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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마 Nov 20. 2023

[심리]오늘도 미루고 있는, 나를 깨우는 스토리 발굴법

《히든 스토리》, 《게으른 완벽주의자를 위한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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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치 앞도 안 보이던 때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던 일


회사를 그만둔 건 사고 때문이었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괜찮겠지 방치했던 마음에 구멍이 났다. 회사 컴퓨터로 번아웃, 퇴사, 우울증, 공황장애 같은 것을 검색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한 날, 나는 병원을 예약했고 3주 정도 지나서야 갈 수 있었다. 그 사이에 상담도 다녔다. 두어 달을 버티다가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 처음에는 병가를 그 다음에는 퇴사를 선택했다. "왜?"라고 물을 틈도 없이 시간은 흘러갔다.

쉬면서 내가 할 수 있던 건 거의 없었다. 자고, 유튜브를 조금 보다가 다시 자고, 또 자는 일 뿐이었다. 오랜만에 친구나 전 회사 동료를 만나면 그들은 "쉬니까 얼굴이 좋아졌네." 하며 농을 건넸지만, 나는 전혀 괜찮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전혀 회복되지 않는 기분 속에서 두어 달을 보냈다. 그런 다음에야 간신히 집 앞 카페를 나갈 수 있었다. 그저 나가서 책을 읽다가 들어오는 일. 그게 전부였다. 한치 앞도 안 보이던 때,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던 일은 읽기 뿐이었다.

전보다는 낫냐고 묻는다면 드라마틱하게 좋아지진 않았지만 다시 '쓰고 싶은 마음'은 든다고 답할 것 같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고, 좋고 싫음도 없는 무(無)의 상태에서는 한 발자국 정도 내딛은 상태라고 해야 할까. 

다시 한 번 써볼까? 하는 마음과 내가 뭐라고 글을 쓰지… 하는 마음이 오락가락하다가 며칠을 미뤘다. 이유는 여러가지였다. 나한테 전문 분야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미친듯이 디깅한 취향의 영역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문장이 유려하거나 멋지지도 않았으니까.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아무 일도 안 생기던 시간을 보내다가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냥 하자. 이러다가 내년 된다.'

그때부터는 또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뭘 쓰지?' 내가 뭐라고 글을 쓰나 하며 쭈굴해지고… 악순환에 빠지려는 찰나, 내가 너무 큰 부담을 갖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말 그대로 '그냥'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쓰기로 결심했다. 할 수 있는 것. 그건 책 읽기였다. 읽은 것에 대해 '그냥' 써보았고, 다행스럽게도 첫 글을 완성해 올릴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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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어볼 책, 《히든 스토리》, 《게으른 완벽주의자를 위한 심리학》


《히든 스토리》는 스토리 컨설턴트 킨드라 홀이 알려주는 내면의 스토리 발굴법을 담은 책이다. 내 안의 부정적인 스토리를 긍정적인 스토리로 대체하며, 내가 바라는 나의 길로 갈 수 있도록 돕는다.
《게으른 완벽주의자를 위한 심리학》는 '미루기'라는 현상에 대해 심리학적으로 풀어낸 책이다. 우리가 왜 미루게 되는지를 심리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케이스별로 미루는 습관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제안하는 책이다.

당연하게도 첫 글을 쓰면서도 수없이 벽에 부딪혔다. 내가 이걸 쓰는 게 맞나, 나같은 사람이 무슨… 읽고 사람들이 욕하면 어떡하지… 쓰는 내내 끝없는 자기비난과 검열을 했지만, 우습게도 글을 등록한 다음에는 뿌듯함으로 몇 번이나 통계를 들락거렸는지도 모른다. 정말 '그냥'이 답이었을까 생각하며 도서관에 들렀다가 그 답을 해결해줄 것 같은 책들이 보여 빌려와 읽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는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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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감정을 미루는 내 마음에게


《게으른 완벽주의자를 위한 심리학》에서는 미루기의 원인을 감정에서 찾는다. 어떤 일을 미룬다는 건 수행하지 못한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불편한 감정으로부터 나를 구한다는 뜻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글을 쓰려고 자리에 앉았을 때 나 자신에게 둘러댔던 수많은 이유들, 가령 내가 뭐라고 글을 쓰나 잘 아는 분야도 없는데… 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글과 내 글을 견주었을 때 못나보일 가능성에서 올지도 모르는 불편한 마음을 스스로 먼저 차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글을 등록하지 않는다면 상처받을 일도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월해둔 불편한 감정은 미래에 다시 찾아온다는 점이 우리 마음을 아프게 한다. 선택지는 두 가지 뿐이다. 다시금 미뤄서 지금을 구원하든지, 어떻게든 직면해야 한다면 지금 처리하든지 말이다. 당연하게도 두 가지 중에 후자를 선택하는 게 상식적으로 맞지만 내가 실제로 행하는 건 전자다. 최대한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버티다가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의 반복. 성에 차지 않는 아웃풋과 스스로에 대한 자책. 다시 악순환은 시작되는 것이다.

그런데 어떡하나. 여태껏 그렇게 살아왔는데. 내가 뭐 그렇지 하면서 평소처럼 자기비난 사이클로 빠질 찰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 '왜 나는 나에게 이렇게 부정적이지. 왜 나한테만 이렇게 박하게 굴지?' 그러게 말이다. 스스로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만약에 같은 상황에서 내 친구가, 가족이 그러고 있다면 뭐라고 말해줄까. 의미는 전달하겠지만 다이렉트로 비난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하고 둥글게 말할 것이다. 나는 나와 가장 가까운 나를 너무 가혹하게 대하고 있었다.

