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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황하는 콧날 Jul 26. 2018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의 기록 #11-1

정상과 추락 1

오늘은 칼라파타르(5545m)에 가는 날이다.  여기만 올라갔다 오면 목표를 모두 달성한다. 훈련받지 않은 일반인이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이기도 하다. 진 감독님이 말하셨다. "이곳에 다녀오면 네가 아는 사람 중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 보는 것" 그 말에 가슴이 더 뛰기도 했다.


그런데 저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몸 상태가 조금 이상했다. 폐 쪽에 이상한 느낌이 들었는데 숨을 쉴 때 감기가 심해 가래가 끼인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우리는 아침 6시경에 모여 삶은 달걀을 먹고 출발하기로 하였다.  김 선생님, 김 선생님 원정대 대장님, 약사 선생님, 약사 선생님 포터, 나 이렇게 길을 나섰다. 진 감독님은 많이 와보셨기에 칼라파트라까지 갈 필요까진 없다고 선생님들과 함께 다녀오라고 하셨다. 


진 감독님 포터 카르마 씨도 따라 나를 따라나섰는데, 진 감독님의 일행이었지만 내가 비용을 지불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그냥 괜찮다고 혼자 갈 수 있다고 롯지로 다시 돌려보냈다.


하루가 지났지만 여전히 웅장한 히말라야였다. 

정상 이긴 정상인지 햇빛이 너무 강렬했다. 선글라스를 쓰지 않으면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였다. 원래 생눈으로 풍경을 감상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였지만 어쩔 수 산행 내내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그런데 확실히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어제까지 모든 체력을 소진한 것인지 점점 뒤처지기 시작했다. 고락셉까지 올라올 때에는 거의 진 감독님 뒤에서 올라왔는데 그 날은 뒤에 처져 일행들이 안 보일 정도였다. 


고산 증상도 심해졌다. 열 걸음만 걸어도 100m를 전력 질주한 듯이 가뿐 숨을 몰아 쉬었다. 숨이 가빠 심장 빠르게 뛰면 그 파동이 그대로 머리에 전달되었다. 심장 뛰는 것만큼 머리에 지진이 난 듯이 아팠다. 그리고 숨을 쉴 때 심한 감기에 걸렸을 때처럼 폐에 가래가 끼인 것 같았다.

그래서 자주 쉬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조금, 조금씩 올라갔다. 아니 포기할 수가 없었다. 정상이 저기 있는데 조금만 조금만 더 가면 갈 수 있는데 포기할 순 없었다. 이곳에 언제 다시 올지도 모르고 7일 동안의 노력과 시간, 비용이 아까웠다. 


일행들은 이미 저기 멀리 보이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할 수 있어 포기하지 마" "지금까지 잘 해왔잖아" "조금만 더 가면 모든 것이 끝나 정상에 섰을 때 환희와 기쁨을 생각해봐" 속으로 이런 말들을 내 자신에게 하며 격려했다. 자위했다. 

그렇게 혼자 올라가다 보니 김선생님과 원정대 대장님은 벌써 정상에 갔다 돌아내려오시는 길이었다. 그분들도 나보고 포기하지 말고 올라갔다 오라고 격력 해주셨다. 머 포기하면 다시는 올 수 없다 이런 말들을 해주셨던 것 같다. 

아무튼 올라가면서 조금만 걸으면 심장이 뛰어 머리가 아파 숨을 골랐다가 다시 걸었다. 이것이 반복되었다. 지금 봐도 ebc의 풍경은 웅장하고 자연의 와일드함을 표현한 미술작품 같은데 그때 당시에는 햇빛이 너무 강하고 몸이 힘들어 이 풍경을 잘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그렇게 조금 더 올라가니 이제는 약사 선생님을 만났다. 정상이 바로 보이는 것 같았는데 여기서도 한 시간을 더 올라가야 칼라파타르에 오를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때 약사 선생님은 말은 안 하셨는데 눈빛으로 나에게 이렇게 물으셨다. "힘겨워 보이는데 올라갈 수 있겠니?" 나는 그래도 얼마나 안 남았으니 올라가 보고 내려가겠다고 먼저 내려가시라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거의 정상에 다다랐을 무렵 걷다가 잠시 좋았다 깬 느낌이 들었다. 마치 밤에 고속도로 운전을 하다 아주 잠깐 졸았던 느낌이었다. 참 오늘은 몸의 컨디션도 그렇고 이상한 하루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엉금엉금 힘겹게 올라가 결국 칼라파타르에 도달했다. 히말라야 산맥을 잘 볼 수 있다는 칼라파타르!! 역시 시야가 막힘이 없이 여러 산맥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내가 쿰부 히말 ebc 트레킹에서 본 정상의 광경들을 표현하자면 "광활함과 황량함"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ebc를 아빠의 산이라고 부르고 안나푸르나 서킷은 엄마의 산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다시 한번 네팔에 가서 안나푸르나 서킷을 해보고 싶다. 

