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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마 Nov 15. 2023

[심리]우리의 직관은 믿을 수 있을까?

대니얼 카너먼, 《생각에 관한 생각》①

unsplash.com

나의 소원, "저의 천재 모먼트를 발견하게 해주세요."


어릴 때부터 '천재'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특히 작가나 화가, 운동 선수 같은 예체능 계통의 소위 난사람들을 보면서 참 많이 부러워도 하고, 동경도 했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그들을 노력보다는 어떤 '직관', '센스', '영감' 같은 순간적인 반짝임을 그들을 천재로 만든 것이라고 단정지어 생각했었다. 내게는 그런 예민하고 날카로운 감각은 어른이 되어서까지 찾기 어려웠고, 스스로를 둔재나 범재라고 인정하는 게 때론 억울하기도 했다.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을 수록 '노력'이나 '지속하는 힘'의 위대함을 느껴가곤 있지만 그래도 나는 '직관'의 힘만은 노력이나 연습으로는 극복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더랬다. 그래서 새해가 될 때면 나는 우습게도 이런 소원을 빌었다. "저의 천재 모먼트를 발견하게 해주세요." 올해도 지난 동지부터 빌었다. 하지만 하늘에 빈다고 직관력이나 인사이트가 갑자기 주어지진 않더라.

그래서 작전을 바꿔보기로 했다. '발견'이 아니라 '발굴'하는 방향으로, 측정 가능한 노력으로 '직관력'을 얻어서 천재에는 미치지 못해도 수재까지는 가보자고 말이다. 프레임에 관한 책2024 트렌드 공부사람들이 소비하는 콘텐츠 키워드 같이 가열차게 읽고 공부하면서 우선은 '통찰력'부터 키우고 있는 요즘이다. 행동을 바꾸니 생각이 조금씩 달라지는 걸 실감하면서, 이번에는 좀 더 본질적으로 '생각'을 어떤 방향으로 바꿀까 고민하는 찰나에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의 운영자분이 인생책이라고 추천한 《생각에 관한 생각》을 만나게 되었다.

알라딘


같이 볼 콘텐츠, 《생각에 관한 생각》


《생각에 관한 생각》
은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최초의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이 쓴 첫 대중교양서다. 우리의 머릿속에서 생각은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고, 직관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수많은 심리/사회 실험을 통해서 그 비밀을 쉬운 것부터 어려운 것까지 단계적으로 풀어나가는 책. 다만 책이 좀 두꺼워서 각오는 하고 읽어야 한다.

* 책의 모든 내용을 다루지 않습니다. 제가 읽고, 와닿은 부분 위주로 소개합니다.

어떻게 하면 내 생각을 바꿀 수 있을까. 어떻게 마인드를 재설정해야 내 직관을 키울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시작된 독서는 조금은 이상한(?) 방향으로 풀려갔다. 인간은 생각보다 주관이 뚜렷한 동물이 아니라는 깨달음부터 내가 쌓아왔던 환상이 조금씩 금가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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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머릿속 두 가지 시스템


위 사진을 보면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아마 고민의 여지 없이 '여자가 화가 났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아마 여자는 크게 소리를 지르거나 상대를 비난하는 말을 쏟아낼 것이라는 다음 행동도 예감할 수 있다. 이런 감각은 어디서 오는 걸까? 그렇다면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첫 장에 제시한 다른 문제도 보자.

17 X 24


이 문제가 곱셈 문제라는 건 여자의 감정상태를 파악하듯 바로 파악할 수 있지만, 암산으로 답을 구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예감과는 다르게 천천히 구구단을 떠올리고, 한 단계씩 답을 맞추어간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길을 걷다가도 멈추게 되고, 가만히 서서 느리게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똑같이 보고, 인식하고, 판단하는 과정인데 왜 두 가지 문제에 대한 반응은 달라지는 걸까?

저자 대니얼 카너만은 이를 심리학자 키스 스타노비치와 리처드 웨스트가 처음 제안한 용어 '시스템 1'과 '시스템 2'로 설명한다.

시스템 1은 저절로 빠르게 작동하며, 노력이 거의 또는 전혀 필요치 않고, 자발적 통제를 모른다.
시스템 2는 복잡한 계산을 비롯해 노력이 필요한 정신 활동에 주목한다. 흔히 주관적 행위, 선택, 집중과 관련해 활동한다.


