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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마 Nov 18. 2023

[심리]우리의 선택은 생각보다 비합리적이다

대니얼 카너만, 《생각에 관한 생각》③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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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님의 피드백을 받다가


편집자 분들과 미팅할 기회가 두 번 있었다. 내 소설의 앞부분을 읽으신 분들이었기에 나는 신나서 뒷 이야기를 포함해 출판기획서를 써갔더랬다. 기획 단계부터 이야기가 만들어졌다가 엎어졌다가 하는 것을 보아온 친구들 외에는 처음 받아보는 외부 피드백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핀트를 잘못잡고 있었다.
나는 내가 설계한 '세계', 그러니까 배경에 깔려있는 뒷 이야기가 매력있다고 생각했지만, 두 번의 다른 자리, 다른 분들께 들은 코멘트는 '캐릭터'가 매력이라고 하시더라. 처음 들었을 때는 '아. 편집자님은 그렇게 생각하시는구만! 근데 내가 맞아!"라고 생각했지만, 다른 쪽에서도 비슷한 코멘트가 나왔을 때는 '내가 맞는 걸까? 뭘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닌가?'로 바뀌었다.
《생각에 관한 생각》을 다시 찾은 건, 어쩌면 내가 '대충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지난 2번의 리뷰에서 알게 된 한 줄, [사람은 생각보다 살던대로 살아가고, 잘 따져보지 않는다.]가 지금의 내 얘기가 아닌가 싶더라.


같이 볼 콘텐츠, 《생각에 관한 생각》


알라딘

《생각에 관한 생각》은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최초의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이 쓴 첫 대중교양서다. 우리의 머릿속에서 생각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고, 직관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수많은 심리/사회 실험을 통해서 그 비밀을 쉬운 것부터 어려운 것까지 단계적으로 풀어나가는 책. 다만 책이 좀 두꺼워서 각오는 하고 읽어야 한다.



* 책의 모든 내용을 다루지 않습니다. 제가 읽고, 와닿은 부분 위주로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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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기 어려운 매몰비용


캐스. R. 선스타인이 《넛지》라는 책에서 사용한 용어 중 '이콘(Econ)'이라는 것이 있다. 이콘은 '합리적이고 이기적이며 취향이 바뀌지 않는 존재'로 노력없이 저절로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충동적인 내면 시스템, 시스템 1에 휘둘리는 인간과는 차이가 있는 개념이다. 요는 우리 인간은 이콘이 아니기에 감정이나 상황에 의해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존재란 말이다.

외부 피드백을 들은 내가 이콘이었다면 '그래? 그럼 캐릭터 중심으로 이야기 새로 짜보지 뭐.'라고 판단하고 바로 새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겠지만, 내 반응은 너무나 인간적이었다. '음… 아닌데… 음… 내가 틀렸나?' 하면서 주저하며 나를 의심하며 행동을 멈춰버렸으니까. 나는 내가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만 했을 뿐 선택과 판단 같은 노력이 필요한 정신활동인 시스템 2로 넘어가기를 주저했다.

왜 그랬을까?
두 번째 피드백을 받고 하루를 꼬박 흘려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자기객관화를 할 수 있었고, 내가 '매몰 비용의 오류'에 빠져 있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더 좋은 대안이 있는데도 구태여 손해를 감수하고도 '내가 믿는 것'을 포기하지 못해 시간을 낭비하는 상태말이다. 생각해보면 '내가 믿는 것'이었던 '나만의 세계관'이 업계 전문가들의 피드백을 물리고 고집할만큼 대단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그걸 인정하고 고치니 외려 글은 쉽게 풀리기 시작했다.

