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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마 Nov 16. 2023

[심리] 우리가 희망회로를 돌리는 이유?

대니얼 카너먼, 《생각에 관한 생각》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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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서 우리의 직관을 믿을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번 글에도 《생각에 관한 생각》에 나오는 개념을 활용해 쓸 예정이기에, 혹시 이전 글을 보지 않은 분은 아래 링크에서 보고 오시는 것을 추천한다. (물론 연속성이 있는 건 아니기에, 이 글만 보셔도 이해에는 무리가 없다.)

▼1편 보러가기

https://brunch.co.kr/@hakgome/532


같이 볼 콘텐츠, 《생각에 관한 생각》

알라딘

《생각에 관한 생각》은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최초의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이 쓴 첫 대중교양서다. 우리의 머릿속에서 생각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고, 직관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수많은 심리/사회 실험을 통해서 그 비밀을 쉬운 것부터 어려운 것까지 단계적으로 풀어나가는 책. 다만 책이 좀 두꺼워서 각오는 하고 읽어야 한다.


* 책의 모든 내용을 다루지 않습니다. 제가 읽고, 와닿은 부분 위주로 소개합니다.



인간은 이야기를 만드는 동물


지난 글을 복습해보면 인간의 머리에는 두 개의 시스템이 존재한다.
시스템 1은 저절로 빠르게 작동하며, 노력이 거의 또는 전혀 필요치 않고, 자발적 통제를 모른다.
시스템 2는 복잡한 계산을 비롯해 노력이 필요한 정신 활동에 주목한다. 흔히 주관적 행위, 선택, 집중과 관련해 활동한다.


본능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작동하는 시스템 1과 집중하고, 고민하고, 통제하는 시스템 2를 동시에 활용하며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그 중에서도 시스템 1의 힘은 강한데, 연상 작용을 통해 사람이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결정'해주는 역할을 한다. 시스템 2는 일종의 필터 같은 개념으로 검증하거나 수정하는 승인자의 위치에 가깝다. 그렇기에 지난 글에는 시스템 1이 작동하는 직관에 대해 우리는 의심할 필요가 있고, 보다 데이터에 기반해 생각해야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허나 그게 말처럼 쉽나. 노오오오오력을 해야 된다는데 무얼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가 싶다. 우리는 다시 본질적인 부분부터 생각해야 한다. 인간의 무한한 상상력, 그리고 시뮬레이션 능력에 대해서 말이다.

인간은 미래에 감지될지 모르는 위험을 '간접 경험'을 통한 직관으로 피할 수 있다. 화려한 버섯을 먹고 죽은 동료의 사례를 연상하며, 아무리 배고픈 상황이어도 화려한 버섯은 죽음을 뜻하는 것을 알기에 먹지 않는다. 이와 마찬가지로 겪어본 적 없는 상황들도 다른 경험, 현재의 기술수준을 파악해서 '예측'한다. 이 예측이 맞을지 틀릴지는 여러 번의 독립된 실험 데이터들이 쌓여야 확률이 나올 테다. 그렇게 납득할 만한 확률이 된다면 그건 하나의 확신을 걸만한 선택지가 된다. 허나 대부분 이 예측은 검증 절차를 거치지 않고 결정된다.

시스템 1은 '일관성'만큼이나 '논리'를 중요시 한다. 버섯 이야기처럼 과거의 데이터를 활용해 연상, 또 연상하여 대강 이러이러할 것이다 하는 예측을 내는데 이는 '느낌적인 느낌'에 가깝다. 《블랙 스완》의 저자 나심 탈레브는 이를 '서사 오류'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사람들은 단순하고 추상적이기보다 구체적이며, 운보다는 실력이나 어리석음 또는 의도에 더 큰 역할을 부여하는 이야기에 끌리고, 일어나지 않은 무수한 사건보다 일어난 몇 가지 눈에 띈 사건에 집중한다. 때문에 탈레브는 우리 인간은 과거를 설명하는 조잡한 이야기를 꾸며놓고, 그것을 진짜라 믿으며 자신을 끊임없이 속인다고 말한다.

