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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마 Nov 28. 2023

[자기계발]미래는 우리가 얼마나 기대하는지에 달려있다

《기대의 발견》外 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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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이 사람을 만드는가, 사람이 환경을 만드는가


진부한 이야기로 시작해보자. 코이의 법칙이라는 말이 있다. 비단잉어의 종류 중 하나인 코이는 자신이 처한 환경에 따라 성장이 달라진다고 한다. 작은 어항 속에서 자란 개체는 5~8cm 남짓의 작은 크기로 살아가지만, 연못에서 자란 것들은 15~25cm, 강물에서 자란 건 100cm도 넘게 크기도 한다. 다시 말해, 주변 환경이 어떤가에 따라서 같은 날, 같은 부모에게 태어난 잉어라도 성장기대치에 차이가 발생한다는 말이다.

인간사에 비유를 하면 사람도 자신이 처한 환경에 따라, 사는 방식에 따라 더 큰 사람이 될 수도, 고만고만한 피래미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나는 코이의 법칙을 좋아하지 않았다. 개천에서 용 안 나는 시대에 좋은 수저 물고 태어나지 않으면 노력해봐야 송사리밖에 안 된다는 말로 들렸으니 말이다. 다만 시간이 지나며 하나 깨달은 점이 있다. 인간의 그릇 크기를 정하는 데 환경이 영향을 미치긴 한다는 것을 말이다.

환경 탓, 수저 탓을 하고자 하는 건 아니다. 나는 운 좋게도 서울로 대학을 다니게 되어 문화계급을 점프업할 수 있는 기회를 받았다. 처지가 고만고만한 동네친구들과는 다른, 넓은 시야를 가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들이 나와는 다른 계급으로 살아왔다는 걸 깨닫는 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학력은 업그레이드 되었지만 나의 생활이 드라마틱하게 나아지진 않았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학비 걱정을 하고, 졸업 후 무얼 해야할지 고민을 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대학의 재미라거나, 20대니까 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여유같은 건 찾기가 어려웠다. 애석하게도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5년차가 되어서도 크게 나아진 점은 없었다.

대학에서 처음 충격을 받은 후 10여 년이 지났다. 본의 아니게 직장을 다니다 마음의 병이 와서 회사를 관두고,  요 1년간은 그 어느때보다도 나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나는 계속해서 생각했던 것 같다. '난 열심히 살았는데, 뭐가 잘못되었지. 내가 그렇게 큰 욕심을 부렸나. 그 정도의 손톱만한 욕심을 부리는 것도 내가 하면 잘못인건가. 왜 나한테만 이렇게 가혹하지.' 모든 게 원망스러웠다. 작은 어항에 살던 피래미는 분수에 맞게 피래미 정도만 바라며 살아가야 하는 건가. 왜. 왜. 왜.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번쩍하고 문제의 퍼즐이 맞춰졌다. 답은 결국 내 안에 있었다. 내가 한 일은 그저 인정하는 것이었다. 내 처지를, 내 과거를, 내 과오를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책임이 내게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제야 나는 나 스스로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누가 네가 그렇게 살라고 강요한 적이 있니? 딱 그 정도로 살아가라고 한 적이 있니? 그건 다 네가 만든 게 아니니?' 맞는 말이었다. 이제는 더 이상 세상을 탓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받아들여보기로 했다.

분명 환경은 인간의 크기를 정하는데 영향을 끼친다. 우리는 부여받은 환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나는 막연하게 '조건'이 문제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 안의 나에 대해 오래 생각하고 내린 결론은 '태도'가 환경을 결정한다는 것이었다. 바로 '자신의 한계를 설정하는 방식'이 어떠냐에 따라서 사람의 환경은 달라지고, 더 나아가 그릇의 크기도 달라진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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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의 발견》은 과학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롭슨이 쓴 교양 심리학서다. 이 책은 최신 심리학 연구들과 실험들을 토대로 플라세보 효과와 노세보 효과에 대해 이야기한다. 데이터에 기반해서 '기대'가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 과학적으로 설명해 준다.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는 스물 아홉 살 생일, 보잘 것 없고 망한 것 같은 자신의 인생을 비관해 자살을 하려던 저자가 이왕 죽을 거 서른 살에 '라스베이거스에서 멋진 2주일을 보내고 죽자.'고 다짐하고 벌어진 1년의 이야기를 담았다. 계약직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던 파견 직원인 그는 결국 라스베이거스에 도달할 수 있었을까. 다만, 빠르게 돈을 벌기 위해 호스티스로 일을 하며 다소 일본스러운(?) 음습한 전개가 있어 호불호가 있을 책.