책에 따르면 사람은 이익 달성보다 손실 회피 성향이 강하다. 경제학자 데빈 포프와 모리스 슈바이처는 연구를 통해 프로골프에서 선수가 '보기를 피하는 퍼팅'과 '버디를 잡는 퍼팅'을 할 때를 비교했는데, 결과는 퍼팅이 쉽든 어렵든, 홀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든지 선수들은 파 퍼팅을 할 때 더 높은 성공율을 보였다고 한다. 버디를 놓치면 이익이지만, 파를 놓치면 손실이 되기에 손실을 회피하기 위해 더 공을 들인다는 의미다.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방법은 손실보다 이익이 더 많아지는 방향을 고르는 것이다. 그러나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내가 매달렸던 매몰 비용은 '시간'이었다. 내가 편집자 분들께 보여준 소설은 사실 '프리퀄'을 염두하고 쓴 이야기였다. 10여년 전에 꼭 써야지 마음먹었던 이야기가 있었다. 쓰지 않은 채로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디어가 낡아간 탓에 막상 쓰려고 하니 채워야할 구멍이 너무 많았더랬다. 그 구멍을 메우기 위해 쓰기 시작한 이야기가 길어지며 하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이 뒷 얘기는 독자들은 알 필요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을 터다.

나 혼자만 '쓰고 싶은 이야기'를 위한 빌드업이야 생각하며 의미부여를 한 것뿐이었다. 쓰지 않고 아이디어를 간직했던 10년의 시간까지 가치에 포함했기에 '세계관'은 더 중요해 보였던 것 같다. 조금만 차분히 생각해도 답이 나오는 문제를, 다만 '나의 10년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는 시스템 1적인 마음으로 부정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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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확율에 과도한 가중치를 부과하는 심리


생각을 고쳐먹으니 이젠 이런 의문이 들더라.
'나는 왜 이 아이디어를 좋다고 10년째 생각하고, 지켜왔을까?'
이유? 합리적인 이유 같은 건 없었다. 굳이 찾아보자면
- 그 당시에 '와 이거 내가 쓴 거지만 진짜 괜찮네!' 생각했던 영감의 순간
- 대학교 소설 창작 수업에 가져가 합평을 받을 때 "재밌었어요."라는 코멘트를 들은 경험
- 언젠가 쓰기만 하면 대박인데, 때가 될 때까지 기다리며 쌓인 기대감
이 정도가 전부였다. 10년을 고집스럽게 지킬 이유가 되기엔 비합리적이고 빈약한 이유였다.

사람을 포함한 동물은 이익을 얻을 때보다 손실을 막을 때 더 열심히 싸운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낮은 확률에 지나치게 높은 결정 가중치를 부여'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당신이 3년 사이에 버스 자살 폭탄 테러가 23건 발생해 총 236명이 사망한 이스라엘에서 운전할 일이 있다면, 버스 근처에서 운전을 하겠는가 거리를 조절하며 피하겠는가. 당연히 인간은 버스와 멀리 떨어지는 편은 택할 것이다. 설령 버스 옆에 정차해 있다가 폭탄에 다칠 확률이 운전 중에 일어나는 사고로 다칠 확률보다 현저히 낮음에도 말이다.

이처럼 우리는 시스템 1이 가져오는 연상작용에 의해 사건 발생 확률이 낮다는 것을 알면서도, 저절로 생기는 불안이나 그 불안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으로 자신을 보호하고자 하는 선택을 한다. 역으로 복권 당첨 확률이 희박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과도한 가중치를 부여해 일말의 가능성을 믿고 매주 로또를 산다. 어느 쪽이든 합리적인 선택은 아니다.

내가 그 아이디어를 붙잡고 있던 것도 어쩌면 과도한 결정 가중치를 부여했기 때문일 터다. '쓰기만 하면 대박인데' 하며 '언젠가 찾아올지도 모르는 가능성'에 긍정적이었던 과거 경험을 엮어 객관적이지 못한 가치평가를 한 까닭일 게다. 생각만 하고 쓰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는 것을 애써 모른체하면서 말이다. 편집자님들의 시선에서는 강점으로 보이지 않을 수 있다는 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렇지만 그걸 못 받아들이는 것은 문제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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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을 하는 유도하는 방법 - 틀 짜기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합리적인 결정은 앞선 실수나 맥락이 어떤지 고려하기 보다는, 현재의 투자가 미래에 가져올 결과에만 집중하는 것이란 사실을.
그러나 대부분은 알면서도 잘못된 선택을 한다.
아니, 알지 못하는 사이에 '유도되어'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한다.