요지는 우리는 과거를 '이해'하고, 미래를 '예측'한다고 믿지만, 그건 그냥 착각이라는 것이다. 이건 '결과론적'이라는 말과도 연결되는 것 같다. 2022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이 16강에 오른 건 '벤버지'의 빌드업 축구의 결실이다 라는 말은 '결과론적'으로 좋았기에 과거의 비판점은 싹 잊고 빌드업을 이식시킨 '명장'이라는 결론으로 '예측가능한 부분'이었다고 착각한다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설령 16강 진출에 실패했다면 '불통벤투의 똥고집'으로 주전 혹사와 전술의 단조로움으로 망했다고 평가될 게다. 이는 그저 직관이 개입된 사후평가일 뿐이고, 운의 영역이 개입된 예측 불가능한 세계의 한 사례이다. (물론 벤투 사단과 선수들의 실력과 노력을 의심하는 건 아니다!)

때문에 내 그럴 줄 알았어. 믿고 있었다고! 내가 그런다 했제? 하는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세상 모든 일을 '인과 관계'로만 풀 수는 없다. 천재지변이든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개입하든 우리가 사는 세상은 너무나 복잡하다. 그렇지만 인간의 시스템 1은 무엇이든 단순화시켜서 정답을 내고 본다. 그게 맞든지 틀리든지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함부로 '평가'하기 이전에 통계적으로 '의심'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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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희망회로를 돌리는 이유(feat. 주식 망한 썰...)


여담으로 이야기를 이어가자면, 지난해 나의 주식은 박살이 났다. 오르겠지, 오르겠지 하고 기다릴수록 처참히 반토막, 반에 반토막으로 깨졌다. 하... 이제 포기다 싶어서 팔면, 그때부터 한 달 내내 오르는 일도 있었다. 나의 경기 분석과 종목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탓도 있겠지만 패인을 분석하면 아무래도 '희망회로'가 가장 컸다.

코로나도 끝나가는데~ 세계 경기는 나아질 날만 남았는데~ 그 큰 회사들이 망하겠어? 대책들이 있겠지~ 하는 무지성한(?) 홀딩으로 손해는 누적되었다. 지금 복기해보면 무슨 자신감으로 근거없이 내 전재산을 때려박고 있었나 싶기도 하다. 이 또한 시스템 1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내가 포지션을 잡고 있는 한 나는 스토리를 만든다. '과거의 코로나, 리먼 사태, 닷컴 버블 이후에도 우상향 해온 나스닥은 다시 회복할 것이다.'는 시나리오를 짜고, 이에 3분기 경기 회복된다, 2023년 경기침체 없다 같은 긍정론자인 전문가들의 코멘트나 선물 거래를 하는 차트 분석가들의 상방 의견을 내 포지션을 유지해야 하는 당위로 만든다. 말그대로 느낌 매매, 직관으로 주식 거래를 했고 그 결과는 한 때 연고점 대비 70% 박살났던 테슬라 주가만 봐도 알 수 있다.

희망회로는 결국 '이야기를 완성시키고, 논리를 강화시켜 정답을 내려는, 근데 이제 데이터보다는 느낌에 가까운' 시스템 1의 직관 때문에 벌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전문가의 직관까지도 의심해보게 된다.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답니다! 하는 식의 예측들, 맞는 다면 신이 되고 아니면 아닌가보지 하고 넘어가는 그 치들의 직관은 유효한가?

《생각을 위한 생각》에서는 심리학자 클라인의 직관에 대한 이론을 알려준다. 그는 '재인 기반 결정' 모델이라는 결정 이론을 제시했다. 소방관의 육감, 체스 플레이어들의 신의 한 수 같은 '직관'은 모두 '재인'이라는 것이다. 재인, 사전적 의미로 과거에 경험한 것을 현재의 경험 속에서 다시 의식에 떠올리는 일이 직관의 본질이라는 뜻이다.
 
