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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마 Nov 23. 2023

[세계문학]넌 무엇을 기대했나? 내 인생에 던지는 질문

존 윌리엄스, 《스토너》

unsplash.com

불발탄 같은 나, 제대로 살고 있나?

묘한 꿈을 하나 꿨다. 꿈 속에서 나는 사격장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길을 안내해주는 사람이었다. 동창, 친척, 처음 보는 사람 가리지 않고 그들을 자리로 데려다 놓고 한숨을 돌리고 있을 때, 사격장 담당자는 내게 탄이 남았으니 몇 발 쏘고 가라고 제안했다. 나는 소총을 잡았고 한 쪽 무릎을 바닥에 댄 채로 과녁에 조준을 했다. 조종간을 돌리고 방아쇠를 당기는데 왜인지 총알이 나가지 않았다.

딸깍- 딸깍- 딸깍- 아무리 당겨도 발사되지 않자 담당자는 내 총을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이거 너무 많이 써서 기름 때가 낀 거 같네." 그 말을 들은 나는 총을 내려놨다가 못내 아쉬워서 나는 자세를 잡고 방아쇠를 당겼고, 고무 호스에서 물이 나오듯 기름이 포물선을 그리며 총구에서 쏟아져 나왔다. '에라이. 뭔데 이거.'

꿈은 여기서 끝난다.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내가 한 일은 휴대폰을 들어 검색창에 '불발탄 꿈 해석'이었다.
[총을 발사했지만 불발탄이어서 당황스러운 꿈]에 대한 해석은 이러했다.
: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다. 중요한 순간에 외면당한다.

다시 한 번, '에라이. 뭔데 이거.'
꿈은 내 무의식의 반영이라는데 나는 무엇이 두려운 걸까. 무엇이 나를 불발의 상태로 만드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다시 잠들 수가 없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요즘들어 "내가 잘 살고 있는 게 맞나?"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많이 던졌다. 미래가 불투명해서, 돈을 벌지 않아서, 시간을 버리는 거 같아서. 고민의 이유는 다양했다.

제대로 살고 있는 게 맞나.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가.

질문에 대한 답을 찾다가 문득 <스토너>라는 책이 떠올랐다.
작년에 우울증으로 회사를 관둘지 고민할 때 들었던 소설 수업에는 고등학생 수강생 둘이 있었다. 두 친구 중 하나가 자신의 인생책으로 <스토너>를 꼽았다.
어떤 연상 작용으로 그 기억에 닿았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 친구의 얼굴은 어렴풋이 기억나지만, 왜 추천했는지, 그 책의 무엇이 그를 쓰는 사람으로 이끌었는지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유야 어찌되었든 상관 없었다.
그저 지금이 읽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고, 바로 책을 잡았다.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나옵니다! 혹 책을 읽으실 분들은 뒤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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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는 뒤늦게 빛을 본 소설이다. 1965년 미국에서 초판이 나왔을 때 이렇다할 반응이 없었기에 1년 만에 절판된 책이었지만, 40여년이 지나 유럽에서 재출간 되었고, 영국에서 올해의 책에 선정되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다. 
이 책은 평양냉면 같이 슴슴하지만, 잔잔한 깊음이 담겨있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대학의 종신교수로 생을 마치는 윌리엄 스토너의 인생을 따라가며 삶이란 무엇인가, 산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unsplash.com

농부의 아들 대학에 가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윌리엄 스토너는 부모님의 권유로 1910년 미주리 대학의 농과대학에 진학한다. 새로운 농사법을 배워오라는 것이 이유였다. 그는 친척 집의 농장에서 숙식을 조건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교를 다닌다. 반드시 성공해서 집안을 일으킨다거나,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저 열심히 환상도 낭만도 없이 학교를 다닌다. 그러던 중 그의 인생의 궤적을 바꾸는 사건이 하나 발생한다. 바로 2학년 때 교양으로 듣게 된 '영문학 개론' 수업이었다.

"이 소네트의 의미가 뭐지?"
(...)
"셰익스피어가 300년의 세월을 건너 뛰어 자네에게 말을 걸고 있네, 스토너군. 그의 목소리가 들리나?
윌리엄 스토너는 자신이 한참 동안 숨을 멈추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는 부드럽게 숨을 내쉬면서 허파에서 숨이 빠져나갈 때마다 못이 움직이는 것을 세심하게 인식했다. (...) 스토너는 책상을 꽉 붙들고 있던 손가락에서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손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그 갈색 피부에 감탄하고, 뭉툭한 손끝에 꼭 맞게 손톱을 만들어준 그 복잡한 메커니즘에 감탄했다. 작고 작은 정맥과 동맥 속에서 섬세하게 박동하며 손끝에서 온몸으로 불안하게 흐르는 피가 느껴지는 듯했다.
《스토너》 中


슬론 교수의 질문, 그리고 이어진 소네트 낭송은 스토너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그는 세상이 달라 보이는 경험, 문학이 영혼을 뒤흔드는 경험, 말하자면 '살아있다는 느낌'을 대학생활 처음으로 느낀다. 그날 이후 그는 점차 원래 목적이었던 농과로부터 멀어져간다. 부모님 모르게 농과대학의 커리큘럼 대신 영문과의 수업을 탐닉하다가 결국에는 과를 옮겨 문학 전공으로 학사 졸업을 한다.

