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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귤예지 Jun 27. 2021

엄마도 나를 위해 걷고 싶다

육아를 위해 직장생활에 쉼표를 찍은 엄마에게 필요한 것

며칠 전 회사후배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내가 출산으로 휴직을 하면서 업무를 물려받은 후배다. 평일 아침에 전화를 걸어온 용건이라면 들어보나마나 업무에 관한 것이 뻔한데, 나는 액정에 뜬 후배의 이름을 보자마자 괜히 두근거렸다.

안부를 짧게 묻고서 후배는 바로 용건을 말했다. 업무를 담당했을 때 내가 내린 어떤 의사결정에 대한 판단근거를 묻는 질문이었다. 간단히 대답할 수 있는 내용인데도 괜히 그때 정황까지 떠올려가며 구체적인 답변을 한 후에 나는 물었다.

"그리고 또? 회사에는 별일 없어요?"

"네. 별일 없어요. 직원들도 다들 잘 계시고요."

수화기 저편에서 후배를 부르는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대화를 이어가고 싶어 하는 내 마음을 눈치 챘는지 후배가 미안한 음성으로, 하지만 성급히 전화를 끊었다.


10년 전에 입사해 3개월 전까지 매일 출근하던 회사는 내가 없이도 잘 굴러가고 있다.

회사 안의 누군가는 오늘도 새로운 일을 계획할 것이고 다른 누군가는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있을 것이며, 누군가는 실수를 하고 누군가는 그 실수를 수습하면서, 모든 사람들은 한 발자국씩 정진하고 있을 것이다.

회사의 일원은 종종 톱니바퀴의 작은 부품이라는 사소하고 미약한 존재로 묘사되지만, 어쨌든 회사는 끊임없는 과제가 주어지고 성취와 보상이 따르는 곳이다. 때로는 불평하고 업무에 지쳐 힘들어하면서도 10년 동안 매일 같은 시간에 집을 나서게 만든 유인은 단지 '월급'뿐은 아니었던 거다.


출산 전 나는 10년 만에 처음 얻은 장기휴가에 설레어하며 엄청난 계획을 짰더랬다. 거기에는 자격증 공부, 소설 쓰기, 매주 한권의 독서 외에도 그간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하지 못했던 무수한 계획들이 포함되었다. 아기들은 하루의 대부분을 잔다고 하니 그 시간을 활용할 참이었다.

하지만 조리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날부터, 아니 조리원에서 모유수유를 결심하면서부터 모든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3시간 간격으로 가슴에 차오르는 모유를 짜내고, 유축부품을 씻어 소독하고, 짜낸 모유를 신생아실에 가져다주는 것만으로도 이미 내 시간의 상당부분이 채워지고 있었다. 조리원에서 읽으려던 책 2권을 그대로 다시 집으로 가져왔다.

출산 전 들뜬 마음으로 계획을 떠드는 내게 "일단 낳아보고 얘기하라"던 육아선배들의 경고가 어떤 의미였는지 깨닫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출산휴가 중인 요즘 나의 과업은 아주 단순하다. 수유. 아이 목욕시키기. 낮잠재우기. 기저귀 갈기. 깊은 고민이 필요한 일이 아니다.

회사에서 정시퇴근을 위해 업무프로세스를 고민하던 것처럼, 처음에는 육아에서도 효율성을 고민했었다. 예를 들면 1회에 먹는 양을 늘리면서 빈도를 줄이는 방법이라거나 조금 더 빨리, 더 많이 재우는 방법들.

하지만 육아에는 회사업무에서 맞닥뜨리는 무수한 변수의 총합을 초월할 만큼의 초강력 변수가 있다. 바로 아이. 먹는 양을 늘리는 방법도 빈도를 줄이는 방법도 잘 재우는 방법도 아이가 따라주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20분간 공들여 재우는데 성공해도 10분 후에 다시 에엥~ 울어버리는 것으로 아이는 내게 요령 따위 부리지 말고 육아에만 집중할 것을 요구한다.