타르쵸를 걸고 있는 네팔인들에게 사진 한 장을 부탁하였다. 사진이 참 잘 찍어 준 것 같기도 하고 이상하게 찍어 준 것도 같았다. 인생에서 가장 높은 곳에 서있는 모습이다. 하하 지금 생각해보면 저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다. 아무튼 나는 그때 내가 목표로 했던 곳에 서 있었고 배낭여행을 떠났을 때 중간에 돌아오지 말고 어떻게든 네팔까지는 가보자고 마음을 먹었었는데 그 목표에 대미를 장식하는 곳이었다. 

사람이라는 것이 참 간사한 것이 과정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힘들지만 그로부터 얻은 단 "꿀"은 오래가지 않는다. 황홀한 광경도 얼마 지나지 않아 시들해지고 익숙해진다. 하지만 그 찰나의 순간은 참 좋다. 아함 좋고 말고!! 그래서 사람은 찰나의 순간을 사랑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과정을 소중히 생각하여야 한다. 나도 칼라파타르에서 본 광경만큼 우여곡절 끝에 이곳에 다다르는 과정과 그 사이의 만난던 사람들, 길을 걸을며 봤던 풍경들이 참 좋았다.


"순간이 좋았고 과정은 찬란했다. 그 과정 속에  만났던 사람들은 강렬한 인연으로 이어진 사람들이다. 어쩌면 전생이라는 게 있다면 그때부터 이어진 끈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정상을 만났고 이제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하지만 칼라파타르에서 좋았던 것도 잠시 이미 바닥날 대로 바닥난 체력과 몸상태는 내 발목을 잡았다. 내려가는 과정이 굉장히 힘들었다. 흙이 아닌 돌바닥들도 더욱 나를 힘들게 했다. 그래서 하산하는 과정은 사진인 하나도 없다. 그리고 다시 한번 올라갈 때처럼 졸음운전이 아닌 졸음 하산을 했다. 정말 1초 정도 정신이 없어진 것 같다. 그랬다 이미 나는 그때 초기 단계였던 고산병이 발전해 최고 레벨까지 올라간 것이었다.

 하산 길에 내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저녁노을에 대지가 붉게 물든 풍경과 같았다. 강렬한 태양에 더욱 정신이 없었고 눈앞은 온통 온통 붉었다! 그 기억이 강력하게 선명한 파노라마처럼 내 머리에 남아있다. 


그렇게 나는 생사를 가르는 길을 걷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길을 계속 걸어가면 이 세상이 끝나고 새로운 세상이 날올 것 같은 기분이었다. 황천(黃泉)에 가는 길이 있다면 바로 그 길이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그때 칼라파타르에서 하산하는 길이 내 일생에 있어 죽음이 나에게 가장 가깝게 다가온 때였다. 정말 죽음이라는 것이 목 바로 밑까지 차올랐었다.


나는 그 붉은 길을 계속 걸었다. 걷다 보니 돌아가는 것도 같았고 정신이 계속 없었다. 아무래도 고산병 증상을 가장 간단히 설명하자면 소주 한 병 반이나 두병을 먹고 산을 타는 것과 같은 것 같다. 고산병 때문에 너무 걸음이 느린 탓이었는지 올라올 때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는데 오직 나 혼자 걷고 있었다. 


