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한 것보다 부족한 게 낫다
여태껏 그려온 꽃그림 옆에 글씨 쓰기는 지겨웠다. 차마 수업 중에 말할 수는 없었는데, 놀랍게도 다른 수강생이 먼저 가볍게 웃으며 말한다. 꽃그림이 지겹다고.
소심하고 예민한 사람들은 가볍게 할 수 있는 감정표현 조차 망설이느라 나중에는 욱하듯 폭발의 말을 쏟아낼 때가 있다. 딱 내 얘기인데, 그런 점은 고쳐야 한다고 심리학 유튜브에서 말해준다. (유튜브 좀 작작 봐라)
심각하지 않게, 쿨하게 웃으면서 말할 수 있는 다른 수강생이 부럽다. (별게 다 부럽네)
개인적으로는 마음속 사랑을 키우기 위해(인류애?) 하트를 꾸준히 그려보기로 한다.(기대는 안 함)
소규모로 이루어지는 수업 중에는 공과사가 뚜렷하지 않다. 여자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는 수업 외적인 수다가 자연스럽게 끊이질 않는다. 연예인 얘기부터 유튜브 얘기, 대선주자 중 누구의 사생활 얘기 등... 대화 주제는 다채롭다. 여자들의 수다는 의미경중을 떠나 그 자체로 힐링스럽다.
오늘은 웬일인지 강사가 먼저 물꼬를 튼다.
"OECD 국가 중 우리나라가 사기범죄 1위 국가라는데 이유가 뭘까요? 사기꾼이 유난히 많아서일까요? 아님, 우리나라에 순진한 사람들이 많아서 일까요?"
대화에 잘 섞이지 못했던 내가 0.5초 만에 대답한다.
"전자죠!"
대화의 흐름은 중구난방, 사기꾼 얘기로 시작해서 방탄 얘기로, 또 다른 아이돌 얘기로 흘러간다.
의미는 없다. 하지만 수다본능의 여자들에겐 남자들이 이해 못할 입을 풀어야만 하는(?) 성질이 있다.
하지만 직원 간의 말 때문에 모든 문제가 불거졌던 직장생활에서의 기억 때문에 항상 말을 아끼자는 생각을 염두에 두었던 나로서도 가볍게 섞여가기 시작한다.
꽃그림이 유난히 많은 캘리 수업...
아무래도 감성을 자극하는 아날로그적인 것에 초점을 두다 보니, 꽃그림이 제일 많이 활용된다.
오늘은 아예 다발로 그려보라고?
해보지 뭐...
그동안 그려왔던 꽃과 줄기를 몽땅 동원해도 허전하니 , 골뱅이가 나오고 동그라미가 나오고 난리 부루스가 났지만 이쯤에서 멈추기로 한다.
스스로에게 항상 되뇌이는 말은 '모자란 게 과한 것보다 낫다'
계속 덧붙이고(잘해보려는 마음 때문에), 덧칠하다가 300그램짜리 비싼 종이를 수도 없이 망쳐왔기 때문에 그만 붓을 놓기로 한다.
글, 그림, 말, 행동, 옷차림 모두 과한 것보다는 부족한 게 차라리 낫다.
싫은 건 죽어도 못하는 외골수에, 억지로 되는 건 하나도 없는 내 성향상 한 시간 넘게 꾸준히 몰두하며 배우기 시작한 지 두 달이 넘어가고 있다. 앞으로도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계속하게 될 것 같다.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