내가 계획한 일을 포기하는 수준을 넘어 인간다운 삶을 위해 해오던 기본적인 일들, 예컨대 샤워나 식사마저 포기해야할 지경에 이르고 있다.


드라이브 모드로 10년간 운행 중이던 삶의 기어를 중립으로 전환하기 위한 과도기에 있다. 몸은 반강제적으로 전환되고 말았지만 마음은 아직이다. 아이에게 젖을 물리면서도 계속 시계에 눈이 간다. 책이라도 한 장 읽었으면, 하고 아이의 눈치를 살핀다.

다년간의 직장생활로 보상이라는 동기부여에 길들여진 내게는 육아로 인한 노동이 몸에 주는 피로보다 홀로 멈추어있다는 자각에서 오는 마음의 피로가 더 크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과정에서 느끼고 배우는 것이 많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 눈에 보이는 것만 좇게 된다. 앞으로 나아가는 세상에서 혼자 옆으로 비켜있는 기분이다.


그런데 요즘 아이에게 이런 내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다. 먹지도 않는 젖을 물고 가만히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마치 자기에게만 오롯이 집중해달라고 애원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잠든 사이 엄마의 마음이 다른 데로 옮겨갈까봐 두려운지 낮에는 깊은 잠도 들지 못하고 자꾸만 보챈다. 아이를 옆에 두고 책을 몇 장 넘기다가 문득 얼굴을 쳐다보면 두 눈이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 내 눈과 마주치기를 고대해온 것처럼.


“일생에 육아에만 집중하는 시간이 얼마나 된다고 그래.”

매정하게 들려 한귀로 흘린 줄 알았던 말들이 슬며시 다시 고개를 든다.

   

아이와 살을 맞대는 시간이 늘어 내게도 모성애라는 것이 생긴 건지 아니면 몸이 피로한 현실을 핑계로 마음이 안주하고 마는 건지 내 날짜들이 개인적인 목표와 성취 대신 육아에 대한 지표들로 조금씩 채워지고 있다. 아이의 몸무게는 오늘 아침 5.2kg을 돌파했고, 손으로 장난감을 쥐는 것에 성공했으며, 어제 같은 시간 대비 모유를 10분 적게 먹었다. 이번 달 말까지 5.6kg으로 찌우는 게 목표다.


하지만 아직도 나는 출근시간이 되어 회사로 향하고 점심시간이 되면 쏟아져 나오는 창밖의 회사원들에게로 꽤 자주 눈길이 간다. 당분간 내 시간의 대부분은 육아로 채워지겠지만, 그래도 나를 온전히 내려놓고 싶지는 않다. 아마도 틈틈이 이렇게 글을 쓰며, 책을 읽으며, 사람을 만나고 몸을 가꾸며 나를 위한 걸음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내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금방 사라지고 있어서 허무하다고,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다고 남편에게 하소연한 적이 있다. 그때 그가 해준 말이 작은 위로가 되었다.

“지금보다 어떻게 더 생산적이야. 자기는 사람을 만들고 있잖아.”


남편들에게 호소한다.

엄마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허무하게 느껴지지 않도록, 우리가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인지 알아달라고. 매일 씻기고 먹이고 기저귀를 가는 일이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아도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인정해달라고.

마음으로만 인정할 것이 아니라 이왕이면 말로 격려하고 응원해주면 좋겠다. 요즘 내 삶의 주인 노릇을 하고 계시는 이 작은 아이는 말이 통하지도 않을 뿐더러 훗날에도 내 공로를 기억해줄리 없으니. 그러니 지금 내 옆에 있는 당신, 나의 수고 덕분에 마음 편히 바깥일을 보고 계시는 당신이 해주어야만 한다.

오늘도 수고했어, 당신 덕분에 우리 아이가 하루만큼 더 자랐네, 하는 따뜻한 말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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