《완벽한 공부법》은 유튜브 채널 스터디언의 신영준 박사와 고영성 작가가 쓴 공부법에 관한 책이다. 교육학, 인지심리학, 뇌과학, 경제학 등의 이론들을 인용해 우리가 왜 공부를 해야하는지, 공부를 통해 어떻게 성장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파트는 자기 자신의 현재를 진단하는 '메타인지' 능력과 '성장형 사고방식'의 중요성이다.

*책의 전체 내용을 다루지 않습니다. 임팩트를 준 부분만 추려서 쓰고, 제맘대로 내용을 편집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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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부터 나는 바라지 않았다. 더 나아질 내일도, 언젠간 롤모델처럼 무언가 되어있을 거라는 기대를 전혀 하지 않았다. 그게 나의 패착이었다. 백날 천날 사주/타로/별자리 유튜브를 보거나, 끌어당김의 법칙이나 자기계발을 해도 내 삶이 한 발도 나아가지 못한 까닭은 어쩌면, 원하는 것이 없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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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형 사고방식 VS 성장형 사고방식


셀 수도 없는 자기계발의 대가들이, 성공한 사람들이 말한다.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그것만을 생각하며 그것을 가질 때까지 간절히 바라라고. 그러다보면 언젠간 이루어진다고.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아마도 간절히 빌었지만 이루어진 경험을 해보지 않아서였을 게다. 실망이 쌓이며 어차피 이루어지지도 않을 거 빌어서 무엇하나 하며 어느 순간부터는 바라지 않았다.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자. 하다보면 언젠간 빛을 보는 날이 올 것이다 생각했더랬다. 결과는? 열심히는 살았지만 남은 건 그래도 내가 부단히 노력했구나 하는 숱한 흔적들뿐이었다.

우리의 뇌에는 '신경가소성'이 있다고 한다. 뇌가 의식적으로 자신이 유리한 방향으로 경로를 수정하게끔 방향을 튼다는 특징이 있기에, 《시작의 기술》의 저자 개리 비숍은 '나는 ~라고 단언한다.'라고 선언하며 의도적으로 뇌를 변화시키라는 제안을 했다.

이 말은 성공한 사람들이 말하는 '명확한 목표'와 같은 맥락 위에 있다. 원하는 '목적지'를 설정하고 부단히 바라고, 그것에 걸맞는 행동을 하면서 신경가소성을 통해 '원하는 목표를 이룬 나'로 의식적으로 바꿔나갈 수 있다는 의미다. 솔직히 말하면 이 모든 것들이 다 결과론적인 말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먼저 들었다. '만약 그렇게 빌고 생각했는데도 성공하지 못하면요?'라는 질문들에 그들은 다들 비슷하게 '그건 당신이 성공한 순간이 아닌 실패를 상상했기 때문이에요.'라는 답을 했으니 말이다. 그러다 문득, 내가 전제를 잘못 설정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튜브 스터디언의 신영준 박사와 고영성 작가가 쓴 《완벽한 공부법》에는 고정형 사고방식과 성장형 사고방식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전자는 사람의 지능과 성격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방식이고, 후자는 사람은 지금보다 더 성장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렇기에 고정형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자기 자신이 가진 명확한 한계를 인지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가능성을 판단하고 행동을 옮긴다. 그에 반해 성장형 사고방식을 가진 이는 나 자신이 더 커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노력을 통해 성장을 도모한다.

요지는 우리가 고정형 사고방식으로 가능성의 천장을 정해놓고 '할 수 있는 것 안에서 행동'하는가, 성장형 사고방식으로 '무한한 성장의 여지를 열어놓고 행동'하는가에 따라 정하는 목표의 위치도 달라진다.