이처럼 우리의 머리에는 두 가지 시스템이 공존한다. 육감적으로 저절로 느낄 수 있는 시스템 1, 그보다 느리지만 고민하고 생각하고 스스로 통제하려는 시스템 2는 누구에게나 있다. 대개의 사람들은 스스로를 시스템 2로 움직인다고 믿는다고 한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생각보다 '생각하고 행동'하지 않는다. 대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받은 영향들로 합리적인 의사선택을 했다고 착각한다. 이를테면 긍정적인 단어를 먼저 보고, 나중에 보고의 차이로 사람에 대한 해석도 달라지는 게 그렇다. 가상의 인물 제인과 딜런이 있다고 가정하고, 그의 성격을 묘사하는 단어를 늘어놓았다. 둘 중 어떤 사람이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가?

제인: 지적이다, 성실하다, 충동적이다, 비판적이다, 완고하다, 시기심이 강하다.
딜런: 시기심이 강하다, 완고하다, 비판적이다, 충동적이다, 성실하다, 지적이다.


두 사람을 나타내는 말들은 배열만 다를 뿐 같은 단어들이지만,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은 제인을 딜런 보다 더 친근하게 생각하는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앞에 나온 단어의 특성이 뒤의 단어의 의미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지적인 사람의 완고함은 어딘가 타당해 보이지만, 시기심이 있는 사람이 완고하기까지 하면 어딘가 위험해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유튜브, 인터넷 뉴스, 하다못해 주변 사람들의 말 한 마디에도 영향을 받고,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어림짐작을 한다. 그 짐작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검증된 사실은 아닌지라 팩트체크가 필요하지만, 우리의 머리는 직관적으로 믿는다. 그 이유는 '시스템 1'이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연상 체계를 자연스럽게 작동하기 때문이다.

시스템 1의 연상하는 힘과 일관성


맹수의 발톱과 이빨, 새의 날개, 초식동물의 빠른 발 없이도 인간이 지구의 지배자가 된 건 순전히 '머리' 때문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상상하는 능력, 경험하지 않은 것을 간접 체험하고 원인과 결과를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능력이 생존의 확률을 높였다. 가령 화려한 색의 버섯을 먹은 동료가 죽은 것을 보면 머릿속에는 인과관계가 접수된다. '화려한 버섯을 먹는다 -> 죽는다', '내가 화려한 버섯을 먹는다 -> 내가 죽는다' 이러한 생각의 과정이 그저 '화려한 버섯'을 보는 것 만으로도 바로 연상 체계가 작동되어 행동을 저지시킨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노력해야할 일은 없다. 그냥 저절로 빠르게 되는 것이다.

문제는 시스템 1이 '저절로 빠르게 되는 것'에 있다. 생각할 것 없이 빠르게 가는 것에는 편향이 생기기 쉽기 때문이다. 특히 의도적으로 특정 키워드나 장면을 반복해서 노출시킨다면 사람들의 머리에는 잔상이 남는다. 친숙함은 진실과 혼동되기 마련이고, 가짜 뉴스를 믿게 되는 것도 시스템 1의 직관에 따라 별 생각없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에 가깝다.

그 과정에서 또한 중요한 것이 '일관성'이다. 우리의 뇌는 인과 관계와 마찬가지로 일관성을 확인할 때 편안함을 느낀다고 한다. 가령 아래 단어들을 본다면

종이 문학 서점
이쑤시개 지하철 생수


우리는 '책'을 떠올릴 수 있는 위쪽 세 개의 단어를 별다른 연관을 찾기 어려운 아래 단어들보다 더 편안하게 느낀다. 그래서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도 일관적이라면 신뢰가 생기고, 자연히 필터 없이 믿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일관성'이 꼭 진실된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거짓 선동이든 가짜 뉴스든, 프레이밍한 정치적 어젠다든 듣는 사람은 편하게 접수할 수 있지만, 그것이 편향을 만드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

이럴 때 시스템 1의 생각에 브레이크를 잡고 곰곰이 생각해보는 역할을 하는 것이 '시스템 2'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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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직관을 믿지 마세요


어떤 사람들은 매순간 자신을, 세상을 한 번씩 의심해본다. 모두가 '그냥 맞아'하는 직관에 따라 나아갈 때 '이게 맞나?' 따져보는 것이다. 시스템 2는 통제자에 가깝다. 객관적으로 따져보고 자아비판을 하면서 체크를 한다. 허나 시스템2가 온전히 돌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선순위는 시스템 1에 있기에 우선 믿음으로써 편안함을 느낀다면, 시스템2는 데이터에 따라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일관성'을 유지하는 방향의 정보를 수집해 확인하고 넘긴다. 위험방지 시스템이 구축되어 필터처럼 한 번 걸러지는 개념과는 다른 셈이다.

