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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마 Nov 30. 2023

[사회]슬럼프에 빠진 건, 어쩌면 지위 게임 때문일지도

윌 스토, 《지위 게임》

pixabay.com

슬럼프에 빠진 이유는 무엇일까?


얼마 전만해도 내 머리는 꽃밭이었다. 어디로든 갈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며, 오랫동안 간직했던 '글로 먹고 사는 삶'도 금방 이룰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러한 긍정은 오래가진 못했다. 공모전에 오랜시간 생각했던 이야기를 써서 제출하고 나선 글을 쓰기가 어려웠다. 내 삶에 큰 일이 생겼다거나, 글을 못 쓸만한 사건이 있던 건 아니었다. 다시 이유 모를 슬럼프가 시작되었다.

동해로 글쓰기 캠프를 다녀온 후, 그곳에서 구상한 이야기를 소설로 쓰려 했지만 실패했다. 2월에 했던 방식 그대로, 같은 장소에서 해보았지만 도무지 효율이 나지 않았다. 왜 안 되지. 왜 하던대로 해도 안 되는거지. 왜. 이유를 찾아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답은 뜻밖의 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친구 A를 만나며 재미로 봐준 타로카드에서였다.

직장을 다닐 때 사수의 어깨너머로 배웠던 '야메 타로'는 아이스브레이킹을 하기에 굉장히 좋았다. 새로 들어간 직장에서도 나는 어색함을 깨기 위해 타로카드를 들고 다니곤 했고, 카드에 손 때가 타도록 이 사람 저 사람의 고민을 들어주곤 했다. 그들도 딱 브레이킹 할 정도의 가벼운 고민을 가져왔기에 부담이 없었다. A의 운세를 봐준 건 그저 재미에서였다. 그도 '들고 있는 주식 뺄까?'라거나 '다른 부서로 옮길까?' 정도의 질문을 했기에 '답은 네 안에 있단다.'라는 식으로 풀어주며 깔깔거리다가, 마지막으로 내 상황에 대한 점을 보았다.

내가 물은 건 '이번 달에 발표되는 공모전 당선될까요?'였다. 사실 전부터 이 질문에 대해 수없이 혼자 점을 쳐봤고, 좋은 괘가 나오면 '그래 잘 될거야!'하는 생각을, 나쁜 괘가 나오면 '이건 점일 뿐이야.'하면서 회피를 했던 기억들이 지나갔다. A가 섞어준 카드덱에서 4장의 카드를 뽑으면서 제일 먼저 만난 'Tower'카드를 보고 마음이 식었다.

정확한 해설은 아니지만, 그 카드가 의미하는 바는 '무너지는 바벨탑'
공든 탑이 무너지거나, 파탄이나거나, 망해서 새로 시작해야할 때 나온다고 알고 있었다. 그 카드를 보니 딱 정리가 되더라. 나는 될지 안 될지는 이미 심사위원들과 출판사에 손에 달린 공모전에 한 달 째 마음 졸이고 있었고, 산란한 마음을 견디지 못해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던 것이다. 그 마음을 읽었는지 A는 내게 이렇게 말하더라. '딱 네 모습 같네.'
 
나는 바꿀 수 없는 것에 과하게 신경을 세우고 있었지만,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는 고려하고 있지 않았다. 그냥 되겠지~ 하는 막연한 마음과 난 아무 것도 아니야. 하는 자괴감이 교차될 뿐이었다. A의 말마따나 '공은 넘어 갔으니 결과 나올 때까진 그냥 놀아.'가 정답일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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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위 게임》은 베스트셀러 작가 윌 스토가 분석한 세상을 보는 툴 '지위'에 대한 이야기다. 인간의 행동 방식, 삶의 이유, 폭력의 원인 등 다양한 행태를 '지위'라는 키워드를 통해 분석하고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스토리 작법서를 쓴 작가여서 그런가 사회학적 분석보다는 '스토리텔링'에 가깝게 자신의 논지를 풀어 읽기에 쉽다.