슬론은 졸업 전 스토너를 불러 묻는다.

"그럼 자네는 여기서 학위를 받은 뒤 집으로 돌아갈 생각인가?"
"아닙니다, 선생님." 스토너가 말했다. 그 단호한 목소리에 스토너 자신도 깜짝 놀랐다. 자신이 갑자기 그런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
"모르겠나, 스토너 군?" 슬론이 물었다. "아직도 자신을 모르겠어? 자네는 교육자가 될 사람일세."
(...)
"그런 걸 어떻게 아시죠? 어떻게 확신하십니까?"
"이건 사랑일세, 스토너 군." 슬론이 유쾌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네는 사랑에 빠졌어. 아주 간단한 이유지."
《스토너》 中


교수가 대학원생을 낚아채는(?) 익숙한 이야기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스토너의 입장에선 결단이 필요한 사안이었다. 수확량을 줄여가며 대학 뒷바라지를 한 부모님의 기대를 배반하는 일이었고, 인문학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좋아는 할 수 있지만', '먹고 사는 일'과는 거리가 있는 학문이었으니 말이다.
그는 문학을 선택하긴 했지만 자신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생각도 들고 자신이 버린 , 아마도 농부의 가정에서 자라온 그들의 세계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을 느끼기도 한다. 새로운 도전을 위한 기대와 설렘보다는 상실감이 그를 지배했다.

부모님은 슬퍼했지만, 집에 돌아가지 않겠다는 아들의 뜻을 지지해준다. 스토너 인생의 다음 페이지가 시작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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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결혼 생활을 견디며


순조롭게(?) 석사를 마친 스토너는 미주리 대학의 강사로 일을 시작한다. 당시 대학은 독일과의 전쟁으로 인해 정돈되지 않은 상태였다. 학생들이나 젊은 교수들은 전쟁에 자원했고, 남아있는 이들의 교정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는 강사 친구들 핀치와 매스터스를 새로이 사귀지만, 그 우정도 전쟁이 갈라선다. 두 사람은 입대를, 스토너는 대학에 남기를 선택하며 다른 길을 걷는다. 다행히 핀치는 전쟁이 끝나고 학교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매스터스는 프랑스의 한 전투에서 사망하고 만다. 전쟁 상황이라는 특수 상황이 스토너에게 나쁘게만 작용한 건 아니다. 원래 졸업생을 채용하지 않는다는 학교의 방침이 전시 상황으로 인한 인력부족으로 예외적으로 적용되어 교수직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돌아온 핀치는 바쁘게 사교 행사를 주도했고, 학장의 집에서 리셉션이 열려 스토너도 참석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인생의 반려자 '이디스'를 만나게 된다. 그녀에게 한 눈에 반한 그는 핀치에게 소개를 부탁했고, 파티 내내 그녀에게 이것저것을 서툴게 묻는다. 세인트루이스에 살지만 이모댁에 잠깐 머무는 이디스와 헤어질 때 그는 애프터 약속을 얻어내고는, 단장을 하고 그 집을 찾아간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집으로 돌아가려던 때 불쑥 이디스는 자신의 과거사를 말하기 시작한다. 한참을 독백하듯 말하는 그녀를 보며 스토너는 자신과 그녀가 타인이라는 생각을 한다. 또한 자신이 사랑에 빠졌음을 확신한다. 이후 세인트루이스로 돌아가기 전까지 2주간 거의 매일 이디스를 보러 그녀의 이모집에 들락거리던 그는 용기를 내어 이렇게 말한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걸 틀림없이 알고 계셨을 텐데요." 그가 말했다. "숨기려해도 숨길 수가 없었으니까요."
그녀는 살짝 활기를 띠며 말했다. "몰랐어요. 저는 그런 건 몰라요."
"그럼 다시 말씀드리죠." 그가 부드럽게 말했다. "이제 당신도 익숙해지셔야 합니다.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이 없으면 살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요."
그녀는 혼란에 빠진 사람처럼 고개를 저었다. "저는 유럽 여행을..." 그녀가 꺼질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에마 이모랑..."
《스토너》 中


결혼은 급가속을 밟은 차처럼 빠르게 진행되었다. 이디스가 가능한 빠르게 결혼해서 집을 나오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행복감이 깨어지는 건 너무 순식간이었다. 첫날밤을 망쳤고, 이디스는 관계를 거부했다. 한 달 도 안 돼서 스토너는 이 결혼이 실작임을 깨달았고, 1년도 안 돼서 결혼생활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버렸다. 다만 침묵을 배웠고, 자신의 사랑을 고집하거나 강요하지 않았다.