명확한 목표란 '내가 성장할 가능성을 전제로 닿을 수 있는 곳' 이어야지, 나는 여기까지 밖에 안되지만 그래도 꿈이라도 꿔보자 하며 망상하는 '남 얘기'여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나는 '고정형 사고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기에 내가 생각한다고 뭐 달라지겠어 하는 냉소가 몸에 배어있었다. 목표를 정하지 않은 것, 아니 정하지 못한 까닭은 내 사고방식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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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가 이끄는 미래의 모습은?


나는 앞으로도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을 전제로 다시 목표점을 잡아보았다. 여기에 바로 '기대'의 힘이 필요했다.

기대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일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기다림.'이다.

다시 말해 원하는 결과(목표)가 있어야 '기대'라는 단어가 성립된다. 명확한 목표라는 의미는 베스트 A안을 상상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대의 발견》에 따르면 사람은 자신이 기대한 것을 믿고 싶은대로 보거나 듣는다고 한다. 그 방식은 때로 집중한 것을 제외한 다른 것을 지운다거나, 무의식에 남아 있는 잔상이 만들어내는 환각을 보는 등 다양하다. 달리 말하면 우리가 상상한만큼 뇌는 바삐 움직여 신경가소성을 통해 원하는 방향으로 길을 터준다는 의미기도 하다.

그러나 역으로 외부의 요소들로 인해 스스로에게 잘못된 기대를 심기도 한다.

영국의 신경과학자 지나 리폰은 성 역할에 대한 성인들의 기대가 아이의 뇌를 태어나는 순간부터 변화시킨다고 주장한다. 그는 아기를 "사회적 스펀지"라고 묘사하며, 부모, 교사, 친구가 보내는 아무리 미묘한 신호라도 아이들의 자신감을 북돋아주거나 불안감을 느끼게 함으로써 다양한 영역에서 능력의 발달을 가속화 할 수도, 저해할 수도 있다고 강조한다.
(…)
뇌 스캔에서 나타나는 해부학적 차이는 타고난 성차의 증거와는 거리가 멀며, 오히려 문화적 성 편견이 반영된 결과라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뇌는 당연히 우리가 속한 환경과 주로 사용하는 능력에 따라 반응한다.
(…)
기대 효과는 이처럼 특정 학문 영역에서 성별에 따른 적성 차이가 두드러지는 원인이 될 뿐만 아니라 경제적 불평등의 악영향을 심화시키기도 한다.
《기대의 발견》 中


사회속에서 길러진 인간은 교육이나 주변인들 같은 환경의 영향으로 타인들의 기대에 맞는 성장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 그것이 긍정적인 영향만 끼친다면 좋겠지만, '남자는 수학과 공간지각 능력이 강점이고, 여자는 문학과 공감능력이 강점이야.' 같은 통념을 들으며 자란다면 개개인의 천성과는 다르게 기대에 맞춰 신경가소성이 작동해 성별에 따른 적성 차이를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서론에 언급했던 '자신의 한계를 설정하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경제적인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 사람은 위축된다. 당장 갚아야할 채무들과 지어야할 의무들을 고려하다보면 선택권이 줄어들 수밖엔 없다. 누가 보아도 베스트인 A안이 있더라도 돈이 없어서, 여유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차선인 B를 선택하다보면, 나중에는 차선이 최선이 되고 어쩔 수 없이 차차선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열심히 살아도, 최선을 다해도 다운그레이드 되는 상황을 보면서 나는 좌절했더랬다. 그리고 이제는 왜 내 삶이 그런 방식으로 돌아갔는지 알 것 같다.

차선을 선택하면서 '나는 A는 쳐다볼 수 없는 사람, B가 내 분수에 맞는 선택'이라고 생각했고, 그게 내 한계라고 나는 결정했기 때문이다. 확률적으로 내 주변의 환경은 선택하지 않거나 차선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았고, 독립시행으로 비슷한 경험을 반복하며 내 안에 '기대해봐야 실망만 함'이라는 로직이 쌓여간 것일 게다. 그러나 환경의 영향은 딱 거기까지다. 환경을 극복하고 자수성가한 예외들도 있으니 말이다.