*책의 전체 내용을 다루지 않습니다. 임팩트를 준 부분만 추려서 쓰고, 제맘대로 내용을 편집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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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에서 배제되는 순간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책은 무기수 벤 건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는 열 네 살의 어느 날 동생 하나와 고아원을 도망쳐 나왔다. 우발적으로 그 아이의 머리를 의자 다리로 후려친 건 실수 때문이었다. 이야기를 하다가 말하지 말했어야할 내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고, 그 말이 퍼지면 사회적으로 매장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그는 입막음을 위해 살인을 벌인 것이다. 맥락도 없이 벌어진 벤의 살인은 무기징역이라는 판결로 돌아왔다.

무기수가 된 그는 교도소에 수감되어 사람취급을 받지 못한다. 그는 간수들의 요구에 반항을 하다 독방에도 갇히고, 40여일간 굶어서 죽으려 하거나 탈옥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벤은 수감 10년차가 되어 가석방 신청이 가능해졌을 때, 그 기회를 스스로 거절한다. 그 사이에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던 것일까.

어느새 그는 교도소 안에서 일종의 '지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그는 교도소에서 공부를 시작하면서 정치학과 역사학으로 학위를 받고, 평화와 분쟁 조정 전공으로 석사를 받았으며 형사학으로 박사 과정을 들어간 상황이었다. 그 과정에서 재소자협회 사무국장을 맡으며 '불순분자, 정치가, 감옥의 변호사'로 인정받게 되었고, '권력 남용에 대한 저항'을 자신의 삶의 의미로 설정하여 재소자들이 제도와 싸우도록 도왔다.

한편 벤은 교도소에 교사로 온 앨릭스와 사랑에 빠졌고, 그녀의 긴 설득 끝에 가석방 신청을 하여 수감 30년만에 세상에 나오게 된다. 그리고 벤의 삶은 어떻게 되었을까?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괜찮은 집이 있고, 자신이 잘하는 것도 있는 그는 외려 "지금 저는 완전히 길을 잃었어요."라고 말한다. 애석하게도 그의 지위는 '교도소 안'에 있을 때만 유효했기 때문이다. 사회에 나가보니 그는 일개 전과자에 불과했다.

벤의 삶은 교도소 안에 있을 때 더 행복했다. 그에겐 '재소자의 편에 서서 제도와 싸우는 교도소 변호사'라는 지위가 있었고, 나날이 존경받고 가치있는 존재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밖에선? 의미에서 배제되는 순간 벤의 인생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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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위 없는 생활을 하면서 느낀 것


돌이켜보면 나는 인정욕구가 많은 사람이었다. 엄청나게 많은 돈을 벌고 싶다거나, 초고속 승진을 바라지는 않았다. 그저 내가 속한 어느 집단이든지, 그저 나를 필요로 하길 바랐던 것 같다. 회사를 관두고 무적자로 시간을 보낸지 1년반이 다 되어간다. 그간 나는 나 스스로를 '사회적으로 죽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살면서 목적과 계획 없이 막연하게 시간을 보내본 일은 처음이었다. 우울증으로 처음 6개월은 정신없이 보내고나서, 정신을 차리자고 다짐하며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다름아닌 '나의 쓸모'를 찾는 일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거나, 하고 싶었지만 미뤄왔던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인정받고자 하는 일을 먼저 찾았던 것 같다. 늘 인정을 갈구하며 살아왔기에, 그게 건강한 생각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몸에 습이 들어 자연히 그것을 먼저 찾았던 셈이다.