책에서는 '틀 짜기'라는 방법을 소개하며 한 실험을 예시로 든다.

실험 참가자들에게 우선 50파운드를 받았다고 상상하라고 한다.
그 다음에 돌림판을 보여준다.
40% 확률로 흰색이 나오면 50파운드를 주고, 60% 확률로 검은색이 나오면 아무 것도 받지 못한다.
그리고 묻는다. 도박을 할지, 40% 확률로 50파운드를 얻는 기대값인 20파운드를 확정된 결과로 받을지 말이다. 


이때 '확정된 결과'를 [20파운드를 갖는다]는 틀을 짜서 설명할 때와 [30파운드를 잃는다]는 틀을 짜서 설명할 때의 실험 결과는 달라진다고 한다. 시스템 1은 똑같은 확정된 결과를 놓고도 갖는다에는 끌리지만 잃는다라고 표현하면 회피하는 편향을 보인다. 합리성은 뒤로한채 감정이 우선되기 때문이다.

- 한 달 생존율은 90퍼센트다.
- 첫 달에 사망할 확률은 10퍼센트다.

마찬가지로 같은 말을 다르게 쓴 것일 뿐인데도 수술을 앞둔 사람이라면 전자의 틀로 생각하는 것에 긍정적으로 반응한다고 한다. 이렇게 우리는 의도적으로 언어의 틀을 조작함으로써 시스템 1의 선택을 의도할 수 있다.

한편  선스타인의 '넛지(nudge)'라는 행동 설계를 통해서는 시스템 2의 선택을 특정한 답으로 유도하는 틀을 보여준다.

- 운전면허증에 사고로 사망시 장기 기증을 할지 안 할지에 '거부 선택'을 하는 경우, 선택 안하면 기증 찬성으로 간주
- 운전면허증에 사고로 사망시 장기 기증을 할지 안 할지에 '찬성 선택'을 하는 경우, 선택 안하면 기증 거부로 간주

결심이 선 사람은 찬성이든 반대든 선택을 하겠지만, 질문에 대답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생각을 해야하기에 결정을 유보한다. 그래서 '거부 선택'을 둔 편이 장기 기증율이 높다고 한다. 이는 시스템 2의 게으름에 기인한다. 직관적으로 나오는 판단이 아니라, 고민이 필요하고 에너지를 써야하는 대목이기에 중립을 고려한다는 것이다. (물론 중립이라고 선택한 게 중립이 아니란 게 문제다)

정리하면 인간은 시스템 1의 '감정', 시스템 2의 '게으름' 같은 요소들로 인해 '별 생각 없이 비합리적인 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내가 아이디어를 별 이유도 없이 긴 시간 보물처럼 아꼈던 것처럼,
한 번만 객관적으로 (시스템 2를 돌려서) 생각해본다면 무엇이 합리적인 선택인지 바로 판단이 서는 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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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


결론은 '당연하다 생각하지 말고 다시 생각해봐라.' 이다.
인간은 생각보다 '별 고민 없이 중요한 선택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터다.

우리는 이콘이 아니기에 비합리적이기 마련이다.
매 순간에 조건을 설정하고 알고리즘을 돌려서 기계적으로 생각할 수는 없겠지만 '우틀않', 
우리는 틀리지 않았다는 마음을 고집하기보다는 유연하고 객관적으로 선택을 해간다면 결과적으로는 베스트는 아니더라도 괜찮은 선택들을 쌓아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
+ 덧) 
책을 읽으면서 여러모로 마음이 복잡했다. 다만 아이디어를 간직한 것 뿐 아니라, 내 인생의 많은 선택들을 '그냥'이라는 이유로 한 게 많았기 때문이다. 고민하지 않고 살아온 결과가 지금의 나를 만든 것 같아 조금 슬펐다.





▼이전 편 보러가기▼

1편

https://brunch.co.kr/@hakgome/532


2편

https://brunch.co.kr/@hakgome/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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