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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마 Nov 22. 2023

[글쓰기]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 사람들에게

《긴장감 넘치는 글쓰기를 위한 아이디어》, 《픽사 스토리텔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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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라는 질문으로부터


길을 걷다가,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그도 아니면 꿈에서 문득.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 사람에게는 장소와 시간을 불문하고 갑자기 머리가 번쩍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와… 이 얘기를 콘텐츠로 만들면 엄청 재밌을 것 같은데?' 싶어 부리나케 노트를 꺼내 내용을 정리해보면 처음 번뜩했던 순간은 온데간데 없고, 애매한 아이디어만 남아있는 경험. 아마 겪어본 사람이 꽤 있을 것이다.

머릿속에 전구가 켜지는 은유로 그려지는 '유레카 모먼트'. 나도 항상 그 순간을 기다렸지만, 막상 까보면 별볼일 없는 것들 뿐이었다. 언젠가 오겠지, 온다면 그 아이디어로 시대에 남을 매스터피스(masterpiece)를 만들어주겠어! 다짐했지만 여태까지 이렇다할 결과물이 없던 걸 보면 앞으로도 호락호락하게 찾아오진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다른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영감은 어느 날 스토리의 요정이 찾아와 던져주고 가는 건 아니라 오히려 내가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프레임을 활용하는 글 참조),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준비하는(내 안의 스토리 꺼내는 방법 글 참조) 과정에서 스스로 발견하는 것에 가까운 것 같다고 말이다.

물론 이러한 생각을 갖는 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영감을, 유레카 모먼트를, 그리고 재능을 오랫동안 믿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고 상상한 바를 세상에 풀어놓으면, 사람들도 알아서 반응해주는 예술가의 모습을 동경했고, 나도 그렇게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술성으로 남을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은 세계에 0.1%도 존재하지 않고, 그 0.1%에 나는 속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기로 했다. 그 자체로 영감을 주거나, 상징이 될 수는 없더라도 작은 공감을 끌어내거나, 동기부여를 불어 넣어줄 수 있지는 않을까? 스스로 그럴 능력이 있는 지는 지금도 의심하지만 하나 둘 글을 쓰면서 그래도 이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가깝다는 걸 알아가고 있다.

나는 궁금해졌다. '나는 어떤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나는 왜 이야기를 쓰려하지?' '어떻게 이야기를 써야하지?'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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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감 넘치는 글쓰기를 위한 아이디어》는 서스펜스 문학의 대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가 쓴 글쓰는 마음에 대한 책이다. 구체적인 작법 방법보다는 작가가 어떤 마음으로 소설을 써가는 지 쓰였다.
《픽사 스토리텔링》는 <니모를 찾아서>, <몬스터 주식회사> 등 세계적인 흥행을 한 픽사 애니메이션에 스토리로 참여한 매튜 룬의 스토리 작법서다.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이야기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 단계별로 쉽게 알려준다.

모든 이야기에 통용되는 마스터키 같은 방법은 단언컨대 없다. 다만 먼저 세상에 이야기를 내놓은 사람들의 기록을 레퍼런스 삼을 수는 있다. 그들의 방식을 적용해 내 나름대로 시도해보고, 괜찮으면 취하고 별로면 패스하며 나만의 이야기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오늘 가져온 2권의 책은 내게 스토리텔링에 대해 '왜?'와 '어떻게?'에 대한 힌트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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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이야기 만드는가? 그리고 왜 실패했는가?


《긴장감 넘치는 글쓰기를 위한 아이디어》를 쓴 소설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책에서 이야기를 쓰는 단계를 아래와 같이 정리했다.

아이디어의 싹
발달
구상
초고
걸림돌
2차 원고
교정
책(출간)


일상에서 나누는 대화, 지나가다가 우연히 듣게 된 이야기, 잡지에서 읽은 토막 상식, 드라마를 보다가 문득 든 생각에 이르기까지 아이디어 싹은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다. 그 중 괜찮아 보이는 소재를 하나 또는 여러 개 골라 이걸 써볼까, 저걸 써볼까 '생각'하는 데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상상해보고 새로운 소재를 이어 붙여도 보고 하면서 발달시키면 '무슨 이야기를 써야겠다.' 정도의 윤곽이 나오는데 등장인물, 배경, 분위기 등 작품의 첫 단어를 쓰기 전에 작가가 이야기를 알아가는 과정에 가깝다. 이어서 구상은 이를 바탕으로 개요를 작성하고, 클라이맥스를 배치하는 등 초고 전의 가이드라인을 작성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가급적 비판/수정 없이 초고를 먼저 작성하고, 마주한 걸림돌, 이를테면 내용상 오류나 떨어지는 디테일 보강 등을 고려하며 2차 원고를 작성한다. 타인의 피드백을 받아 교정을 하고, 여건에 맞게 책으로 완성해가는 일련의 과정을 하이스미스는 설명한다.