만약 내가 야망을 부리면서 A를 반드시 갖고 만다고 다짐하며 살아갔다면 그 결과 값은 달라졌을 게다. 대학에서 만난 나와는 '다른 사람'들과의 차이는 '마땅히 가져도 되는 존재'로 자신을 인정하느냐 없느냐에 있었다. 마인드를 고쳤다면 달라졌을 건 자명하지만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면, 그런 기대를 품는 것조차 사치라고 생각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자신이 그렇게 생각해도 되는 줄 모르고 살다 죽고 말 것이다.

이처럼 평범한 개인을 엄청난 부자로 만들 수 있는 것도, 평생 작은 어항에서 피래미로 살아가게 하는 것도 기대의 힘이다. 지금까지 '기대없음'이 사람을 어떻게 작게 만드는가를 살펴보았으니, 이어서 '기대'가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도 한 번 살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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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 생일은 라스베이거스에서 죽기로 결심하다


*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의 주인공 아마리는 별볼일 없는 스물 아홉의 파견직원이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정직원으로 취직했던 회사에서 적응하지 못해 1년 만에 퇴사한다. 그에게는 막연한 보험이 있었다. 사귀고 있던 남자친구랑 결혼해서 적당히 살아가면 되지 않을까하는 마음. 그러나 그가 자신이 사귀고 있는 다른 사람이 있다며 결별을 요구하면서 계획이 다 무너져버린다.

사실 주인공에게 계획은 없었다. 공부하라니까 공부했고, 대학가라니까 대학을 갔고, 취직하라니까 취직을 했을 뿐 원하는 목표를 스스로 세워본 적이 없었다. 정직원 자리를 때려치고 나온 후로는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수록 취업문은 점차 닫혀만 갔다. 계약직으로 몇 년, 그보다 못한 파견 직원으로 몇 년을 일하다보니 어느새 스물아홉이었다. 스물아홉 생일날 그는 3평 자취방에서 편의점에서 사온 조각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생일 축하노래를 부른다.

불을 끈 후에 케이크에 달려있는 딸기를 먹으려다가 놓쳤고, 바닥에 떨어졌어도 금방 씻어 먹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싱크대에서 그걸 씻다가 돌연 눈물이 터졌다. '왜 이렇게 사는 거지. 내 인생 왜 이렇게 되었지.' 마침 식칼이 보였고, 죽어야겠다고 다짐하다가 무서워서 칼을 놓쳐버린다. 

나는 스물아홉이다.
나는 뚱뚱하고 못생겼다.
나는 혼자다.
나는 취미도, 특기도 없다.
나는 매일 벌벌 떨면서 간신히 입에 풀칠할 만큼만 벌고 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
내가 이렇게도 형편없는 인간이었나?

(…)

나에게 죄가 있다면 그건 아마 '하고 싶은 게 없다'는 죄일 것이다.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中


병으로 입원한 아버지, 병간호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어머니.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것들로 점차 바닥으로만 추락해가는 자신의 삶. 자신이 도대체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렇게 되었을까. 자신의 삶을 톺아보던 그는 '살아갈 용기도, 죽을 용기도 없이' 이도저도 아닌 자신을 비난한다. 그러다가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라스베이거스'를 여행하는 프로그램이 나와 그걸 보게 된다.

화려하게 차려 입은 연예인들이 호텔과 레스토랑을 오가고, 아울렛에서 쇼핑을 하며, 카지노에서 도박을 즐기는 호화로운 모습을 보면서 그는 문득 '저 사람들…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자신의 현실과 너무도 대비되는 라스베이거스는 결코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장소였다. 한참을 멍하게 TV를 보던 그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너무도 낯선 느낌, 너무도 생뚱맞은 느낌… 그것은 난생처음 '뭔가를 해보고 싶다'는 간절한 느낌, 가슴 떨리는 설렘이었다. 갑자기 내 속에서 너무도 낯선 욕망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좋다, 단 한 번이라도 저 꿈같은 세상에서 손톱 만큼의 미련도 남김 없이 남은 생을 호화롭게 살아보고 싶다. 단 하루라도!'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中


그렇게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보고 싶은' 목표를 설정한 그는 1년 후 어떻게 되었을까?