이론에 따르면 결정 과정은 시스템 1이 연상기억이 저절로 작동해 임시 계획이 떠오르는 첫 단계, 시스템 2가 그 계획이 효과가 있을지 의식적으로 접근하는 다음 단계로 진행된다. 클라인은 유명한 학자 허버트 사이먼이 말한 직관에 관한 정의를 자신의 설명에 인용한다.

상황에 신호가 숨어 있다. 전문가는 이 신호를 이용해 기억에 저장된 정보에 접근하고, 그 정보에서 답을 얻는다. 직관은 재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바둑기사들이 수없이 기보를 보며 복기하고, 공부하면서 실전에서 창의적인 수를 두는 실력으로 나아가듯, 모든 분야의 직관들은 반복을 통한 기억, 그리고 상황에서 적절한 정보를 찾아내는 것이라는 것이다. 전문가의 직관도 경험에 의한 판단(재인)에 가까운 것이지, 원시 부족 사회의 사제들처럼 신의 점지를 받아 경이로운 요술을 부리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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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리즘, 나만의 공식을 만들자


이처럼 직관이 시스템 1, 시스템 2의 적절한 역할 분배는 물론이고 경험에 근거한 재인의 힘이 작용한다는 것을 알고나면, 힘이 빠질 것 같다. 어느 날 찾아온 '느낌적인 느낌의 요정'이 새해부터 알 수 없는 힘으로 나를 좋은 곳으로 이끌 줄 알았는데 다시 노력엔딩이라니. 하지만 카너만은 그보다 다른 대안을 제시한다. 바로 알고리즘이다.

유튜브와 AI의 약진으로 이제는 익숙해진 용어 알고리즘은 한 마디로 설명하면 '공식'이다. 때론 인지적인 편안함을 위해 엉터리 희망회로를 만드는 시스템 1이 개입할 여지를 줄이는 것이다. 측정 요소를 5~6개 정도 설정하고, 이에 따라 평가를 해서 가장 높은 점수를 맞는 선택을 하면 된다. 물론 카너먼도 직관의 힘이 작용하는 예외를 두긴 했다. '주변 환경이 대단히 규칙적이어서 예측이 가능할 때', '오랜 연습으로 그 규칙성을 익힐 수 있을 때'는 직관도 능력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알고리즘은 대부분의 경우에서 통용될 수 있다. 다만, 이미 이야기를 논리적으로 구성하고 결론낸 시스템 1이 그것을 받아들이는데 느끼는 불편함을 극복해야할 뿐이다.

나도 이 글을 쓰면서, 책을 읽으면서 수없이 부정당하는 기분이었다. 천재 모먼트, 직관, 재능 같은 믿고 싶은 '내 시스템 1의 스토리'를 냉정하게 되돌아보면 말그대로 '그저 내가 믿고 싶은 것'이었지 진실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어쩌면 내가 믿고, 함께 박살났던 내 주식계좌처럼 내 스토리에 갇혀있다면 내가 만든 직관에서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내게 놓인 방법은 두 개다. 1편의 결론처럼 노오오오오오력으로 독서-기록-독서-기록을 통해 통찰력과 재인 능력을 키우는 것, 두번째는 '나만의 공식'을 만들어내 최적의 결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다. 여전히 전자가 멋있다고 생각해서 방법을 고수하고 있지만, 책을 읽으면서 다시금 나만의 '공식'을 만드는 편을 고려하게 된다. 

인간은 시스템 1과 시스템 2에 지배를 받는다. 관건은 막연히 엉터리로 만들어진 시스템 1을 얼마나 통제하는지인 것 같다. 나를 좀 더 객관적으로, 명확하게, 자세히 바라보며 진짜로 원하는 것에 닿으려 한다. 당연히 쉬운 일은 아닐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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