여기까지 읽고 있노라면 '아 책 쓰는 것 별것도 아니네~' 싶은데, 막상 쓰려면 눈앞이 캄캄해지는 건 왜일까. 내 경우는 세 가지가 문제가 되었던 것 같다. 먼저, 대단한 완성품을 만들고 싶은 욕심. 두번째로, 욕심에 비례하지 않는 실력. 마지막으로, 그로인해 따라오는 부담감과 좌절감.

하이스미스는 '책을 쓸 때 즐거움을 주기 위한 대상으로 가장 먼저 떠올려야 할 사람은 당신 자신이다. 책을 쓰는 데 들이는 시간 동안 스스로를 만족시킬 수 있어야 출판사와 독자 또한 뒤따를 것이다.' 라고 말한다. 한 편의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은 위의 8단계를 거치는 긴 호흡의 프로젝트다. 초고의 신이 내려와 하룻밤 사이에 후다닥 받아써 작품이 나오는 신화와 실제는 거리가 멀다. 이 플로우에서 중요한 건 당연히 쓰는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완주할 수 있도록 해주는 '동기', 다시 말해 즐거움일 것이다. 내가 갖고 싶어한 것은 '만드는 과정'이 아니라 '멋진 완성품과 그에 따른 명예(좋은 평가)'였기에 애초부터 전제가 잘못된 것이었다.

이야기는 만드는 과정에서 수없이 엎어지고, 폐기되기 마련이다. 대작가도 수도 없이 고치고, 조합하며 자신의 아이디어들을 다듬는다. '즐거움'은 이야기를 끝까지 만들어갈 자기확신에 힘을 불어넣어 준다. 그렇지만 즐거움만을 따라 방향 없이 전진하다 보면 갈피를 못 잡는 순간이 찾아 온다. 이런 걸림돌이 찾아올 때마다 나는 내 실력을 의심했고 그대로 미완성으로 폐기하는 일이 많았다.

저자는 이에 초보 작가라면 챕터마다 개요를 작성하는 것을 권한다. 스토리는 느낌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번 챕터에서는 어떻게 이야기를 진전시킬 것인가?"하는 질문에 답하며 요점을 찾아가는 것에 가깝다. 이 과정에서 타당성을 포기하는 건 얄팍한 속임수가 되고, 뻔한 해법을 쓰는 건 일종의 태만이 되기에 작가는 몇 번이고 처음부터 결말을 오가며 최적의 길을 찾아내야 한다.

또한 저자는 책을 쓰고자 한다면 먼저 자기가 어떤 느낌을 불러일으키고 싶은지 의식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스토리의 기본 전제가 '읽는 사람'을 염두하고 쓰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독자는 이야기를 관통하며 보기 전과는 다른 상태로 변한다. 텍스트 자체가 주는 재미나 슬픔, 노여움 같은 1차적인 감각부터 독자 자신의 경험과 오버랩하며 느끼는 복합적인 감정에 이르기까지 이야기에는 영향력이 있다. 때문에 창작자는 직접적으로 자신의 밝히지 않더라도 '의도'를 갖고 창작에 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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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야기를 구성하는가?


《픽사 스토리텔링》의 저자 매튜 룬은 이야기를 어떻게 만드는가?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옥스퍼드 사전에 따르면 'Story'는 "재미를 목적으로 상상해내거나 실제로 있는 사람과 사건에 관해 말하는 것. 누군가의 인생에서 벌어진 일이나 어떤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에 벌어진 과거의 일에 대한 설명."으로 정의된다. 스토리는 결국 사람의 이야기이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야기를 갈망한다. 여기서 중요한 키워드는 다시, '재미'와 '변화'이다.


저자는 우선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재미의 역할을 하는 '후크(Hook)'에 대해 강조한다. 이 장치를 위해선 우선적으로 이야기의 콘셉트와 방향을 간단명료하게 설명하는 '로그라인(Logline)'부터 만들어야 하는데, 여기에는 아래 4가지 요소가 들어가야 한다.

영웅
목표
한 가지 또는 그 이상의 장애물(악당)
변화


주인공에 해당하는 영웅에게는 이뤄야 하는 또는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 그 목표를 이루는 과정에서 장애물을 만나고 이를 극복하고 나서 다시 일상으로 변화와 함께 돌아온다. 단순한 구조 같지만 이는 모든 이야기에 적용된다.