책에서는 심리적 자본이라는 개념을 설명한다. 자신이 목표에 도달하리라는 희망, 고난과 역경에서 회복할 수 있는 탄력성, 성공할 수 있다는 낙관성과 자신감을 말하는데 한 마디로 말하면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다. 자신을 낮춰 겸손은 할 줄 알았어도, 나를 믿고 무언가 선뜻 해본 적은 별로 없었다. 분명 아닌 때도 있었을 것이다. 다만 회사를 그만둔 시점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는 나 자신을 '무너진, 망한, 아픈, 회복이 어려운, 믿을 수 없는' 같은 키워드로 정의하고 있었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데, 내 심리적 자본은 완전히 꺾여있던 것이다. 그렇기에 '자기의심'과 '자기비난'이 계속 따라온 건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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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스토리를 꺼내는 4단계


잃어버린 심리적 자본을 되찾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다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실마리를 《히든 스토리》에서 찾을 수 있었다. 책은 4단계에 걸친 나만의 스토리 설계법을 제시한다.

1단계: 작동 중인 스토리를 포착한다
2단계: 셀프스토리를 분석한다.
3단계: 도움이 되는 스토리를 선택한다.
4단계: 엄선한 스토리를 설치한다.


저자 킨드라 홀은 누구에게나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스토리가 있기 마련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부정적인 스토리를 인생에 설치한다고 말한다. 그는 인생을 가로막는 무언가를 '빙산'이라고 명명한다. 빙산의 일각이라는 말처럼 우리 앞에 서있는 저 커다란 벽의 본질은 수면 아래에 숨은 스토리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우리가 빙산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분석하다보면 필연적으로 그것이 생기된 스토리를 직면하게 된다. 이는 1단계 작동 중인 스토리(빙산) 포착, 2단계 셀프스토리 분석에 해당한다.

이를테면, 내가 글쓰기를 주저하고 미루게 된 빙산을 잘 들여다보면 떠오르는 몇 가지 스토리가 있다. 이를테면 회사 업무로 SNS/블로그 포스팅을 할 때 최선을 다해 공들여 만든 콘텐츠가 기대보다 반응이 너무 저조했던 스토리, 나름 잘 쓴 것 같아서 친구들에게 습작 소설을 보여줬을 때 시큰둥하거나 너무 가열찬 피드백을 받아 창작 의지가 꺾였던 스토리, 그와 비슷한 여러 기억들이 나에게 '불편한 감정'을 일으킨 것이다.

이 스토리들을 분석하면 '내가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아니라 '타인이 내 글을 부정적으로 평가' 할 때 나는 불편함을 느꼈음을 알 수 있다. 미루는 행동에 숨은 진짜 이유를 찾은 것이다. 그 다음 단계는 3단계 도움이 되는 스토리 선택, 4단계 엄선한 스토리 설치다.

타인의 평가가 아닌 '글을 쓰는 일' 자체에서 즐거움을 느낀 순간들을 찾아보았다. '내가 뭐라고'의 빙산을 넘어 내 마음 저 깊은 곳으로 나의 에피소드를 찾다보니 중학교 시절에 도착할 수 있었다. 교내 시 창작 대회가 있었고, 기대치 않게 대상을 탔던 스토리가 내게 있었다. 그러나 이건 긍정적 '평가'를 받은 스토리이기에 다른 것을 더 생각해보았다. 다음으로 생각난 것은 대학생 시절이었고 친구들과 소설·시나리오 창작 학회 활동을 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합평(평가)을 하긴 했지만 친구들에게 보여줄 글을 밤새 쓰던 기억들, 재미가 붙어 수십 페이지씩 써내려가던 순간들의 감정이 불현듯 복원되었다. 이거다! 부정적 피드백의 빙산이 있는 자리를 '기분 좋았던 스토리'로 대체하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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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가로막은 건 나 자신이었구나


애석하게도 긍정적인 스토리를 설정했다고 완벽하게 사람이 바뀌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내게 불안과 불편을 주던 장애물을 넘어 백지와 직면하는 데는 큰 부담이 덜어졌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효과는 있었다. 더불어 내 안의 감정에 대해서 생각하기, 나를 막아서는 빙산을 분석하기, 내 안의 스토리를 찾기라는 과정을 두 권의 책과 함께 따라가면서 깨달은 바가 있다.

'나를 가로막은 건 나 자신이었구나.'

나를 의심하고 비난해서 무너뜨린 것도 나고, 이건 안 될 거야 하며 지레 포기한 것도 나다. 그러나 그 모든 걸 직시하고 다시 일어서려고 노력하는 것도 나다. 비단 글쓰기만이 아니라 산다는 건 내가 나를 믿는 만큼만 살아지는 것이구나 싶었다. 내 의지에 따라 우주처럼 무한히 확장될 수도, 한 톨의 씨앗만큼 쪼그라들 수도 있다는 걸 나는 몰랐던 것 같다. 늘 내가 생각하는 나의 기준은 딱 내가 생각한 만큼이었으니 말이다.
 
앞으로는 자기비난을 자제하고 나를 위한 스토리들로 일상을 채워가고 싶다. 내 안의 심리적 자본들은 사라지거나 떠난 것이 아니다. 다만 발견되지 못하고 빙산 아래 깔려있던 게 아니었을까.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은 더 이상 미루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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