이디스는 스토너가 이해할 수 없는 완벽한 타인이었다. 사교파티 같은 공적인 자리에서는 애칭으로 그를 부르고 살갑게 대하다가도, 둘만 남았을 때는 이렇다할 대화도 없이 방에 처박히곤 했다. 그런 그녀는 스토너가 영원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였다. 돌연 아기를 갖고 싶다고 하고, 출산 후에는 딸 그레이스를 쳐다도 보지 않기도 하고, 갑자기 예술을 하겠다고 극단에 나가는 한편, 은행장인 아버지에게 거액의 돈을 빌려 덜컥 집을 사기도 한다.

와중에 학교에선 학과장의 눈밖에 나서 지속적인 괴롭힘이 이어진다. 아내가 관심을 갖지 않아 그가 온 애정을 쏟던 딸 그레이스도 이디스의 변덕으로 인해 멀어지고 만다. 물론 그가 성자처럼 그려지진 않는다. 아내 몰래 젊은 여강사와 연애를 한다거나,  학과장과의 대립을 피하지는 않는다.

모든 일에 의미를 찾고, 개선하려 하기보다는 그저 받아들이는 것을 택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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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무엇을 기대했나?


윌리엄 스토너의 인생은 잔잔하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 보면 평온 속에 소용돌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는 인생의 순간들에서 수많은 선택을 했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며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왔다.

짧고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아간 스티브 잡스나 미국의 근현대사를 우연히 관통하는 포레스트 검프처럼 화려한 불꽃을 내뿜지는 않았지만, 고요한 곳에 놓인 양초의 불빛처럼 제 자리를 지키는 삶을 살았다. 화력의 차이는 있겠지만 불은 늘 흔들린다. 설령 스토너처럼 단조로워 보이는 삶일지어도 말이다.

내가 두려워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건 아이러니하게도 '불꽃 한 번 제대로 피워보지 못하고 죽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직장 생활하다가 관두고 소설 쓰기를 하는 사람의 아웃풋이 크면 얼마나 크겠느냐마는 어렴풋이 나는 스티브 잡스 급 임팩트를 바랐던 것 같다. 문제는 이것이 나로부터 시작된 질문과 고민, 바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자기계발, 성공, 성장.
돌이켜보면 나는 언제나 '목표-성과 지향'이라는 틀에 갇혀있었다. 경쟁을 통해서 한정된 자원을 차지하고, 그것으로 부와 명예를 얻는 일이 이 세상의 정답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문제는 내가 경쟁 지향적인 인간도, 승부욕이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는 점이다. 나의 뜨뜻 미지근한 스탠스는 '이도저도 아님' 내지 '어쭙잖음'이 되어서 '노력 부족'이라는 결론으로 이어졌으니까.

어느 순간부터 한 방, 세상을 다 뒤집어 놓을 임팩트! 같은 것이 내 머릿속에 자리잡았고, 그게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것이 목표를 반드시 이루는 사람, 성과를 내는 사람, 그래서 성공하는 사람이라는 공식에 부합했기 때문일 게다. (사실 되고 싶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되고 싶은 나와 본성이 어긋나니 충돌은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잘 살고 있는가.'는 질문은 '나는 성공하는 삶을 못 살고 있'기에 나오는 것이었다.

《스토너》는 내게는 '이런 삶도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되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던져야할 질문을 남에게 아웃소싱하곤 한다. 대개는 인생의 성과를 낸 사람이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에 대한 답을 모범답안 삼아 그대로 따라하곤 한다. 죽음을 앞둔 스토너는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넌 무엇을 기대했나?
《스토너》 中


나는 내게 무엇을 기대했나. 그 기대는 나로부터 온 것인가. 나는 내게 이런 질문을 해본 경험이 별로 없었다. 분명 내 인생인데 나는 왜 물어보지 않았나. 정해진 길로, 남들이 닦아놓은 길로만 가려했는가. 생각이 여기까지 닿으니 비로소 내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을 수 있었다. 아직 초안이기에 사는 동안 고쳐나갈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Q.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가.
A. 된다.

스스로를 제한하던 남들의 기준이 아닌, 내 기준에 부합하는 삶을 살아가고 싶어졌다. 그래서 일단 내가 찾은 답은 자기긍정이다. 내가 옳다고 믿는 마음. 나는 나임을 알고, 너는 너임을 알아 서로가 공존할 수 있게 만드는 개별성을 아는 마음. 그리고 행복을 유예하지 않고 내 사람보다도 '나'를 우선하는 선택을 쌓아가는 마음. 그게 지금의 내게 가장 필요한 답 같다. 주관식인 답지를 채워가는 마음으로 지르고, 고쳐가며 삶을 만들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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