문득 몇 년 전 소설 창작 수업을 들을 때 선생님이 하셨던 말씀이 생각났다. 3페이지 짜리 짧은 소설을 써오는 숙제를 내주시며 그는 이 말을 덧붙였다. "아! 노파심에 말하는데 카페에서 주인공이 혼자 생각하는 이야기는 써오면 안 됩니다." 주인공의 행동 없이 생각 만으로 지면을 채우지 말라는 의미였다. 행동하지 않으면 사건은 일어나지 않고, 사건이 없는 이야기는 쓰기도 읽기도 어렵다는 게 이유였다.

이야기는 '누군가에게 읽혀야 한다.' 그러려면 재미가 있어야 하고, 이야기를 관통한 사람들에게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 감정적 변화든 동기부여가 되었든 목표로 하는 대상으로 하여금 달라질 의지를 만들어줘야 한다. 때문에 책에서는 독자들이 몰입할 대상인 '캐릭터'가 두려움, 한계, 난관, 상처들을 거치면서 맞이하는 '캐릭터아크(Character arc)'의 전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1. 스토리는 어느 평범한 날에서 시작된다.
- 캐릭터는 누구인가(영웅)
2. 스토리 속 캐릭터가 낯선 세계로 들어가 자신의 사고방식과 다른 여러 등장인물과 장애물을 만나게 된다.
- 캐릭터는 어떤 교훈을 얻는가(목표, 장애물)
3. 스토리 후반부에 캐릭터는 스토리가 처음 시작된 지점으로 돌아오지만 이전과는 여러모로 달라져 있다.
- 캐릭터는 어떻게 되는가(변화)


이야기에 진입하기 위해서 독자는 첫 장부터 정보를 수집해 간다. 몰입할 수 있는 대상인 주인공(영웅)을 기준으로, 그가 어떤 인물이고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 알아가면서 이야기에 한 발씩 발을 담근다. 평범한 나날은 그러한 배경을 설명해주는 진입의 단계다. 그러다가 어느 사건을 계기로, 혹은 과거의 일을 되새기게 되는 인물의 등장으로, 그 외 여러 '트리거'가 되는 시점을 기준으로 주인공은 평범한 세상에서 불편한 다리를 건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모험을 떠난다. 그 과정에서 장애물을 극복하고, 우여곡절을 경험하며 성장하거나, 가치관이 변한다. 다시 돌아왔을 때는 처음과 비교했을 때 변화한 주인공의 모습을 발견한다.


이 일련의 과정을 독자도 함께 따라간다. 주인공의 역경과 성장을 같이 체험하며 이야기의 종반부까지 나아가는 것이다. 책에서 말하는 독자의 변화란 몰입하고, 공감하고, 지지하고, 분노하며 온전히 재미있는 스토리에 빠져 경험한 후의 결과를 말한다. 그러나 이야기가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 방식으로 말이다. 답은 읽는 사람마다 각자의 방식으로 얻어가는 변화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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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만이 결말에 닿을 지니


대부분의 작법서는 마지막 장에 이런 말로 마친다.

"자! 이제 당신의 이야기가 시작될 차례다!"

애석한 말로 초를 치면, 경험상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야지!' 다짐하고 작법서부터 읽으면 창작 동기가 팍 식어버릴 거라고 장담한다. 중요한 건 비법이 아니라 백지 앞에 앉아서 한 글자라도 쓰는 것이다.

그럼 지금까지 무엇하러 스토리텔링에 대해 이야기 했느냐고?
 
글쓰기는 특별한 사람이나 전문가의 전유물이 아니라, 누구나 쓸 수 있는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 어떤 이야기든지 큰 틀에서는 '사람 사는 이야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차이가 있다면 저마다 갖고 있는 '나만의 이야기'가 어떤 것인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사람들의 말씨나 습관이 모두 다르듯 마음에 새겨진 자신의 이야기는 백인백색이다. 꼭 규격에 맞춰서 쓸 필요는 없지만, 쓰기에 막연함이나 어려움이 있다면 한 번 이 방법들을 자신의 이야기를 만드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 이 글을 썼다.

비루한 실력이지만 책에서 힌트를 얻고, 내 이야기를 한 편씩 완성해가는 과정이 내게도 큰 힘이 되고 있다. 잘썼네, 못썼네 하는 평가를 의식하기 보다는 이 글을 통해 누군가 하나라도 얻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쓰는 즐거움에 집중하니 얘기도 잘 풀리는(?) 기분이고 실력도 조금씩 오르는 걸 느낀다. 이 즐거움을 다른 사람들도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다. 부담을 내려놓고 당신이 이야기를 한 번 써보면 좋겠다. 당신의 이야기는 오직 당신만 쓸 수 있는 이야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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