나는 계약으로부터, 관계로부터 도망간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내게 누군가와 견줄만한 지위 같은 건 없었다. 막연히 경쟁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었고, 다시 사회활동을 할 엄두가 잘 나지 않았다. 소설 쓰기라거나, 글 쓰는 업을 떠올린 건 다시 회사에 들어가거나 상대평가로 경합해서 자리를 차지해야 하는 시험의 굴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탓이었다. 그러나 나는 점수와 평가로 줄세우는 지위 게임에 너무나 익숙한 사람이었기에 '스스로의 욕구'와 '자기만족'을 동력으로 작품을 만들어가는 창작자의 마음을 갖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힘들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인정을 통한 지위 획득이 삶의 원동력이 되어있던 것이다. 나를 위해 쓰는 글이기보다는 부끄럽지만 '메인에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앞섰기에, 초심자의 행운으로 몇 번 보상을 받은 후로 점차 밀려가는 내 글을 보면서 괴로워했더랬다. 쓰는 마음이 꼭 순수할 필요는 없다지만, 이젠 '나를 위해' 쓰는 글이야말로 꾸준히 쓰는 원동력이 됨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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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지위 게임을 벌여보자


한편 저자는 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 교수의 말을 인용해 우리에게는 스스로 서열을 만드는 원시적인 성향이 남아 있다고 말한다. 서열의 위에 있는 사람에게는 자원이 원활히 흐르고, 서열의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자원이 천천히 조금씩 떨어지게 했기에 젊고 늙음, 성별, 힘이 있고 없음으로 지위를 가르는 건 본능적으로 발휘되는 것일 게다. 또한 그런 서열에서 벗어난 외톨이, 아웃사이더가 된다는 것은 곧 낙오와 죽음을 이르는 것이었을 테다. 히키코모리에 가까운 생활을 길게 하면서 느꼈던 나의 불안함과 괴로움도 본능의 맥락에서는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일종의 클루지인 셈이고, 앞으로의 나의 삶도 내가 전에 택했던 지위 게임에 뛰어 들어 같은 고통을 받을 필요는 없다. 책에서는 인생을 주로 세 가지 지위 게임에 영향을 받는다고 말한다. 바로 '지배 게임', '도덕 게임', '성공 게임'이다.

힘이나 두려움을 무기로 지위를 차지하거나, 의무감이 강하고 순종적이며 도덕적인 사람에게 지위가 주어지거나, 기술이나 재능이나 지식이 필요한 일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내는 사람에게 지위가 돌아간다는 의미다. 굳이 따지면 내가 경험한 입시교육과 회사생활은 도덕 게임과 성공 게임 아래 있었다. 같은 문제를 시험으로 쳐서 더 많은 점수를 획득하는 사람, 획득한 점수를 바탕으로 자신의 계급에 걸맞는 곳에 소속되어 시스템에 잘 순종하는 사람이 살아남는 게임 말이다.

내가 잘 수행하지 못했던 게임들에 다시 들어가면 승산이 있을까. 절치부심하고 와신상담하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의 나는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핀트를 바꿔보기로 했다. 세상을 규정하는 지위 게임이 '지배', '도덕', '성공'뿐일까? 하고 말이다. 사회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사람도 어느 분야에는 자신만의 달란트가 있기 마련이다. 나만이 할 수 있는 특장점에서의 지위를 높인다면, 그것으로도 반전을 이룰 수 는 있지 않을까?

나만의 지위 게임을 벌인다면, 그렇게 내 안의 자아존중감을 채울 무언가가 있다면 다시 세상에 도전하는 데 큰 힘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에 강점이 있고, 무엇을 할 때 내 지위를 높일 수 있을까. 지금 바로 짜잔- 사실 이런 거랍니다! 하고 드러낼 수는 없을 것 같다.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 없고, 고민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다시 책을 잡고, 스스로 생각을 정리하다보면 지금은 어슴푸레한 나의 정체를 조금은 알아가지 않을까 싶다.


타로의 타워카드는 달리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지금까지 해온 노력이 물거품이 되다. 가 아니라,
지금까지 생각해온 방식을 버리고 새로운 기준을 삼다. 라고 말이다. 

의미를 만드는 건 결국 나 자신이다. 인정은 후에 따라올 테다. 그렇기에 오늘도 무너지지 말고 다시 글을 써야겠다. 뭐라도 되겠지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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