단 2주일을 묵더라도 200만엔이 필요한 여행경비를 한낱 파견 직원인 그가 월급만으로 모을 수 있었을까? 결코 그럴 수는 없었다. 그는 '라스베이거스'를 가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어차피 죽기로 결심한 마당에 더 부끄러울 것도, 못할 일도 없었다. 빠르게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호스티스를 떠올렸고, 며칠 후 긴자의 클럽을 다니면서 구직을 했다.

일단 목표를 정해두고 움직이면 길이 트이기 마련인가 보다. 일손이 부족한 작은 클럽이 그를 고용했고, 그렇게 낮에는 파견 직원- 밤에는 호스티스 투잡생활을 시작한다. 그는 이어서 원래 자신이라면 결코 안 했을 일들에 도전한다. 누드모델을 하고, 모르는 외국인들에게 말을 걸고, 영어 공부를 하고, 블랙잭에 대해 공부한다. 

'목표'를 정하고, '자신이 라스베이거스를 누비는 상상을 매일 하며', '행동력으로 돈을 모은' 결과 그는 서른살 생일에 맞춰 꿈에 그리던 라스베이거스의 한 호텔에 묵게 된다. 죽기 위해 다량의 수면제도 챙긴채로 말이다. 결말은 책을 읽으며 직접 확인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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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우리가 얼마나 기대하는지에 달렸다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의 주인공 아마리는 호스티스 생활을 하며 만든 가명이다. 그 뜻은 '나머지, 여분'이라고 한다. 스스로 부여한 1년 치 여분의 삶 속에서 그는 결국 기대하던 목표점에 도착한다.

이렇게 보면 사람의 인생은 '원하는 목표'를 설정해두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굴곡있는 여정인 것 같다. 사회생활에서 튕겨져나와 빌빌거릴 때도, 세상 무서울 것 없이 승승장구하는 시절도 그저 정해진 결과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일 뿐인가 싶다. 나의 문제는 '원하는 목표 지점'을 정하지 않은 것이었고, 코이의 법칙을 부정하면서도 고정형 사고방식으로 코이의 법칙 속에 내 삶을 풀어놓았던 것이었다.

세 권의 책을 경유해 도달한 결론은 어쩌면 너무 당연한 이야기들일지도 모른다.
'목표를 세우고, 성장한다는 믿음을 갖고, 행동해서, 도착해라'라니 이 말을 누군들 모르겠는가.

나는 이 글을 쓰면서 그 뻔한 '결론'을 목표점으로 잡고 끝까지 쓸 수 있다는 믿음으로 몇 시간 동안 타이핑하여, 마감에 이를 수 있었다. 당장 내 인생을 뒤집을만한 극적인 변곡점 같은 경험을 한 건 아니지만 '내가 글을 쓰듯이 인생 목표를 잡고, 기대와 함께 미래를 도모한다면 닿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맨땅에 헤딩을 하듯이 수입도 없이 연재를 하고 있는 소설들, 부단히 읽어도 생산성이 나오지 않는 독서들로 매일을 채워가는 요즘, 슬럼프란 이런건가 하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더랬다. 어쩌면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기에 '아마 안 될 확률이 높겠지만…'이라고 한 자락을 깔고 기대 없이 '안 될 미래'를 만들고 있던 건 아니었을까.

꿈을 말하는 것이 어쩐지 면구스러워진 건, 스스로에게 기대를 꺾어버린 탓일 테다. 이젠 더 잃을 것도 없는데 속는 셈치고라도 꿈을 꿔볼 생각이다. 1차 목표는 원고료로 100만원을 버는 것, 2차 목표는 소설 정식 연재를 따내거나, 단행본 출판 계약을 하는 것이다. 이제 내가 해야할 건? 뭐긴 무엇이겠는가. 마감이겠지. 이요마라는 이름을 걸고 다시 마감을 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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