영역이다. 노력해도, 초능력이 생겨도 도구일뿐 권력을 부여받지는 못한다. 다시 말해 '차별성'의 요소로 쓰기도 어렵다는 말이다.


네이버 영화

K-능력자 드라마 절망편_먹고사니즘


만약 하늘을 난다면 훨훨 새들과 벗삼아 어디로든 가고 싶어~
꿈 따먹는 소리하고 앉았다. 《위치스 딜리버리》 보라의 첫 임무는 '애플망고치즈빙수' 배달이었다. 아르바이트 계약이 먼저였고, 비행의 환상이나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건 나중 문제였다. '위치스 딜리버리'는 사장인 소윤정의 나와바리(?) 성남구에서 신분을 숨기고 사는 마녀들에게 물건을 가져다 주는 업체였기에, 보라는 이곳저곳에서 '근무하는' 마녀들을 만난다. 한 번은 일에 쩌들어 있는 회사원 마녀 선배에게 보라가 일이 재밌냐고 묻는다. 그러자 선배는 이렇게 답한다.

"뭐어, 돈 주니까 하는 거지. 마녀도 돈이 있어야 먹고 삽니다."
(...)
"왜. 뭐. 마녀는 월세랑 가스비랑 수도비랑 식비 안 드냐?"
"마녀가 되어서 좋은 게 뭐예요 대체?"
(...)
"하늘 날잖아."


'마녀'라는 차별성을 가진 이들도 '먹고사니즘' 앞에는 그 특색이 무색해졌다. 그들이 적성을 살려서 한국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배달노동'과 '오컬트 샵' 정도였으니 말이다. 꿈과 희망을 주는 판타지는 2020년대 한국에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생존만이 남이있을 뿐이다. 낭만은 나중이다. 마녀 배달부 키키를 요즘 버전으로 만든다면, 자유로운 활공씬은 기대하기 어려울 게다. 대신 앱으로 콜을 받고 빙수를 문 앞에 놓고 사라지는 절망편이 되지 않을까.

《내 손 안의 영웅, 핸디히어로》의 전기 방출 초인 기연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일단 공시부터 때려치운 그는 우선 동사무소에 가서 초물리능력보유자 안전교육을 받고, 초인 등록을 한다. B0라는 등급을 판정받고 그는 나라가 인증한 초인(?)이 되었다. 그러나 전업 초인이 되려면 마찬가지로 능력을 무기로 하는 직업을 구해야만 한다. 시민들이 빌런을 발견하면 신고하고, 그 신고를 받고 초인들이 퇴치하러 가는 업체, '핸디히어로'에 기연은 자신을 등록한다.

이 업체는 빌런의 등급에 따라 건당 20만원이 될 수도 있고, 천만원이 될 수도 있는 퇴치비를 지급하는데 어째 '배달의 민족 라이더' 처럼 운영된다. '대기 중인 초인들이 콜을 받고 해당 장소로 가서 퇴치를 한다.'는 간단한 구조지만,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하거나 평가가 안 좋으면 사례비가 줄거나 콜이 잡히지 않는다. 기연은 이동 능력이 전무했기 때문에 지도 직선 거리로 측정되는 앱의 특성상 매번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돈을 벌기 위해 '핸디히어로'에서 판매하는 휴대용 웜홀 제조기를 구매해야 한다니 투자해야 하는 유지비가 더 드는 모양새다.

이처럼 초인 배달노동자가 된 기연은 몇 가지 벽에 부딪힌다. 초인마다의 능력이 차등적이기에 전업으로는 등급이 높은 이들에 비해 불리하고, 프리랜서이기에 안정감도 얻을 수 없다. 하급 초인들은 그저 소모품으로서 일용직 노동자로 소비될 뿐이다. 《위치스 딜리버리》와 마찬가지로 '핸디히어로'의 능력자들도 어쩔 수 없이 생존전선에 내몰리는 구조다. 기연의 마지막 한 마디가 정곡을 찌른다.

"따지고 보면 진짜 초능력은 자본 아닌가 싶더라고요. 강태영 대표 자산이 조 단위라는데 진짜 우리 힘을 부러워하겠어요? 그 능력으로 이렇게 이용되기나 하는데? A+급 능력을 공짜로 준다고 해도 거절할걸요?"

어떤 능력자라도 돈과 먹고사니즘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회 구조. 애석하지만 두 작품의 K-능력자들을 배달노동자로 설정된 건 현실의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봐야겠다.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말마따나, 동시대 문학의 상상력도 '먹고사니즘'의 틀에 갇히면 마이크로해질 수밖에 없다. 어릴 때 부터 차별화 하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경쟁에서 이기려고 아등바등 살면서도 결국 먹고사는 일로, 특별한 능력을 갖고 무한한 가능성을 갖더라도 결국 먹고사는 일로. 현재에만 몰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는 기대할 수 없는 미래에 기인한다. 장기 플랜도, 30년 계획도 그릴 수 없는 구조라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말처럼 청년들은 지금 사회를 그들만의 방식으로 돌파해갈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은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원대한 상상력'이 되지 않을까 싶다.

P.S.
물론 이 글은 그저 문학에서 그려지는 청년의 한 단편을 포착했을 뿐이다.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있다는 점을 리마인드 하면서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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