올라왔던 길이 엄청 헷갈렸는데 내려가는 길, 저 멀리 갈래길이 있었다 저기서 어디로 가는지 걱정하고 있었는데 그 길 앞에 사람이 아주 작은 점처럼 보였다. 사람이 없을 곳에 사람이 있으니 트레킹 하면서 한 번 들었던 산적인가 싶기도 했다. 내려가면서 점점 가까워지자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바로 아침에 내가 혼자 가겠다고 돌아가라고 했던 포터 카르마씨다. 내가 너무 돌아오지 않자 진 감독님이 걱정되어 찾아보라고 보낸 것이었다. 카르마 씨는 내게 바로 물을 먹이고 콧물로 엉망인 내 얼굴을 휴지로 닦아주었다. 그러고 보니 1시간 반 ~2 시간 거리라고 하여 가볍게 빨리 다녀오려고 물과 배낭조차 챙기지 않았었다. 큰 잘못이었다. 


카르마씨를 보자 안도감이 들었다. 이제 길은 생각하지 않고 그의 뒷모습만 보고 걸어갔다. 심장이 요동치고 머리가 아프면 몸을 진정시키고 다시 걸었다. 그렇게 힘겹게 고락셉 로지에 도착하였다. 

길에서 롯지식당으로 들어가는 조그마한 반계단이 있는데 거기를 올라가려다 오르지 못했다. 그래서 잠시 롯지 외벽에 기대었는데 온몸의 신경이 끊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벽에 기대어 그대로 잠시 쉬었다. 식당에 들어가니 일행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진감독님이 나를 보자마자 이렇게 말하셨다. "oo아 왜 중간에 포기하지 않았니? 그렇게 갔다 오는 것은 갔다온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셨다. 알고 보니 내가 왕복 2시간 남짓한 거리를 거의 8시간이 걸렸던 것이었다. 진감독님은 너무 안 오길래 내 시체를 찾으러 가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걱정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정말 내가 잘 못됐을 경우 내 부모님에게 연락을 해야 하는데 그것을 너무 생각하기 싫었다고 말씀하셨다. 


내 얼굴과 상태를 보시더니 당장 1000m 정도 내려가야겠다고 말씀하셨다. 여기 고락셉에서 잠을 잔다면 내가 내일 영원히 못 일어날 수 있거나 중상일 수도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ebc에 갔을 무렵 일 년 전쯤에 한 기업 임원이 칼라파타르에 갔다 와 나와 비슷한 증상이었는데 주변의 의견을 무시하고 칼라파타르에서 잠을 청했다가 돌아가신 일이 있었다. 


빨리 고도를 낮춰 극심 해진 내 고산병을 완화시키자는 것이었다. 또한 일행인 약사 선생님도 고산증상 때문에 많이 힘들어하셨다. 진감독님은 나에게 당을 보충할 수 있는 포도 통조림을 먹이고는 빨리 짐을 챙기라고 하셨다.  

빨리 짐을 챙겨 내려가는데 나는 또 뒤처지기 시작했다. 칼라파타르에 올라갈 때처럼 10 걸음만 걸어도 100m 전력 질주를 한 것 같았다. 그래서 진감독님은 안 되겠다며 나 때문에 시간이 지체돼 해가지만 일행이 다 위험해질 수 있다며 말을 타라고 하셨다. 그래서 포터 카르마씨에게 말을 구해오고 나와 함께 오라고 하셨다. 진감독님은 약사 선생님을 데리고 먼저 출발하셨다. 나는 카르마씨가 말을 구해오는 사이 나는 배낭에 있는 모든 옷을 꺼내 걸쳐 입었다. 원래 걸으면 땀이 나고 옷을 많이 입으면 불편해 산행 중에는 많이 입지 않는다. 하지만 말을 탈 것이고 왠지 다 걸쳐 입어야 할 것 같았다.


카르마씨가 말을 구해왔는데 말 주인은 900m정도 아래인 딩보체 까지 내려가는데 350달러를 달라고 했다. 비쌌지만 어쩔 수 없이 돈을 지불하고 말을 탔다. 마부 한 명과 카르마씨 이렇게 3명이서 내려갔다.


그런데 이럴 수가!!! 잠시 후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그냥 싸라기눈이 아닌 한겨울의 눈보라 같은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트레킹 동안 눈을 만난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하필 고산병에 신음하던 그날 눈보라가 치기 시작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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