그럼에도 시스템 2가 시스템 1의 나태함(?)을 거스르고 객관적으로 내 앞에 벌어지는 일을 계산해 판단한다면, 우리는 세상을 바로 볼 수 있다. 다만, 머리를 많이 쓰면 당이 떨어진다는 표현처럼 쉽게 피로해지고 지쳐서 판단을 유보하게 된다. 그렇기에 하루에도 사방에서 밀고 들어오는 정보들을 다 시스템 2로 거르고 판정하려면 온 에너지를 다 써야할 테다. 시스템 1의 직관을 따라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군인이나 운동 선수들의 경우는 반복 훈련을 통해 자신의 퍼포먼스를 높인다. 그만큼 경험이나 속된 말로 짬바에 의존하기 쉽다. 요즘에야 데이터와 스탯을 기반으로 연구하고, 적용해서 과학적으로 트레이닝 하겠지만, 어느 부분에서는 여전히 '느낌적인 느낌'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카너만은 자신이 공군 교관들의 교육을 맡았을 때 일화를 들려준다.

그는 생도들에게 칭찬을 통해 자신감을 키워주기를 권장했는데, 교관들은 '현장은 다르다'는 식으로 반응했다고 한다. 잘하는 생도들을 칭찬하면 다음 번에 실력이 떨어지기 마련이었고, 못하는 생도를 다그치면 다음 번에는 실력이 올라갔다고 말이다. 카너먼은 교관들에게 눈을 감고 원 안에 동전을 두 번씩 던져보라고 제안했다. 그리고 원의 중심에서 얼마나 가까운지 1회차, 2회차에 걸쳐 자로 쟀다. 결과는 1회차에 제일 가깝게 나온 사람도 2회차에는 못하게 되었고, 1회차에 중심과 멀었던 사람도 2회차에는 훨씬 가깝게 나왔다. 결국 사람은 '잘할 때도 있고, 못할 때도 있다.' 운이 좋아서 처음에 잘 되더라도 그것이 그의 온전한 실력은 아니다. 반대로 못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다음에도 못하란 법은 없다. 그저 '평균회귀', 여러번 반복할수록 평균값으로 수렴할 뿐인 것이다.

시스템 1은 의심하지 않고, 믿고 싶은대로 믿는다. '그래왔으니까. 그렇게 하는 게 맞으니까.'라는 경험을 베이스로한 직관을 온전히 신뢰하는 건 편향으로 더 나아질 기회를 스스로 박탈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경험이 운이 좋은 경우만 연달아 나왔다면 자신의 실력을 착각할지도 모른다. 반대로 운이 안 좋은 경험만 쌓이다보면 스스로를 비난하고 저평가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시스템 2를 활용하여, 통계적으로 사고해야 한다. 직관은 인지적 편안함을 가져다 주지만, 우리를 키우는 건 결국 불편이다. 귀찮고 번거롭고 고단할지어도 정보를 얻는 방법도, 내 것으로 만드는 방법도 계산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주관(이라고 믿지만 실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일 확률이 높은 것)에서 한 발 벗어나 고민하고, 생각해야만 생각한대로 살 수 있다. 스노우폭스의 김승호 회장이 한 말처럼 '스스로 상상하지 않으면 남들이 한 상상 속에 살 수밖에 없다.' 

물론 직관을 완전히 부정하는 건 아니다. 노력을 통해 직관의 힘을 키우지 않고 쉽게 그것에 기댄다면, 우리는 끌려갈 뿐이라는 의미다. 내 직관을 믿고 그냥 사는 것보다, 여러 번 반복해서 시도해보면서 나온 결과값을 바탕으로 내 평균값의 실력을 키우는 게 더 중요한 것 같다. 천재 모먼트는  초고의 신처럼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거나 날 때부터 갖고 있는 건 아니더라. 외려 불편을 감수하고 키우는 것에 가깝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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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다시 노오오오력인가…


직관이 에디슨의 영감처럼 번쩍! 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는 과정은 나의 게으름을 확인하는 과정 같아 괴로웠다. 그렇다면 다시 노오오오오력을 해야 되는 걸까. 애석하지만 내가 내린 결론은 '그렇다'이다. 남의 성취에 대해 '노오오오력이 부족해'라고 말해선 안 되지만, 스스로가 느낌적인 느낌에만 기대어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이뤄지지 않는다. 나는 더 이상 직관의 요정이 내게 찾아온다는 가정은 하지 않기로 했다.

올해는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쓰면서 보다 더 '내가 생각한대로 살기'를 바란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내 것이라 착각하지 않고, 편향되어 한 쪽에 갇히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해서 나의 중심을 잡아갈 것이다. 이번 글에서 못 다룬 이야기들은 ②편으로 이어서 다룰 예정이다. 



다음 편 보러가기 

https://brunch.co.kr/@hakgome/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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